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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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신문 연재로 한 꼭지 씩 보았는데 그때는 한 사람분의 연재를 보고 다시 얼마 간의 시간을 기다려야 다음 사람의 접근을 볼 수 있었으므로 아쉬웠었다. 이렇게 책으로 나오니 한 주제를 두고 두 사람이 어떻게 접근해 가는가를 볼 수 있어서 매력이 더 커져버렸다.  

프롤로그는 정재승이 썼다. 에필로그는 진중권이 썼다. 앞 주제의 첫 이야기를 진중권이 열어서 정재승이 이었다면, 두번째 주제는 정재승이 열어서 진중권이 닫는 구조로 진행된다. 누구 글을 먼저 읽느냐가 중요하진 않았지만 공평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재밌었다.  

엄선된 주제들도 흥미로웠다.  

프롤로그 : 충돌과 합체의 퍼포먼스

1. 입맛으로 나, 우리, 그들을 구별하는 세상 : 스타벅스
2. 디지털 세상, 어떤 사람이 구루가 되는가 : 스티브 잡스
3. 검색을 잘하면 지능도 발달할까 : 구글
4. 미래를 예측한다는 위험한 욕망 : 마이너리티 리포트
5. 캔버스 위 예술가와 실험실의 과학자 사이 : 제프리 쇼
6. 소년공상만화가 감추고 있는 그 무엇 : 20세기 소년
7. 다음 세기에도 사랑받을 그녀들의 분홍 고양이 : 헬로 키티
8. 기술은 끊임없이 자아도취를 향한다 : 셀카
9. 왜 눈 위의 작은 선 하나가 그토록 중요한가 : 쌍꺼풀 수술
10. 아름다움도, 도덕도 스스로 창조하라 : 앤절리나 졸리
11. 악마도 매혹시킨 스타일 : 프라다
12. 마시는 물에도 산 것과 죽은 것을 구별하는 이유 : 생수
13. 나는 모든 것을 다 보고 싶다 : 몰래카메라
14. 웃음, 열등한 이들의 또다른 존재 증명 : 개그콘서트
15. 끼와 재능도 경영하는 시대 : 강호동 vs 유재석
16. 그곳에서는 정말 다른 인생이 가능할까 : 세컨드 라이프
17. 집단 최면의 시간 : 9시 뉴스
18. 작게 쪼갤수록 무한 확장하는 상상력 : 레고
19. 사이버의 민주주의를 실험하다 : 위키피디아
20.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다 : 파울 클레
21. 지식의 증명서? 혹은 사람의 가격? : 박사

에필로그 : 생활 세계의 현상학 
21개의 키워드 중에서 단 몇 개만 빼고는 단연코 모두 다 재밌었다.  

컴퓨터 산업에 미학을 도입했다는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 구글이 투자하고 있는 '23andMe' 서비스, 우리나라였다면 사이비 종교라고 지탄받을 대상이 일본에서는 '친구'라고 표현될 수 있는 문화적 이유, 키티의 사생활(?)과 앤절리나 졸리의 따라잡을 수 없는 매력과 생수의 값어치, 9시 뉴스가 9시에 시작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 등등등.  


   
 
 지난 몇 년간 구글은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위치한 작은 회사 ‘23andMe'에 40억 원 이상의 돈을 투자해왔다. (...) 서비스를 신청하면 일주일 안에 키트와 간단한 설명서를 집으로 보내준다. 이 키트 안에 침을 뱉어서 다시 우편으로 보내면, ’내가 유전적으로 유방암과 당뇨병 등을 포함해 118가지 유전질환에 걸릴 가능성‘을 확률로 표시해 알려준다.
그뿐인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내 조상은 어디에 살았으며, 내 몸속에 다양한 민족의 피가 얼마나 섞였는지, 내 혈육의 뿌리를 찾아준다. 이미 시판되고 있는 ‘23andMe' 서비스의 가격은 399달러(약 45만 원). 필요한 분석 기간은 8주다. 구글은 지금 침 한 번만 퉤 뱉으면 내가 누구인지, 내 몸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무시무시한 세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유전자가 포함된 인간 염색체의 개수가 23이라 ‘23andMe'라는 이름이 붙었다).
2008년 ≪타임≫지가 ‘올해의 발명품’으로 선정하기도 한 ‘23andMe'서비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제 구글이 세상에 떠도는 정보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몸속에 있는 바이오 정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 52쪽
 
