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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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꼬집는 책을 읽으면서 속이 시원하기는 힘들 것이다. 허수아비 춤을 읽고서 묵직해서 내려가지 않는 체기를 오래오래 느꼈다. 그 책에서 대한민국 최상위 꼭대기에서 돈놀음 하는 인물들을 그려냈다면, 이 책의 인물들은 자본주의의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하위층에 분포되어 있는 소시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물론, 그 소시민층 안에서도 일렬 종대 줄세우기는 여전하지만... 

서해안에 위치한 ㅁ시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방조제 건설이 완공되면서 신시가지는 새로운 세상이 되어버렸고, 신시가지의 뒷바라지는 모두 구시가지의 몫이 되었다. 원래부터 그곳을 지키며 살았던 사람들은 자본으로부터 환경으로부터 모두 버림받게 되었고, 21세기형 노예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ㅁ시의 시장은 자신을 '비즈니스맨'이라고 부르며 신시가지를 더 화려하게 키워낸 장본인이다. 구시가지를 방치한 채 신시가지로 파이를 더 키우는 것은 중앙정부의 뜻을 잘 살려낸 것이었고, 그가 퍼뜨린 허황된 '꿈의 도시'를 사람들은 자신의 것으로 착각했다. 그리하여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비즈니스 맨과 비즈니스 우먼을 자처하는 상황에서 이 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고등학교 시절 고시 준비 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고시 뒷바라지를 10년 하고 결국 남편이 고시를 포기하고 난 다음에도 단란한 가정의 꿈을 포기하지 않던 낭만적인 그녀였다.  

그러나 가난한 삶 속에서 전망 없고 희망 없는 남편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은 아들에 대한 초조함으로 이미 바뀌었다. 대학 시절 친구였던 주리는 그 시절부터 이미 젊은 몸을 팔아 스폰서를 통해 사치스런 삶을 살던 여인. 그 친구가 신시가지에 이사를 왔고 주인공 그녀와 만났다. 친구 주리를 통해 매춘업을 소개 받은 그녀는 자식의 과외비를 충당하겠다는 명목으로 '비즈니스 우먼'이된다. 요즘 애들이 진짜 싫어하고 혐오하는 부모는 실패한 부모라며, 아이가 좋은 대학도 못 가고, 그래서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게 되었을 때 뭐라고 변명할 거냐는 게 이 일을 시작할 때 망설이던 그녀를 설득한 주리의 논리였다.  

참, 답답했다. 그렇게 아이의 과외비를 위해서 몸을 파는 엄마들이 이미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정말 아이를 위한 선택인지 묻고 싶어진다. 아이가 정말 싫어하고 혐오하는 부모가 경제적으로 실패한 부모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아이를 그렇게 키워낸 부모의 탓이 크다. 그 가치관은 아이의 것이 아니라 먼저 부모의 것인 게 맞을 것이다. 자신은, 부모가 부유함과 안락함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모가 혐오스러운지 먼저 되짚어 물어야 할 게 아닌가. 경제적으로 불우했던 것 이외에도 그 부모가 아이를 사랑으로 품어주지 않았다면 저런 변명들이 통할 것이다. 하지만 밥은 먹고 살면서, 적어도 굶고 비새는 지붕 아래 사는 것도 아니면서 내 아이를 좀 더 앞줄에 세우기 위한 교육비를 벌기 위한 저런 타협은 스스로 악마와의 거래에 손을 내미는 꼴로 보인다. 그녀가 주리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려다가도 결국 환멸을 느끼는 것과 똑같은 모양새다. 김규항 씨가 자주 지적하는 우리 안의 명박스러움이다.  

상당히 뻔하게 흘러갈 뻔한 이야기에 극적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 인물은 '타잔'이다. 그도 세상 끝으로 떠밀려 더 이상은 물러설 곳도 없는 구시가지의 주민이다. 그녀와 타잔의 만남은 무슨 첩보 작전을 보는 것 같았다. '비즈니스' 상대로 만났다가 공범자가 된 느낌을 주었던 사내, 연민을 불러 일으켜 내 손으로 지은 음식을 먹이고 싶었던 사내, 그리고 나의 손길을 더 필요로 하는 그의 자폐아 아들... 아이러니하게도 돈으로 만났던 그들은 서로를 깊이 알게 되고 나서 돈관계까 청산되고, 알몸으로 만났던 사이가 오히려 더 조심스럽고 정숙한 몸가짐으로 변한다. 도둑질을 새로운 업으로 지니게 된 남자가 세상의 작고 여린 존재에 대해서 한없이 연민을 가지는 순수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 부조화 속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독자의 동의가 입혀지면서 이 세계의 모순과 절망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녀는 '조국'을 애타게 찾는다. 나의 조국이 무엇인지, 누구인지를 말이다. 나라 잃은 서러운 시기를 상상해볼 때, '조국'이란 단어는 참으로 뜨거운 이름이다. 그 이름 앞에서 죽어간 열사들도 무수히 많았다. 오늘날 우리의 조국은 어떤 존재인가 돌이켜 보게 된다. 뭐랄까.. 민망한 느낌이다. '국격'을 말하지만 참으로 격이 느껴지지 않는 부끄러움을 자주 보게 된다. 조국의 방패막이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사는 그녀와 타잔 등은 스스로를 무국적자로 인식한다. 사실 이 나락, 무수한 국민들을 그렇게 버린 채 굴러가고 있지만... 주리와 그녀의 젊은 정부, 그리고 그녀보다 한 수 위인 이혼한 남편에게 조국은 '돈'이다. 한때 '대파'와 '쪽파'로 낭만적 사랑 놀이도 했었던 주인공 나와 그녀의 남편의 조국도 거기서 멀지 않다. 다만 얼마만큼의 집착과 욕망을 보이느냐의 차이일 뿐.   

