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임석재 지음 / 대원사 / 1999년 10월
구판절판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팔작지붕은 정면에서 볼 경우 근엄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측면에서는 펄럭이는 듯한 경쾌한 감흥을 자아낸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측면에서 보면 한껏 들뜬 소녀의 몸짓 같은 활성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다.
다만 에너지가 너무 넘쳤달까. 무거운 지붕을 받치기 위해서 보조 기둥의 도움이 필요해졌다. 조금 덜 날개를 펴고 기둥이 없어졌다면 더 멋있지 않았을까?
개심사 범종각은 한국의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휜 나무를 다듬지 않고 휜 채로 네 귀퉁이에 사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저렇게 휘고 뒤틀어진 나무도 기둥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여긴 발상 자체가 멋지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훌륭한 자태를 뽐내는 개심사 범종각!
갑사 대웅전 기단은 크고 작은 돌들이 불규칙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쌓아져 있다. 주먹만한 돌에서부터 3~4미터씩 되는 큰돌이 정형적 규칙을 거부하며 제멋대로 쌓아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불규칙 속의 질서가 강하게 느껴진다.
규격을 벗어났음에도 질서와 규칙이 엿보인다. 부조화 속의 조화. 자유로우면서도 응축된 힘이 느껴진다.
종묘의 바닥에 깔린 돌길. 살아있는 왕이 정사를 펼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품석은 생략되었다. 길도 세 겹이 아닌 외겹. 어쩐지 겸허해지는 느낌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적 여정을 보여주는 종묘의 돌길.
종묘는 가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멀리 있지도 않은데...
광활한 평지에 곡선을 그리며 돌아가는 왕릉이 길은 왕이 살아왔던 인생 여정을 상징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망자의 여정인 왕릉의 길은 교만하지 않은 편안한 곡선으로 완만하게 나 있다.
영릉의 길은 완만해 보인다. 세종의 치세 기간 사건이 없었던 게 아니지만, 그래도 조선 중후기의 임금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느껴진다. 훨씬 역동적이었고 긍정의 에너지가 넘쳤지만 그 후대 임금들의 검은 오로라가 너무 짙어서 그리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빡빡함 그 자체. 서양 건축에서 사각형 공간은 모서리를 모두 폐쇄해서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준다. 우리의 한옥이 모서리를 열어두어 덜 짜임새 있게 느껴지지만 보다 투명하고 개방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위에서 들여다봐서 그런지 사진 속의 건물들은 너무 답답해서 숨이 턱 막힌다.
아무래도 우리 건축물 이야기는 좀 더 재밌게 보았는데 서양 건축물 쪽은 덜 관심이 가서 사진도 우리 쪽 사진이 훨씬 많다. 그래봤자 모두 여섯 장이지만.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 재미는 덜했다. 우리의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짚어준다는 기획 의도는 좋았는데 그 접점이 생각보다 덜 맞아 떨어졌다. 아귀가 맞는 느낌보다는 그냥 나열하는 느낌?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보게 된 것은 절판된 책이라 구하기 힘들어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오래 끼고 읽었다. 다 보니까 속이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