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되어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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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 감동 휴먼 다큐 '울지마 톤즈' 주인공 이태석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증보판
이태석 지음 / 생활성서사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 '울지마 톤즈'를 무척 감동깊게 보았더랬다. 나보다 먼저 영화를 보고 온 언니가 책도 구입을 하더니 먼저 보라고 내게 안겨주고 갔다. 눈물샘 터지는 것 아닐까 다소 긴장하고 시작했지만 전혀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았다. 슬픈 내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신의 투병 이야기도 아니 나오고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가에 대한 뻐김도 없고, 오로지 당신이 만난 아름다운 영혼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 속에서 깨달은 신의 은총,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는 이야기만이 담겨 있다. 이분, 천상 절제의 미학을 아시는 사제시구나. 남기신 글자욱도 겸손하신 분이다.
힘들다는 의대 공부를 마치고 머나먼 아프리카 오지에서 기꺼이 슈바이처가 되어주신 분, 왜 굳이 그곳인지, 왜 또 굳이 사제 서품까지 받으셨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본인도 모르겠다고 허허 웃으시는 분. 숭고한 사명의식이라고 그닥 틀릴 것도 없는 얘기로 뽐내시지도 않는다. 좀처럼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그곳 풍습과 문화 차이로 상처도 될 법 하건만, 오히려 아주 가끔 맞닥뜨리는 고마움의 표시에 황송해 하신다.
보통 이곳 주민들은 약, 주사, 음식 등 모든 것을 무료로 베풀어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들고 와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경우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이러한 그들의 문화의 벽을 깨고 직접 농사지은 호박이나 날씬한 아프리카 토종닭을 들고 와 고맙다는 인사를 한 사람이 8년 동안 딱 세 사람 있었는데, 그중에 두 명이 놀랍게도 나환자였다. 과부의 헌금처럼 닭 한 마리는 그들에게 엄청난 재산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육체적으론 문드러지고 사회적으론 버림받았지만 마음만은 어느 누구보다도 부유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감각 신경이 마비되어 뜨거운 것,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해 손과 발에는 화상이나 상처가 가득하지만 감각 신경의 마비를 보완이라도 하듯 보통 사람보다 수십 배나 민감한 영혼들을 지니고 있다. 자그마한 것에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그 감사를 기어코 무언가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영혼 말이다. – 74쪽
그들은 왜 고맙다는 말에 그토록 인색한 것일까? 척박한 땅에서 오랜 전쟁과 기아로 마음이 황폐해진 것인지, 먹을 게 부족해서 나눌 것도 없었기 때문인지 통 알수 없지만, 그 와중에도 그곳에서 가장 배척당하는 나환자들이 더 열린 마음을 보여준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감격스러우면서 동시에 안쓰럽다.
신부님이 계셨던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훈훈하면서 동시에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할 때도 많았다.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죽 한 그릇을 두고 싸우던 부자의 모습을 보면 가족들의 정은 끔찍하다. 하루종일 굶었을 아빠와 함께 나눠먹어야 한다는 아들, 아프니까 혼자 먹으라고 사양하는 아빠가 고집 피우며 싸우는 장면이 꽤 먹먹했다. 반면 여자아이를 귀히 여기며 애지중지 키우는 모습에서 뭔가 기대를 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이 곧 소를 많이 받고 값을 올려 시집보내려는 매매혼의 풍습이란 것을 알고 나니 혀끝이 쓰디 쓰다.
여아 선호 사상, 예쁘게 잘 치장한 여자들의 모습, 여자를 보물처럼 아끼고 잘 키우려는 것 등등 외형적인 것들만 보면 이곳은 분명히 '여자들의 천국'이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고 나면 이곳은 외려 '남존여비 사상'이 철저한 곳임을 알게 된다.