정우는 때마침 이불을 발로 차내며 뽀드득뽀드득 하고 이를 갈고 있었다. 예전엔 보지 못했던 습관이었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이가 이를 갈면서 걸어가야 할 벼랑길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내가 몸을 팔면서까지 부추기고 내몰아온, 자본주의 무한 경쟁 사이로 난 광포하고 가파른 벼랑길이었다. 패배하면 죽는다, 라고 말해온 것이 나였고, 아비가 갔던 길을 답습하면 안 된다, 라고 채찍질해온 것이 나였다.
나는 그애가 오로지 전사가 되기를 바랐다.
지어미의 자리를 다 버리면서까지 내가 '비즈니스'에서 얻은 수익으로 사고자 한 것도, 생각하면 그 광포한 전사의 길로 아이를 내몰기 위한 가죽 채찍 같은 것에 불과했다. 전사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전선은 이미 침대 속까지 들어와 있었다. 자식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오욕이 가득한 화류항으로 나가는 어미들이 있는 유례없는 나라가 내 조국이고, 그 어미의 가죽 채찍질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세습되는 '귀족'들의 앞길을 열어주기 위해 오직 약육강식의 정글 속을 헤쳐나가는 전사로 길러지는 아이들의 나라가 내 조국이었다. – 136쪽

그래서 애석하게도 자폐아 여름이의 조국은 주인공 '나'가 될 수 있다. 돌아가신 엄마의 그림자를 채워줄 수 있고, 현재 나를 따뜻하게 보살펴줄 수 있는 사람. 그 엄마를 친아들 정우가 아닌 생판 남인 여름이가 조국으로 여긴다. 아이가 자폐아가 아니었다면, 그 아이의 조국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진정, 애석하게도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와 그녀의 비즈니스는 실패한다. 성공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그들은 순진했고 그래서 또 다시 피라미드의 하부 구조에 안착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구조가 그러할진대, 똑같은 수법이나 비슷한 대응으로는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다. 외고를 보내려고 안달하는 엄마들 위로 유학을 보내어 더 대단한 졸업장을 따오게 하는 학부모가 있고 그 먹이사슬은 점점 더 견고해질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사회 구조 안에서는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가 없다. 돌아오는 것은 찢어진 가랑이 뿐.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의 적나라함을 이야기하면서 독자에게 뿌듯한 기쁨을 주기란 힘들 것이다. 소설가가 대책까지 마련해 놓을 수는 없지만 허무함을 주며 이야기를 마칠 수 있는지,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이야기를 끝낼 수 있을 지는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야기'가 흡인력 있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에 별점 하나를 깎는 이유이다. 더블에서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는 그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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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1-04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다시 말이죠, 대물의 서혜림 공약이 생각나는군요.
국민을 지켜주는 국가가 되겠다는.
머 다른거 필요있겠습니까, 약자를 지켜주기라도 해달란 말입니다 라고 함께 외치고 싶네요.

마노아 2011-01-04 21:20   좋아요 0 | URL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국민 개인들도 약자를 지키는 것에 함께 동의해야 하는데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보면 아직도 그런 마음들이 많이 부족해요. 으으...갑갑한 일이에요...

전호인 2011-01-06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수아비춤을 읽고 아직 리뷰를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수직마저 박탈당한 그분(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네요)이 시민단체 사이트에 올린 글 자체가 허수아비춤의 느낌을 그대로 말해주는 듯하여 그것을 그대로 올릴까 생각중입니다. 이 책 표지만 보고 헐 했는 데 내용은 다른가보군요. 간직했다가 나중에 기회를 엿보렵니다. 현재 더블을 읽고 있는 데 아직 딜도까지는 진행이 안됐네요.ㅎㅎ

마노아 2011-01-06 15:21   좋아요 0 | URL
딜도 이야기는 더블 두번째 책에 나와요. 용산이 그리 먼 산이 아니란다에서 제가 웃으면서 울었어요.^^;;;
허수아비춤은 분노를 보여주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걸 '문학적'으로 표현은 못하신 것 같아요. 작가님의 명성에 비해서 상당히 실망스러웠어요. ㅠ.ㅠ
읽고 나서 쓰레기 같은 세상이라고 마구 폭발하고 말았으니 작가님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하신 거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