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다른만화 시리즈 1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 나와 같이 버스를 타고 같이 이동한 어느 분은 법을 전공하셨고, 지금도 관련 직종 일을 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먹물'이라고 표현하셨다. 미국에서 수년 간 체류했고, 한국에서도 미국인 선교사가 세운 미국 교회를 다녔었고, 지금도 친미주의자라고 스스럼없이 말하신 분이었다. 나더러 미국과 유럽도 안 다녀오고 뭐했냐고 하셔서 황당하게 만들었던 그 분... 젊었고, 공부도 할만치 했고, 이틀 간의 어떤 소요에 대해서 나름의 '중재'를 하려고 노력했던 자칭 먹물인 그분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비단 그분이 아니더라도 미국은 무조건 옳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많은 이들도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가 쓴 미 제국주의의 역사를 똑바로 들여다 본다면, 혹시라도 지금까지의 콩깍지를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을까? 몹시... 궁금하다.  

'미국 민중사'를 먼저 구입했지만 분량의 압박으로 쉬 도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 책이 출간되었다. 딱 내 수준이야! 이러면서 워밍업 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심각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뜻밖에도 재밌었다. 하워드 진 교수님은 의외로 유머러스한 분이셨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수많은 사람 앞에서 강연 형식으로 진행된다. 정말 그런 강연을 옮긴 것인지, 하나의 스타일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야기의 출발은 911에서 시작되었다. 어느새 10년이 되어버린 그 끔찍한 사건 말이다. 비극을 전쟁으로 되갚아주는, 테러에 테러로 맞대응했던 그 끔찍한 기억으로 돌아가서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저자는 요구한다. 그리고 그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미국의 역사를 하나하나 짚어간다. 도덕적 목적이 아닌 정치 경제 군사적 목적에 이용되었던 그들의 군대에 대해서 말이다.  

 

학살의 역사는 전통이 있었다. 애초에 그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뿐 아니라 대륙을 넘어가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중동에 이르기까지 넓고도 깊었다. 그 핵심 사건들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런 학살 최종 명령권자를 마치 은인으로 교육받고 자란 우리들의 짝사랑이 가여워 마음이 묵직해진다. 더군다나 그런 인물들을 리더십과 성공의 대표 인물로 포장되어 재탕 삼탕되고 있으니 묵직함은 거의 체증이 되어버린다. 

 

제법 옷 테가 나는 처칠의 젊었을 적 모습이다. 저런 발언에 놀라는 것도 이젠 예의가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필리핀 인의 열망을 미국은 한낱 거래로 떨어뜨려버렸다. 그 거래의 다른 축에는 일본과의 거래에 떨이로 딸려간 조선도 끼어 있다. 사진은 900명의 모로족의 참살 현장이다. 일방적인 학살을 승리로 칭송하고 국기에 대한 영예로 간주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러워한 사람이 다행히 있었다. 

 

성조기의 별을 해골로 바꿔야 마땅하다고 일갈하는 마크 트웨인의 지적이다. 역설적인 표현이 인상 깊었던 '전쟁을 위한 기도'가 떠오른다.  

필리핀에서 인간 백정 노릇을 했던 우드 장군의 이름을 붙인 미주리 주의 한 요새. 이곳에서 감옥간수교육을 받은 미군 병사들은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감옥에서 고문 혐의로 기소되었다. 전통은... 기가 막히게 전승되었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필리핀 정복을 통해 국내의 문제와 사회불안을 외국과의 전쟁이라는 카드로 치료할 수 있다는 무서운 학습을 마쳤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400년 전에 이미 실험해 보았던 그 주제 말이다. 정부가 이렇게 움직일 때 모두가 거기에 휩쓸렸던 것은 아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있어 왔다. 물론, 정부는 이를 제압하는 법도 이미 알고 있다.

 

한 평화주의자 노인이 정부의 참전 정책에 저항하다가 체포되었다. 죄수복 입기를 거부한 노인을 한겨울에 물고문을 해서 끝내 죽게 만들었다. 시신을 가져가라고 가족을 불러놓은 그들의 행태를 보라. 죽은 사람을 조롱하며 또 가족을 조롱하며 시신에 군복을 입혀 놓았다.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 따위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한쪽에서는 전쟁으로 돈을 벌고, 한쪽에서는 평화운동을 일으킨다. 그 와중에 인권에 대해서 눈을 뜨고 연대 투쟁을 한다. 노동자들이 뭉치고, 흑인들이 뭉치고, 책임있는 인사들의 양심선언도 이어진다.  

