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21 - 가자미식해를 아십니까?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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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북한 음식 취재를 위해 애써왔다는 것을 알지만, 잘 안 됐다고 알고 있었다. 본격적인 음식 취재는 다녀오지 못했지만 다행히 교류 차원의 방문은 다녀올 수 있었다고 한다. 입국신고 때 현금을 10원 단위까지 기재하는 것을 보고서 역시 남다르구나... 싶었다. 

 

추운 날씨 탓에 젓갈 사용이 적은 북한 김치인지라 슴슴한 맛이었다고 한다. 자극적이진 않았지만 청량감이 좋았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상상은 된다. 북한에서 '찌개'는 자작자작 졸여 먹는 음식인지라 우리나라 식 김치찌개를 먹고 싶으면 김칫국을 주문해야 한단다. '김칫국'이라고 하니까 웃기다.^^ 그밖에 칠색송어튀김과 회, 탕이 사진에 담겨 있다.  

101화는 설날 떡국이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이 출감하면 그때부터 몇 달 간 강력계 형사들이 아주 바빠진다고 한단다. 범죄 재범률이 너무 높은 우리나라 현실이다 보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이번 이야기에선 성찬이가 무려 사기범으로 의심까지 받았다. 형사님 감 그렇게 떨어져서야...;;;; 

직업 특성상 형사라는 것을 밝히지 못해서 아빠 직업을 건달이라고 말한 에피소드에 쓴 웃음을 짓게 된다. 정말 직업이 건달이면 건달이라고 말 못했을 것이다. 본인이 떳떳하니 위장 직업으로 건달이라고 둘러 말할 수도 있는 것. 그들의 애환도 애환이거니와 사회적 눈높이를 생각하며 왠지 착잡했다. 

사기꾼도 전문 지식을 활용하는 시대. 수험생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극성스런 학부모가 소비자로 있는 한, 그런 식의 사기 사건이 멈출 것 같지 않다. 물론 그걸 악용해 파는 놈들이 더 나쁘지만 내 아이만 앞세우고자 고군분터하는 부모 상도 결코 반갑지 않다.  

문헌을 바탕으로 재연된 조선시대 왕들의 식단을 사진으로 올려줬다. 기름진 육류 위주의 식단과 운동부족으로 평생 건강의 비협조를 받은 세종의 식단, 그리고 조선 왕조 최장수 임금 영조의 식단은 비교할 만하다. 그치만 이렇게 사진으로 봐서는 잘 구별이 안 간다.^^ 

식객에는 다양한 지식인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성찬이가 음식에 관하여 갖고 있는 지식도 그렇거니와 그밖에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필요한 지식들을 적재적소에 심어준다.  

이번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기꾼도 막 출소했을 때 먹는 두부의 의미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해 준다. 

교도소에서 나오면 벼르던 음식을 한꺼번에 먹고 탈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영양도 있고 소화도 잘 되고 배부른 두부를 1차로 먹는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흰 두부로 얼룩졌던 인생을 다 잊고 깨끗하게 새 출발하라는 액땜의 의미라고 한다. 두번째 의미만 알았는데 첫번째 이유의 타당성에 크게 고개가 끄덕여 준다.  

성찬이도 설명한다. 가래떡의 '가래'는 떡이나 엿같이 둥글고 길게 늘여 만든 토막이란 뜻이라 한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멥쌀가루를 쪄서 안반 위에 놓고 자루 달린 떡메로 무수히 쳐서 길게 만든 떡을 흰떡이란 한다. 이것을 얄팍하게 엽전같이 썰어서 장국에다 넣고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고 끓인 다음 후춧가루를 친 것을 떡국이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엽전 모양 떡국을 통해 1년 동안 주머니가 풍성하기를 바란 마음이 읽힌다. '꿩 대신 닭'이란 말도 원래 떡국 국물용으로 쇠고기나 꿩고기를 썼는데 구하기 힘들 때는 닭을 쓰면서 생긴 말이라고, 깜짝 등장 인물 어느 교장 선생님이 전하신다. ^^ 

102화의 주제는 호떡인데 가장 슬픈 이야기였다. 노숙자들을 밀착 취재해서 내용을 전개했는데 서울역 꼬맹이 역으로 나온 이기창 씨 이야기는 실화라고 한다. IMF 이후 노숙자들이 말도 못하게 늘었는데 그 무렵부터 교회 등에서 요일을 정해 구제금을 나눠준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너무 인원이 많아 한 명당 200원이나 300원 정도로 제한한다고 하는데, 그런 곳들을 구역으로 묶어서 요일별로 순회를 돈다고 한다. 그걸 짤코스라고 하는데 하루 온종일을 다녀도 15,000원 정도. 다리 품 판 대가로는 참으로 적은 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끌어오리기 힘든 삶에의 재활 의지가 안타깝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고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이다. 어느 교회의 장로님은 교회가 작고 가파른 언덕에 있어서 일부러 내려와서 구제금을 나눠주는 모습을 담았는데 짠했다. 이런 겸손함이 모두에게 필요한데 말이다. 

