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눈물 외전
김진만.김현철 글,사진 / MBC C&I(MBC프로덕션)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근래에 일 때문에 자연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었다. 북극의 눈물이랑 툰드라를 보았고, BBC에서 제작한 많은 영상도 볼 수 있었다. 촬영의 질적 수준을 말한다면 단연코 BBC가 가장 수준급이었지만, 마음을 어루만진 다큐는 아무래도 아마존의 눈물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김남길의 멋진 나래이션도 물론 한몫을 했다.) 아마존의 눈물 피디가 무릎팍 도사에 2회에 걸쳐 나왔을 때 방송도 아주 재밌었다. 진솔했고 감동적이었다. 그들의 고생은 이루말할 수가 없었지만 도사님의 처방처럼 더 길고 긴 다큐멘터리 찍어 오라고 등떠밀고 싶을 만큼. 이제 그 아마존의 눈물 외전으로 책을 만나게 되었다. 



김진만 피디는 아마존 부족민의 삶을 담당하기로 했고, 김현철 피디 팀은 아마존의 생태와 환경을 맡았다. 김진만 피디의 이야기가 먼저 진행되는데 다큐 촬영팀을 꾸릴 때의 이야기가 재밌었다. 모두의 기피 대상이었던 아마존의 눈물을 총각 피디였던 그가 제일 우선 순위로 임자가 되었고, 가장 고생할 카메라 감독 인혁 형이 뜻밖에 쉽게 수락했다 싶었는데 그날 저녁 바로 전화가 다시 왔단다. 세계 5대 독총이 산다는 아마존에서 살아서 돌아올 수 있겠느냐고... 그리고 밤에 술에 취한 채 다시 전화를 했다 한다. '사랑해'라고 말해주면 가겠다고. 아무도 없는 방송국 복도에서 여러 번 사랑해!라고 외쳤다 한다. 아하핫, 처절하고 절절하다. 그렇게, 그들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현장에서의 고생은 말할 것도 없지만 도착하기까지의 고생도 엄청났다. 허가를 받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했다. 건강 검진도 수시로 받아야 했고, 무얼 준비해 가면 뭐가 부족하다고 다시 되돌려 보내고 속된 말로 뺑이를 치는 것이다. 게다가 요구하는 선물은 왜 그리도 많은지...  


어떤 곳은 헬기로, 또 어떤 곳은 경비행기로, 그리고 또 다른 곳은 보트를 타고서 접근할 수 있는 아마존의 여러 부족들. 일년 내내 열대 우림 기후로 늘 무더운 곳이지만 연교차보다 일교차가 더 큰 이곳에선 밤의 습기도 무시 못한다. 이들의 '해먹'이 그들의 환경에 얼마나 유용한지 두 피디는 연이어 강조한다. 내가 이 책을 샀을 때는 세계의 '기후'에 대한 자료가 필요했던 것인데 맨 마지막에 소개된 야노마미 부족 이야기가 필요했었다. 해먹에 대한 이야기도 내게 아주 좋은 자료였을 텐데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고 나중에 전체를 읽었더니 놓친 부분이 생겼다. 뒤늦게 아쉬움이 남는다.  



삐융의 공격으로 초토화된 제작팀의 피부들. 조연출은 병원으로 호송까지 될만큼 상태가 심각했다. 거울을 보면 도시로 돌아가고 싶을까봐 일부러 거울도 보지 않았던 조연출이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저 작은 곤충의 위력은 어마어마해서 그 가려움은 뇌속을 긁고 싶은 지경이었다고 한다. 피부가 바닥에 닿으면 자극이 되어서 밤새 간지러움에 시달려야 하니 원주민처럼 해먹에서 자는 게 제일 좋은 답안이다. 세로 본능으로 만들어진 몸이 좌우로 진동하는 해먹에서 녹지근한 느낌을 받으니 잠이 솔솔 올 것이다. 



순진한 눈망울의 저 아이는 고아가 된 소녀다. 제작진은 이 아이를 입양하는 문제까지 심각하게 고민을 했지만 결국 아마존에 두고 오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원시의 일상에 적응되어 있는 아이에겐 도시의 각박한 생활보다 그곳에서의 외로움이 차라리 나을 거라는 차선에 동의한다.  