 

 미국이 의뢰하거나, 혹은 뒤에서 조종하거나,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관여했던 무수한 사건 속에서 많은 나라의 힘없는 민중들이 죽음을 당했다. 독재자에 의해 학살되거나, 그들에게 저항하다가... 그들 중에는 이제 그 검은 손을 뿌리치고 새롭게 일어서는 나라들이 있으며, 그 첫 단추를 꿰기 시작하는 나라들도 있다. 요즘도 뉴스를 틀면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다. 그 결과를 주목하게 되는...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두말 하면 잔소리. 하워드 진도 저항의 기치를 결코 내리지 않았고 그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엘스버그의 국방부 문서 사건은 읽으면서 꽤 통쾌한 부분이었다. 엘스버그는 조사를 통해서 베트남 전에 대한 놀라운 진실을 알게 된다. 미국의 개입이 트루먼 대통령 시절부터 이미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베트남전이 북베트남의 침공도 아니었고 내전도 아닌, 명백한 미국의 침공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007비밀 작전을 연상시키는 은밀한 작업을 통해 마침내 타임스를 통해 사건을 빵! 터뜨린다. 그것도 닉슨 대통령의 딸 결혼식 사진 옆에 커다랗게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이 정도 유머와 센스는 필수!

 닉슨은 사임했지만 미국의 정책 기조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은 바뀌어도 정책은 변하지 않고 본질도 변하지 않는다.

 

 레이건 대통령의 기자회견 당시 거짓말을 소개하면서 점점 코가 자라는 모습으로 그려낸 것은 만화라는 그림 매체를 활요한 아주 적절한 표현법이다. 울 수 없으니 차라리 웃자.  

 

미국의 오랜 작업 상대 이란이 비켜갈 리 없다. 대사관을 점거한 사람들이 미국 정보부 활동 기록 문서들이 파쇄되어 있자 그걸 짜맞추었다. 페르시아 양탄자의 복잡한 문양을 짰떤 이란 여자들이 동원되었다. 브라보! 놀라운 솜씨다. 설마하니 그걸 다 짜맞출 거라고 생각 못했을 테지. 단순 노동의 예술적 승화다. 많은 진실들이 더러운 거짓에 의해 무수히 덮어져 왔지만, 저렇게 어처구니 없게 드러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너무 더러우면 때가 탄 게 잘 보이지 않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더러운 옷이 깨끗한 옷이라고 우길 수 없는 것처럼 진실의 힘은 분명 세다. 

 

너무 오래 억눌려 있으면 내재되어 있는 큰 힘을 인식하지 못하고 또 믿지 못하고 좌절하기 일쑤지만, 작은 촛불이 모여 무적의 권력이 무너지는 경험들이 분명 역사 속에서 있어 왔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이며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놀라운 승리라는 하워드 진의 정리 멘트가 마음에 남는다.  

미국이 재채기만 해도 좌불안석하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일은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미국의 진면모에 대해서 입술이 떨리도록 설명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럴 때 이런 책을 한 권 쓰윽 밀어주면 좋겠다. 그 사람이 읽어낼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도전은 필요하지 않을까. 

이번 소말리아 사태를 우리 정부는 온갖 영웅주의로 포장하기 바쁘고 국민들도 거기에 쉽게 현혹되고 있다. 소말리아의 젊고도 어린 그 청년들이 대체 왜 해적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그 바다가 왜 무주공해가 되어버렸는지에 대해서도 우린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가 그토록 치를 떨었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역시 고민하고 점검해 봐야 한다. 아무리 사랑해도 이런 것까지 닮아가서는 안 되는 거니까.  

덧글) 209쪽에 오타가 있다. 마지막 줄에 '이것은 완벽한 기록이엇다'>>>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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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1-31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책치고는 말이 아주 많은데요 ㅎㅎㅎ
미국민중사는 그러니까 딱 1/3만 읽으면 완독할 수 있는데 그 1/3이 너무 넘기 어려운 장벽이예요.. 저는 오년째 1권만 읽었습니다 --;;

마노아 2011-01-31 10:34   좋아요 0 | URL
조 사코의 책에 비하면 '시집' 수준이에요. 조 사코 만화는 글이 얼마나 많은지 성경책을 읽는 기분이랍니다..;;;;
미국 민중사는 1/3이 고비군요! 아아, 도전할 때 꼭 유념하겠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