여자 아이들을 아름답게 꾸미고 치장하며 될 수 있는 한 잘 먹이고 잘 입히는 것은 받을 '소'의 수를 늘리기 위한 것, 즉 값이 더 많이 나가도록 상품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 결코 여자를 한 인간으로서, 남자보다 더 귀중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은 아니다. (...)더욱 서글픈 것은 결혼 때 팔려 온 여인네들은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줄줄이 아이들을 낳고 소처럼 일해야 한다. 말 그대로 '소 값'을 해야 하는 것이다. – 25쪽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소의 생김새. 뿔이 찬란하다 못해 무시무시하다. 예쁘고 교육까지 받은 소라면 값이 올라 '경매'까지 들어가는 실정이라 한다. 소 200마리에 낙찰이라니..ㅜ.ㅜ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크다는 딩카족. 이들에은 이마에서 후두부까지 여러겹의 칼자국을 내는 것으로 성인식(고르놈)을 치른다. 오랜 전쟁으로 용맹함이 곧 생존의 무기였던 그들의 역사를 생각해볼 때 납득이 전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비명도 안 되고 눈물도 보이지 않고 그 피칠갑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니 살벌함이 느껴진다. 더불어 생니까지 빼야 한다니...
문화의 차이를 미개함으로 몰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안타깝게 여겨지는 부분이긴 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런 풍습들이 줄어드는 경향이라고 한다.
고 이태석 신부님도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셨는데 이곳 톤즈의 아이들도 그랬다 한다. 35인조 브라스 밴드를 만들었을 때 노래 한 곡을 가르쳐서 합주에 이르기까지 두 세달을 예상하셨는데, 정확히 4일 만에 합주를 해보였다고 한다. 이거 천재 아닌가! 관악기 담당 아이들이 음악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제대로 안 나와서 의아하게 여겼는데 생니를 뽑아놔서 아랫니가 없었던 탓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신부님도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다행히 다른 포지션으로 바꿔주셨지만.
아무래도 저자가 사제인 까닭에 종교 이야기가 아니 나올 수가 없다. 당신의 신앙 고백서라고 해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종교 이야기가 나온다고 굳이 인상부터 찡그릴 필요는 없겠다. 신부님의 깨달음처럼 무조건적으로 신앙만 앞세우는 분이 아니셨다. 이분의 깨달음이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동일한 울림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많은 종교인들이 종교를 앞세워 그동안 얼마나 오만했던가. 그 안에 당신들이 섬기는 참 신은 보이지 않은 채 말이다.
다르푸르의 아이들은 정말 우리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들임이 틀림없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며 사랑을 잃은 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데에 그들이 가톨릭이나 개신교면 어떻고 이슬람교면 어떤가? 그들이 우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꼭 우리가 믿는 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내 안에 잠재된 강박적인 사고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이 바리사이들에 대한 특별한 알레르기가 있었음을 분명히 느낄 수가 있다. 이는 종교의 틀에 인간들을 끼워 구속시키려는 바리사이들의 사고와 행동에 맞서 '종교는 인간을 구속하는 정신적인 틀이 절대 아니다.'고, '오히려 인간을 더 자유롭게 만드는 정신적인 해방의 틀이다.'는 것을 외치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 194쪽
이번에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오면서 영화 '울지마 톤즈' 이야기랑 에피소드가 더 추가됐다. 언니가 주문을 언제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절판된 초판이다. 흐음, 뒷 이야기가 궁금한데 서점에서 읽어야 할라나.
이제는 고인이 되어 더 이상 톤즈 아이들의 아버지도, 신부님도, 선생님도 되어주지 못하지만, 그분이 뿌린 씨앗이 이미 그 아이들의 마음 속에 뿌리를 내려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상처입은 기억들을 보듬어 주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얼마나 바르게 자라는지를, 하늘 나라에서 흐뭇하게 바라보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그분은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느냐고. 기꺼이, 그네들의... 이 땅의 소외받는 많은 이들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겠느냐고... 대답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이미 울릴 것이다. 그 울림에 정직해질 차례다.
덧)168쪽에 '부화가 난다'라고 적었는데 '부아'의 오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