   





이미 시행 중이라는 요 서비스는 유독 눈길을 끈다. 건강에 대한 걱정과 우려뿐 아니라 유전학적 정보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단일민족 신화가 좀 더 빨리 깨지지 않을까. 모든 사람의 염색체와 유전자가 하나의 정보로 기입되어 저장된다는 것은 께름칙하기도 하고 좀 무섭기도 한 일인데, 이런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이미 그렇게 저장되고 있는 중이 아닐까? 

책날개에서 '따뜻한 상상력의 과학자 정재승'과 '진화하는 인문학자 진중권'으로 소개된 두 사람. 둘 중 누구의 글이 더 내 마음을 사로잡을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는데 공교롭게도 거의 비슷하게 마음을 파고들었다. 재밌게도, 이건 진중권스러워!할 때 정재승 글이거나, 이건 정재승답다! 하고 느낄 때 진중권 글일 때도 있었다. 책 제목처럼 완벽한 크로스다.  

산업과 문화와 예술을 넘나들며 두 사람의 판단과 비판과 예찬이 울려퍼지니 이건 일종의 지식 교향곡스럽다. 중간중간 삽입된 삽화는 또 얼마나 재밌고 그럴싸하든지.  




내가 자주 쓰는 이모티콘은 ^^ ㅠ.ㅠ 등등인데, 요즘에는 옆으로 누운 서양식 이모티콘도 비슷한 빈도로 자주 보인다. 그 차이점을 키티의 눈과 함께 설명해 주었는데 표정이 입으로 드러나는 서양식과 눈으로 드러나는 동양식 차이에 놀라워 했다. 확실히 서양인들은 웃을 때 입이 크게 벌어지는 반면 동양인들은 환하게 웃을 때도 입이 크게 벌어지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눈이 더 그게 휘어지는 듯. 문학 작품에서도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웃고 있지 않는 사람의 미소를 섬뜩하게 그리는 모습도 기억난다.  




쌍꺼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내 눈은 쌍꺼풀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눈은 홑꺼풀에 크고 긴 눈이다. 박해일이나 이준기가 떠오른다. 표현하기에 따라서 매섭게도 보일 수 있는데 어쩐지 이런 눈들은 참 정직해 보인다. 그렇다고 내 눈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일러스트의 눈은 참 예쁘게 표현되었다. 뭐, 그림이지만.  

이상적인 눈의 크기를 가로 4cm, 세로 1cm, 그리고 눈과 눈 사이의 거리도 4cm로 나왔다. 나로서는 그 수치를 다 넘긴다. 눈이 좀 더 크기도 하지만 얼굴도 같이 크기 때문에 4cm는 택도 없다. 직장 동료들의 눈을 상대로 몇 명을 재 보았는데 대체로 4cm는 넘는다. 우리 모두 아바타 과?? 딱 한 명이 눈과 눈 사이의 거리가 대략 4cm였는데 얼굴이 갸름하고 몹시 작은 사이즈의 소유자였다. 대신 눈 길이도 같이 작아져서 이상적이라는 저 수치에 조금 못 미쳤다. 모두들 과하거나 모자라거나. 과연 저 수치가 가장 매력적인 수치가 맞는 건지... 우리도 자신의 눈에 만족하지 못하는 34.8%? 우리나라와 일본과 대만의 쌍꺼풀 성형 수술의 만족도를 수치로 표현했는데 우리나라가 가장 높았다. 그 만족도가 65.2%여서 만족하지 못하는 34.8%라는 역 수치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만화책에서 홑꺼풀의 인물은 대체로 보기 힘들었다. 배경이 동양이건 서양이건. 좀, 아쉽다.  



