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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 Children's Playing House
편해문 지음 / 고래가그랬어 / 2009년 7월
품절
내가 학교 다닐 때에도 학원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모두'가 학원을 가지는 않았다. 난 집이 좀 잘 사는 애들이나 다니는 곳인줄 알았다. 학원에 가건 가지 않건 성적과는 크게 상관 없기도 했다.
요즘의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학원이다 학습지다 온갖 사교육에 엄마보다 더 바쁘다. 나의 큰 조카만 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 개인 레슨을 받고, 바이올린과 미술도 한 번씩, 영어와 컴퓨터는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으로, 그리고 주5일 태권도를 다니고 있다. 수영도 한참 배워서 접영 마치기 직전에 아토피가 심해져서 그만두었다. 언니는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조카는 너무 바쁘다. 형부와 언니도 조카의 스케줄 대로 움직여야 한다. 둘째 조카가 거기서 치이는 건 당연지사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이런 것 모두 하지 않고 놀려고 마음을 먹어도 같이 놀 아이들이 놀이터에, 공원에, 학교 운동장에 없다. 아마 놀라고 풀어주어도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몰라 서성거리지나 않을지 염려된다.
이 책은 인도와 네팔의 아이들을 찍은 사진집이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마을의 헐벗은 아이들이건만 이들의 해맑은 웃음 앞에서는 벗은 발도 초라하지 않다. 낡고 버려진 것들도 소꿉놀이에서는 당당하게 주인공이 된다. 아이들이 놀이의 주체가 되어 있듯이.
도깝지놀이, 도꼬바지놀음, 도꿉놀이, 동갑살이, 동굽살이, 동굽질, 동도가미, 동독게미, 동두께미, 동드깨미, 또갑질, 바꿈살이, 바꿉질, 반두게미, 반두깨미, 반드깨미, 반주까리, 빠꿈살이, 빵깨이, 새금박질, 세간놀음, 소꿉장난, 소꼽재, 소꿉질, 수꿉질, 시간살이, 시간장난, 시감치, 통곱질, 퉁굽질 등등. 모두 우리나라 안에서 소꿉놀이를 일컫는 말들이다. 이렇게 낯설고도 다양한 소꿉놀이가 있었다니 놀랍다. 이름이야 어떻든 모두들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놀이들이다.
돌을 이어서 만든 벽이 소꿉놀이 울타리가 되어준다. 저 안에서 아빠 엄마, 아이가 되어 소꿉놀이 하고, 집에 갔다가 다음 날 다시 찾아온다. 이쪽은 부엌이고 이쪽은 침실이고, 이쪽은 화장실이라며 구역도 나누어 보았다. 천장도 없는 집이건만 상상 속에서는 궁전처럼 찬란했다.
손발이 더러워지면 어떤가. 철봉 대에 매달려서 놀다가 물집이 잡히면 또 어떤가. 그 모든 게 추억이고 놀이고 즐거움이었다.
놀다보면 웃게 되고, 웃다 보면 행복해지는 게 자연스런 이치였다.
그렇게 놀면서 행복을 찾아갔다. 다른 걱정과 근심은 어린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아이들은 철없어도 용서가 되는 그런 존재였다.
놀이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일,
만약 놀지 않으면 추억도 없을지 모른다.
아이때 뿐이던가. 대학 시절에도 엠티와 같은 여럿이 어울리는 자리에 자주 참석하지 못했다. 일하기 바빴고, 중간에 휴학을 2년 했고, 전과도 하는 바람에 끼일 자리가 없었다. 지금도 아쉽다.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추억을 나눌 친구가 많지 않다는 것에.
하물며 더 어릴 때에는 오죽하랴. 우리는 고무줄로도 하루종일 놀 수 있었고, 줄넘기로도 그랬으며, 그런 도구 없이 맨 손으로도 얼마든지 뛰어놀 수 있었다. 우리에겐 모든 게 가능했다. 해만 떠 있다면.
놀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다큐멘터리 안에서나 저런 게 있었다고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엄마와 아이가 같은 시절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통된 놀이가 사라지고 있다.
이제 아이들은 닌텐도와 휴대폰에 열광하고 있으며 '함께' 놀지 못하고 따로 놀며 그 안에서도 소득 격차에 따른 선들이 그어지고 있다. 어휴...
이렇게 맑디 맑은 웃음이라니.
찬란함 그 자체다.
요새 아이들은 한약을 많이 먹는다고 한다. 체력이 달려서.
그 체력을 키우고자 어린이 축구 교실 농국 교실도 다닌다.
뭐든 교과서에 등장하기만 하면 학원과 과외로 선행학습을 해야 안심할 수 있는 교실 풍경.
아이들이 바쁘기 때문에 엄마도 지나치게 바쁘다. 가족의 모든 시간표가 아이 위주로 돌아간다.
교과서부터 확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엄마 숙제가 가득하고 엄마 없인 공부 못하게 만드는 교과 과정은 혹시 정치에 관심 가지지 말라는 어떤 음모일까???
뒤입어라 엎어라~ 대대찌(?)~ 뭐 이런 놀이들.
국경을 달리하지만 비슷한 놀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가장 흔한 놀이였던 얼음땡을 요새 초등학생들은 알고 있을까?
땅따먹기를 해봤을까.
정글짐이나 허수아비, 말타기 등등은?
어제는 조카가 딱지 치자고 동그랗게 생긴 딱지를 갖고 왔다. 나 어릴 때 하던 종이 딱지는 나란히 기울여 놓고 손을 볼록하게 만들어서 탁! 치면 넘어가는 만큼 가져갈 수 있었는데, 어제의 그 딱지는 어찌나 딱딱하던지 하나도 안 넘어갔다. 네모나게 접어서 딴딴하게 만들어 넘기던 딱지처럼 놀아야 한다고 조카가 가르쳐준다.
병뚜껑을 얇게 펴서 놀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끝이 날카로워서 위험할 법도 한데 우린 다치지도 않은 채 재밌게 놀았었다. 우유곽도 제기가 되었고, 무엇으로도 얼마든지 놀 수 있었던 게 우리들이었다. 그래도 '놀이'라는 걸 경험하였던 세대라는 게 다행인 것일까, 아픈 것일까.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책이었다. 추억만 떠올리며 미소를 지으면 좋을 텐데, 여러모로 착잡하고 안타깝게도 했다. 그런 마음을 생각하며 만들었을 책이기도 하다.
사진이 거의 다이고 글은 거의 없는 편이지만 책값은 좀 센 편이다.
도서관이 있어서 너무 고마웠다.
고래가 그랬어 발행이어서 더 믿음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