문명과 접촉한 부족은 빠르게 문명화되곤 했고, 필연적으로 부족의 종말에 다가가고 있었다. 자연을 거부하지 않던 신체가 자연을 부담스러워하게 되고, 외부에서 유입된 옷가지 등에서 병균이 침입하고,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아오는 교환은 더 적게 가진 그들을 먼저 거덜나게 만들었다. 뻔뻔스럽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부족에서는 도난 사건도 일어나고 결국 가장 중요한 발전기를 강탈당하다시피 해서 야반도주까지 감행해야 했다. 우리 생각에는 참으로 순수할 것 같은 그 사람들에게서 이런 때묻은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착잡함을 금할 수가 없다. 그들의 탓은 아니어도 그들의 몫이 되어버렸으니. 

그들만의 언어가 사라진 부족이 그들만의 전통과 철학을 지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브라질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원주민의 전통적 삶의 소멸을 담보로 대체되었던 것은 빈곤과 소외였다. 자본이 힘인 사회에 편입되는 순간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곤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말을 배운 젊은이들은 마을을 떠나 도시로 향할 것이다. 그만큼 도시의 유혹은 강렬하다.
아마도 그들은 변화의 회오리에 말려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존을 가지려는 자들의 끈질긴 추구는 삐융에 못지않을 것이다. 그리고 시작은 자의가 아니었지만 그 책임은 온전히 원주민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 되었다. – 55쪽  


제작진들이 가장 극찬했던 조에족과의 만남은 극적으로 성사되었다. 미접촉 부족이었던 조에족이 BBC 대신 한국의 다큐팀을 선택한 것은 보다 적은 규모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 상대적으로 열악한 제작 환경과 제작비 등등이 도움이 되는구나 싶어 재밌었다. 



 조에족의 상징인 턱에 끼운 뽀뚜루. 사실 뽀뚜루는 조에족의 말이 아니다. 저 장식을 만든 나무의 이름이 포르투갈어로 뽀뚜루이다. 이것 때문에 조에족은 치열이 대단히 안 좋고 치아도 많이 망가졌는데 이걸 하지 않으면 아주 부끄러워 한다고 한다.  

김피디가 '나쁜 남자'라고 명명했던 멋진 사냥꾼 모닌은 뽀뚜루 만드는 솜씨도 탁월했다. 칼 한 자루로 둥글고 길쭉한 뽀뚜루를 2시간 동안에 만든다. 영구치가 자라는 6세쯤 원숭이뼈로 턱을 뚫는다고 하는데 더 어릴 때 할 줄 알았던 나로서는 오싹했다.  

유능한 사냥꾼 모닌은 아내가 셋이고, 모닌의 여동생 투싸에게는 남편이 둘이다.  

바로가 사냥을 통해 가족을 먹인다면 와후는 늘 곁에서 가족을 돌보며 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가족을 지켜주는 와후가 있기에 바로는 며칠씩 사냥에 열중할 수 있다. 원시의 거친 삶은 일처다부, 일부다처, 다부다처를 필요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부족의 생존과 유지에 필요한 지혜의 산물이다. – 186쪽


그들의 생활과 환경에서는 가장 적합하고 지혜로운 혼인제도. 게다가 평화롭고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추장도 없다는 조에족. 모두가 평등하게 생활하고 다툼도 미움도 없다고 한다. 살인 사건 한 번 발생하지 않았다는 평화로운 부족. 게다가 욕심도 없다. 어떤 부족에서는 과도한 선물을 요구하고 도둑질까지 해가지만, 여기서는 기어이 주겠다는 선물마저도 마다했다. 궁금해서 만져는 보더라도 곧 되돌려준다. 그 열악하고 무서웠던 아마존으로 다시 가고 싶다는 피디의 그리움에는 욕심 없이 평화로웠던 조에족의 공이 가장 클 것이다.  

김진만 피디 팀이 삐융의 공격으로 죽다 살아났다 할 수 있다면, 김현철 피디 팀은 보트 사고로 죽다 살아났다. 배가 뒤집어졌고, 카메라도 잃어버렸고, 당연히 필름도 찾지 못했고 부상도 입었다. 그렇지만 살아남았다. 자신이 데리고 온 팀원이 보이지 않자 피디가 겪었을 정신적 공황이 그려진다. 얼마나 무섭고 끔찍했을까. 다행히 그들은 모두 살아서 돌아왔다. 훌륭한 다큐까지 찍어서. 



분홍 돌고래 보뚜는 촬영할 수 있었지만, 재규어는 끝내 카메라에 담아오지 못했다. 발자국만 찾은 게 다였다. 한없이 기다릴 수 없는 제작환경 때문이었다. 시청자도 아쉬운 부분이다.   