 

어려서 서울역에 버려진 꼬마. 호떡 먹고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해서 내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노숙자 생활을 했다. 세상에서 호떡을 가장 좋아하는 사나이. 드디어 호떡 포장마차를 개업해서 호떡집 불난 듯이 장사가 잘 되고 있는데 기사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 묻는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슬프냐고. 남자는 엄마가 하늘 나라에 계시다고 한다. 나를 찾지 않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라고. 엄마는 거짓말을 안 하시니까. 그런데 왜 기다리냐고 다시 물으니, 그건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리워하는 거라고 한다. 그리움으로 버텨낸 그의 인생. 그런데 반전이 생긴다. 생모가 나타난 것이다. 예상대로 기창 씨는 상봉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를 버티게 해준 건 엄마의 사랑을 의심치 않는 마음이었는데 본인이 정말로 버려졌었다는 것을 안 순간 그리움은 증오로 변한다. 그가 나중에라도 엄마를 용서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먼 발치에서 볼 수도 있겠지만, 모자가 진심으로 두 손 맞잡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가난이 원수고, 목숨이 참 모질다...  

103화는 가자미식해편. 

극 중 보광 레스토랑이라고 소개되는 등장 인물들의 허름한 아파트는 이미 2005년에 재개발되어 건물이 헐렸다. 작품 속에선 아직 살아있었는데 이젠 작품 속에서도 철거되는 운명으로 그려진다.

 

사람이 떠나고 난 자리에 그들의 회포를 알려주는 낙서가 남아버렸다. '철거'에 대한 이야기는 늘 가슴이 아프다. 철거될 공간에 살고 있던 사람 중에 더 나은 조건으로 만족스럽게 이주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저마다 대개는 저리 눈물과 회한을 남기고 떠날 테지... 

이들의 이별 이야기와 분단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함경도 사람의 가자미식해 이야기를 잘 버무렸다. 문헌상으로는 조선시대 중엽에 식해가 등장했다고 하는데, 유목문화에서 농경문화로 접어들면서 부족한 단백질 섭취를 위해 생선을 저장, 발효시키면서 먹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고구려시대 때부터 먹지 않았나 얘기하고 있다. 뭐, 꼭 오래 되어야 더 훌륭한 맛은 아닐 테지만.  

104화 황태 편은 송천 물줄기를 화자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진행한다. 먼저 명태의 다양한 이름 소개부터 보자.  

명태는 바다에서 바로 잡아 젖은 걸 부르는 말입니다.
북어는 바닷가 세찬 해풍에 바짝 발린 것이고요.(말린... 아닐까?)
노가리는 새끼를 말린 것, 코다리는 물기가 약간 있게끔 꾸들꾸들 말린 것.
황태, 일명 노랑태는 덕장에서 겨울 내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여 말린 것.
찐태는 덕장에서 날씨가 따뜻해 물러진 황태, 백태는 덕장에서 날씨가 너무 추워
겉이 하얗게 변한 것, 낙태는 걸어놓은 덕장대에서 바람에 못 이겨 떨어진 것,
먹태는 안개가 잦고 햇볕을 덜 받아서 검게 마른 것, 깡태는 딱딱하게 마른 것, 
무두태는 대가리를 떼고 말린 것, 파태는 손상된 것.
이외에도 지방마다 조금씩 다른 말도 있을 겁니다. -226쪽 


황태의 원산지는 함경도 원산이라고 하는데 한국전쟁으로 피난 온 원산 사람들이 맛있는 황태를 만들기 위한 기후 조건을 찾다가 인제군 용대리와 평창군 횡계를 골랐다고 한다. 

황태 편은 작업 일기에 놀랐다. 그림 그리는데 고생을 너무 많이 한 것이다. 

 

저 한 컷을 무려 8시간 동안 그렸다고 한다. 오른쪽은 실물 사진. 손이 많이 가는 그림으로 보인다. 배경 담당 문하생에게 심심한 위로를....;;;;; 

저 그림 속의 황태가 14억 원어치라고 하니 놀랍다. 오늘 아침에 북어국 먹었는데...^^ 

105화는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 번 훼손된 바다가 다시 정화되려면 너무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사고친 놈들은 여전히 잘 살고 있고 애꿎은 어민들만 여전히 고생하고 있다. 연평도 주민들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다. ㅠ.ㅠ 

이번 이야기에서 그래도 미소를 짓게 하는 건 훌륭한 시민 세 사람 덕분이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샘, 코빌, 나즈물. 자원 봉사하려고 한 달 동안 휴직을 했는데 차마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아예 사표 쓰고 넉달을 이곳에서 봉사를 했던 분들이다. 게다가 이분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고 하니 부끄럽고 미안하고 고맙고, 여러 감정이 섞이고 만다.  

고국에 돌아가서도 봉사를 하고 싶다는 참으로 고운 마음의 사람들. 왜 방글라데시의 삶의 만족도가 높은지 알 것 같다. GDP 따위로는 환산할 수 없는 아름다운 마음씨다.  

식객은 음식 만화로서 음식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은 당연하고, 음식에 깃들어 있는 삶에 대한 희노애락을 잘 담아내고 있다. 더불어 사회 문제에도 귀를 기울이고 외면하지 않는 녹여내는 대단한 내공에 늘 감동받게 된다.  

이런 작가님이 계신 것은 독자에게 큰 복이다. 허영만 화백님, 앞으로도 오래오래 작품 활동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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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0-12-2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 이동도서에서 식객을 빌려보다 말았는데, 내일은 다시 책버스로 출동해 봐야겠어요.ㅎㅎ

마노아 2010-12-24 02:05   좋아요 0 | URL
식객을 오랜만에 읽었는데 역시 저력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