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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 ㅣ 담푸스 칼데콧 수상작 1
존 셰스카 지음, 이상희 옮김, 레인 스미스 그림 / 담푸스 / 2010년 9월
평점 :
아주아주 독특한 책이다. 그림도 심상치 않았지만 들쭉날쭉한 글씨 크기도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보통 괴짜가 아니겠는 걸!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7603133617453.jpg)
원래는 보통 흰 종이로 빈채로 지나가는 첫 페이지에 빨간 암탉이 목청을 돋우고 있다. 글자 모양만 봐도 엄청 시끄러워 보인다. 잭도 여긴 면지가 있을 공간이라고 외쳐보지만 암탉은 도무지 듣지를 않는다.
이어서 제목이 나오는 면의 구성을 보시라. '제목이 있는 쪽'이라고 적혀 있다. 그래놓고 아래쪽에 이 책의 진짜 제목이 등장한다. 역시 심상치 않아...
그 뒷장에는 글씨가 뒤집어진 채 나온다. 파본 아니다. 일부러 뒤집어 놓은 것이다. 누가 거들떠 보겠냐며 심드렁한 얼굴의 잭. 꼭 읽고 싶다면 물구나무 서서 보면 된다고 한다. 하핫, 그정도 수고는 못하겠고 뒤집어서는 읽어봤다. ^^
옆에 머리말을 쓴 저자 이야기도 확 깬다. 그저 지루한 이야기로 머리말을 채우고 있을 뿐이라고 대놓고 말을 한다. 보건복지부 장관의 경고는 어떻던가.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아주 멍청하며 여러분의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습니다.
아, 이쯤 되면 파격미라고 할 수 있겠다. 어린이들도 막 들떠서 책장을 넘기게 되지 않을까?
병아리 리켄의 이야기가 나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제동을 건다. 사실은 '차례'가 나올 차례였단다. 하늘이 무너지는 이야기를 하다가 차례가 무너진 그림을 보여준다. 엉뚱하지만 차례를 알아보는 게 어렵지는 않다.
이 책은 계속 이렇게 튀는 구성을 보여준다. 작은 이야기마다 황당한 전개를 보여주다가 뚝 멈추더니 '끝'을 외치곤 한다. 이야기 9편을 끝내놓고 마지막에 한 번 더 강조하는 '끝'과 썩소를 날리고 있는 꼬마의 모습이라니, 보통 배짱이 아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7603133617455.jpg)
스타일을 알아보기 위해서 이야기 몇 편만 소개해 보자.
공주와 볼링공은 알다시피 완두콩 공주를 패러디한 것이다. 완두콩 한 알 위로 요 100장을 깔아두고 며느리를 고르는 엄마 덕분에 장가를 못 가게 된 어느 왕자님이 머리를 쓰는 것이다. 엄마 몰래 완두콩 대신 볼링공을 넣어둔 것. 요 100장을 깔았어도 알아봄직한 크기 아니던가. 요 백장 위에서 어떻게 안 떨어지는 것 따위는 묻지 말자. 그건 약속이니까.
하여간, 나름의 임기응변으로 마음에 든 공주님과 결혼하게 된 왕자님 이야기다. 끝!
그 다음엔 아주 못생긴 아기 오리 이야기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운 오리 새끼의 패러디다. 여기서 등장하는 아기 오리도 자기가 언젠가 눈부시게 하얀 고니로 멋지게 변신할 거라고 의심치 않았는데, 이 오리는 정말로 아주 못 생긴 오리였을 뿐이다. 변신 따위는 없었다. 이야기 끝!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7603133617456.jpg)
자기가 사실은 왕자였는데 못된 마법에 걸려 왕자인 척했던, 사실은 진짜 개구리의 공주님 입술 훔치기 대작전과, 잭과 콩나무 이야기를 패러디한 잭의 이야기다. 마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한 페이지를 읽는 기분이다. 같은 문장을 바복하면서 글자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무수한 동화들을 패러디하면서 해학과 냉정함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멋진 변신과 대반전도 없다. 없어도, 그 자체로 이야기는 충분히 된다. 지나치게 해피엔딩만 강조하는 동화나라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신선할 수밖에 없다. 이런 파격미가 칼데콧 아너 상을 수상하게 해줬을까?
패러디 동화책은 늘 즐겁다. 물론 원작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재미며 특권이다. 그러니 어린이 친구들에게도 이 책은 이미 익숙한 이야기를 알고서 만나야 마땅한 책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디서 웃어야 할지, 왜 이야기가 뚝 끝나는지 파악하기 힘들 테니까.
어린이 친구들이라고 늘 예쁘고 상냥하고 멋진 이야기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도 즐길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게 한달까.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7603133617457.jpg)
책의 뒷장 표지다. 끝까지 평범하지 않다. 앞에서부터 내리 투덜투덜 대던 수다쟁이 빨간 암탉, 이제 그만 안녕하자.
이 책은 향기로운 이야기는 아니어도 절대로 멍청하지 않은 재미난 이야기 모음이었으니까 너무 구박하지 말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