   
  졸리는 형해화한 기존 도덕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도덕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나간다. 바로 여기서 묘한 결합으로 이루어진 졸리 특유의 도덕이 탄생한다. 이를테면 졸리는 이혼을 두 번 할 정도로 인습에서 자유로우나, 그렇다고 가족의 가치를 우습게보지 않는다. 그녀는 세 아이를 입양하고, 스스로 세 아이를 낳을 정도로 가정적인 사람이다(사진을 보니 자녀의 구성도 다양하다.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코카서스계. 인종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다). 덕분에 여전사와 팜므파탈은 동시에 모성의 상징, 모유 수유를 강조하는 동상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 165쪽
 
   




 체인질링에서 모성애를 잘 표현했다고 평가받았지만 대중은 여전히 졸리를 여전사의 이미지로 더 선호하는 듯하다. 다음 주 개봉하는 '솔트'에서와 같은 모습 말이다. 직접 자가용 비행기를 몰고 휴가를 떠나는 지극히 가족적인 내면의, 지극히 자유로운 외면의 모습을 가진 졸리. 근래에는 피트 형님보다 졸리 언니가 더 멋져 보인다.  

   
  보수적인 사회에서 사회적 풍자의 길이 사실상 가로막혀 있다 보니, 희극에 내재된 공격성이 쓸데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일까? “너희들 오토바이 타는 형들 부럽지? 가스 마시는 형들 부럽지? 걔들 지금 오토바이 타고 가스 배달하고 있어.” 이런 개그를 들으면서 대중은 폭소를 터뜨린다. 하지만 오토바이 타고 배달하며 열심히 사는 청년들은 이런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교양과 반성이 없는 개그는 쓸데없이 비열해질 수 있다.

– 229쪽
 
   

두 저자는 각자의 전공과 관심 분야를 십분 살려서 동일한 주제를 말하는데 시종일관 유머와 품위를 잃지 않는다. 잰 척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듯하다.  

이 책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뼈있는 교훈도 깔깔 웃게 만드는 코믹함도 두루 갖추고 있는 종합 인문학 교양서. 무엇보다 아주아주 '맛있는' 책이라는 수식어를 꼭 붙여야겠다. 내 책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는 게 아쉬움이 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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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춘 2010-07-20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은 줄 알았더니 목차보니 빠뜨린 게 많네요.
게다가 역시 모아 읽어줘야 제 맛...
생업 하나 더 들온다니 어서 질러줘야 겠어요. 고맙습니다.

마노아 2010-07-20 11:32   좋아요 0 | URL
다시 읽어도 재밌더라구요.
산사춘님을 기쁘게 해서 저의 영광입니다. ^^ㅎㅎㅎ

같은하늘 2010-07-20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부터 보고싶어 찜하고 있던 책이네 마노아님의 '맛있는 책'이라는 말에 홀딱 넘어갔어요.^^
거기다 내가 좋아라하는 키티사진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한 몫~~~

마노아 2010-07-20 11:32   좋아요 0 | URL
맛있어요. 영양가와 미감이 아주 훌륭해요.ㅎㅎㅎ
사진들도 멋졌구요. 글이 주는 매력이 아주 철철 넘쳐요.^^

순오기 2010-07-20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재승 진중권의 조합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도서에요.
맛있는 책이라니~~침이 꿀꺽!^^

마노아 2010-07-20 11:32   좋아요 0 | URL
저자 이름부터 일단 먹고 들어가지요. 진짜 꿀꺽 삼키고 싶었어요.^^ㅎㅎㅎ

꿈꾸는섬 2010-07-2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정말 재밌겠어요. 휘모리님 서재에서 보고 침 흘리고 있었는데 우선 담아두어야겠어요.^^

마노아 2010-07-20 15:16   좋아요 0 | URL
야금야금 읽는 맛이 일품이었어요. 천천히 읽어야 더 재밌는 책 같아요.^^

꿈꾸는섬 2010-07-21 23:43   좋아요 0 | URL
저 이책 질렀어요.ㅋㅋ

마노아 2010-07-22 00:14   좋아요 0 | URL
쿠쿠, 잘 하셨어요. 재밌을 거예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