아마존의 불법 벌목의 위험성은 여러 차례 제기되고 있지만 단속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목장 주인의 일갈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목장을 가장 많이 가진 마토그로스 주지사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아이들이 못 먹고 교육받지 못할 때는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지금은 우리가 나무를 한 그루만 베어도 시끄럽게 군다."
이분법적으로 보면 자연과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파괴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살아남기 위한 고통의 몸부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목장주들의 갈등 또한 쉽게 풀릴 만한 숙제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 248쪽

  

대책 없는 규제와 감독만이 능사가 아니다. 공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물고기 삐라루꾸 보존 사례와 같이 무분별한 남획과 벌목이 장기적으로는 서로에게 손해라는 것을 깨닫고 바른 의식이 빠르게 번졌으면 한다. 욕망을 억제할 때 오히려 인간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만... 



느림의 미학 슬로스, 나무늘보다. 너무 느려서 촬영하다 지쳐 떨어진 제작팀. 심지어 편집할 때조차도 화면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우리처럼 급한 사람들에겐 얼마나 고문이었을까. 

우리는 더 빠르게 살려고만 한다. 아마존의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속에 사는 생물들 역시 모두 같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빠르고 포악해야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 그 정글 속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원시를 슬로스에서 봤다.
원시의 속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리해야 했다. 빠르게 살아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 빠르고 잔인하고 거대한 동물들이 살아가는 아마존, 이곳에서 슬로스는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었다. – 227쪽 

빠르고 강한 것들만 살아남을 것 같은 아마존의 밀림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 슬로스라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우리가 들여다보아야 할 또 다른 세상의 조화이기도.   

금광으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야노마미 족 이야기도 참 안쓰러웠다. 추장 다비가 어렵게 촬영에 협조하면서 부탁한 당부가 가슴에 박힌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의 세상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대가는 당신들이 짊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식들은 악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마존이 어떠한 곳이었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제 메시지입니다. 당신들은 이것을 한국에 알려주세요." – 289쪽 

하나의 세상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개발, 알더라도 내가 아니니 상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개발. 비단 아마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눈 먼 개발은 얼마나 많던가. 거기에 현혹되어 한 몫 벌고 싶어하는 눈 먼 욕심은 또 얼마나 많던가.   

조에 부족 내에서 아직까지 살인 사건은 보고된 적이 없다고 후나이 사람이 말했다. 조에 부족은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나 분노가 없다.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눈빛이 깨끗하다. 그건 역설적으로 문명의 맛을 본 사람들이 얼마나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우린 지금 문명의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다. 소음 때문에 타인을 죽이기도 하는, 일상의 다툼에서조차 자신의 분노를 주체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분노가 얼마나 크기에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앗을 수 있단 말인가. 문명을 누리는 대가로 우리가 지불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의 이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아마존의 두려움을 보러 갔었다. 아마존은 아마존이 가진 두려움이 우리의 두려움과 다르지 않고, 심지어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큰 두려움이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 302쪽

우리의 일상과 너무도 다르고 다른 아마존의 이야기. 오히려 다르기 때문에 귀기울일 이야기가 많다.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책이 방송보다 좋다고는 말 못하겠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방송의 뒷 이야기로 '외전'일 뿐이니까. 방송을 찾아 보고, 조금 더 시간이 허락된다면 책도 같이 보면 좋겠다. 수고했던 제작팀에게 격려의 박수도 전해주면서... 

올해 '아프리카의 눈물'은 아직 1회 밖에 보질 못했는데 아마존/북극 편에 비해서 조금 약했었다. 다 보지 못했으니 장담은 이를 것이다. 아무튼 간에 계속해서 기대와 격려를 아끼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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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12-31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폰트 수정이 안 되네..ㅜ.ㅜ

마노아 2011-01-01 21:27   좋아요 0 | URL
이젠 폰트가 정상인데 단락이 뒤바뀌어 있네.(ㅡㅡ;;;)

자하(紫霞) 2010-12-31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마노아 2010-12-31 19:29   좋아요 0 | URL
네, 우리 같이 복도 받고 건강히 지내요.^^

순오기 2010-12-31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릎팍도사에 나온 건 봤는데 정작 다큐는 못 봤어요~
굉장히 고생했던데... 책을 보면 더 실감이 나겠네요.

마노아 2010-12-31 21:43   좋아요 0 | URL
무릎팍도사에서 짧고 굵게 인상적으로 보았어요.
다큐는 김남길의 목소리가 정말 일품이었고요.
그때가 선덕여왕 끝날 즈음이어서 더 효과가 컸었죠.^^

노이에자이트 2010-12-3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남길이 형이 해설을 맡았군요.

마노아 2010-12-31 23:16   좋아요 0 | URL
최고였어요. 안성기 씨와 고현정, 그리고 현빈을 다 눌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