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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조선 2 - 꽃피는 인쇄술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1권을 미출간 도서로 읽은지 한참 지났다. 그때는 이게 무려 3권짜리 책의 첫 권인줄 모르고 한참 재밌게 읽다가 이야기가 뚝 끊겨서 당황했었다. 궁금했었던 것 치고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뒷 이야기를 읽게 된 셈이다.
일단 소재가 무척 신선했다. 세종 때 맹활약을 펼쳤던 장영실. 그가 만든 가마가 부서지면서 장을 맞고는 홀연히 실록에서 이름이 사라진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야기.
작가 오세영은 그가 세종의 밀명을 받고 명나라에 가서 한글 보급을 위한 활자 발명에 올인한다고 설정해 놓았다. 그러다가 그의 제자 석주명이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서방으로 도망을 치다가 마침내 독일까지 흘러들어가 구텐베르크의 인쇄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되어버린다는 이야기. 그리하여 이 책의 제목은 '구텐베르크의 조선'이다.
표지에서 포스가 흐른다. 금박을 입힌 제목도 눈에 띄고, 구텐베르크의 일하는 모습과 한글의 활자가 어우러져 무척 고급스런 느낌을 자아내었다.
두번째 권에서는 이야기의 무대가 좀 더 커진다. 공방의 일거리가 늘어나면서 주자량이 많아지자 주형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 그것을 보수하려면 안티몬이 필요한데 그걸 구하기 위해서 석주명 일행은 함락되기 직전의 콘스탄티노플로 향한다.
콘스탄티노플은 여주인공 이레네의 마음의 고향. 당연히 그녀도 석주명과 동행한다. 이곳에서 안티몬을 구하기까지의 과정은 대하 서사 드라마가 되어버린다. 콘스탄티노플 출신이면서 신앙을 버리고 예니체리 군관으로 거듭난 한 사내.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원수가 되어버린 집안, 그리고 이어지는 복수 등등. 잡다한 설정들은 너무 뻔한 편이어서 이야기는 커지고 스토리가 장황해지나 지루한 감이 많았다. 스케일이 크고 역사적 상황을 잘 버무렸음에도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이어서 매력을 잃은 듯하다. 그것은 주인공인 석주명과 이레네도 마찬가지였다. 작품의 첫 시작 부분의 설정은 무척 참신하고 호기심을 끌어당겼지만 작품을 쭈우욱 이끌어가는 이야기의 힘은 부족했다.
아무튼 안티몬을 구한 것은 물론이요, 제조비법까지 익힌 석주명의 공으로 구텐베르크는 더욱 승승장구한다. 그렇지만 갑작스런 성공은 많은 이들의 시새움을 얻게 하였고, 독선적인 그의 성격은 그 감정을 '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불타오르는 콘스탄티노플을 탈출하는 대활극에서 이제는 밀고 당기는 법정 공방으로 이어진다. 여주인공 이레네가 법률가 가문의 딸답게 무척 큰 활역을 하는데도, 이미 캐릭터의 매력을 잃어서인지 그녀의 노력이 시큰둥하게 다가왔다. 명색이 주인공이 석주명은 거의 꿔다 놓은 보릿자루 수준으로 전락한다. 안타깝다.
드라마로 친다면 무척 긴장감이 넘치게 전개될 법정 싸움이었는데도, 읽으면서 긴장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애석한 일이다. 구텐베르크는 법정 싸움에서 힘겹게 패배를 인정해야 했고,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곁엔 석주명과 그를 따르는 이레네가 있었고, 그들은 그의 잃어버린 공방을 되찾아 오겠다고 굳은 결심을 한 터였다. 그러니 3편에서는 그 과정이 이어질 것이다.
시작은 조선에서 했지만 무대는 이미 유럽이다. 조선에서 세종은 물론이요, 그 아들 문종과 그 아들 단종도 이미 죽었고, 세조가 왕이 되어 있는 상태다. 석주명이야 알 턱이 없지만.
조선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쯤으로 생각했는데, 조선은 이야기의 발단만 되어주고 구텐베르크 이야기가 주가 되니 어쩌면 나 스스로 김이 좀 샜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3권에선 떨어진 매력이 조금 더 솟아오르기를!
책 맨 뒤에 이야기를 돕기 위한 삽화가 포함되어 있다. 본편의 이야기보다 더 관심을 끌었다.
15세기 말에 그려진 콘스탄티노플 전경이다. 천 년의 영광이 새겨진 도시의 풍경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해학적인 느낌의 그림인데, 그래도 이렇게 보고 있으니 근사하다.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42행 성서>와 성서의 첫 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중 하나인 이 책은 인쇄물 테두리에 필경사가 직접 채식 장식을 하여 우아함과 화려함을 더했다고 한다. 사진으로 보아도 근사한데 실물을 보면 더 감격스러울 테지...
구텐베르크의 인쇄소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종이를 들고 있는 이가 구텐베르크다.
초창기 인쇄업자들이 쓰던 인쇄기다. 실제 사이즈가 어느 정도인지 치수도 나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작품의 배경이 된 아토스 산 중턱 절벽에 세워진 시모노페트라 수도원. 푸른 에게 해가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작품 속에선 결코 이런 서늘하고 아슬아슬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는 거...
1453년 5월.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천 년 제국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다. 빼곡한 그림 속 인물들이 치밀하게 다가온다.
이 책을 보면서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 계속 떠올랐다. 아, 카리스마 짱이었는데......
르네상스 시대 법정의 모습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서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 현대의 법정 풍경만 떠올랐다. 나의 상상력 부족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