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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로 보는 한국전쟁 - 국문
존 리치 지음 / 서울셀렉션 / 2010년 5월
절판
대구에서 찍은 아이들 사진.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신기했을 테지만, 어딘가 경직되어 보이는 얼굴들이다.
아이다운 해맑음을 유지할 기회를 박탈당했던 무수한 아이들.
무엇보다도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을 빼앗긴 아이들이 먼저 밟힌다.
고향을 떠나야 했던 어른들보다 더.
피난을 떠나는 엄마의 긴박감이 느껴진다. 뒤에서 밀어주는 아들은 기자를 보며 싱긋 웃는 것이 어린애스러워 보이지만 막내 동생을 깍지 낀 손으로 꼭 끌어안고 있는 딸 아이에게는 벌써부터 신산함이 느껴진다.
엄마는 피난 갈 때 나이가 다섯이었는데 큰 돈을 두 번이나 주워서 힘든 피난길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신다. 엄마는 지금까지도 가끔 길바닥에서 돈이나 반지 등을 잘 주워 오신다. 로또를 사라고 한 번 설득을....
시가전 흔적이 선명히 남아있는 남대문. 전쟁 때에도 살아남았는데 어이 없게 사라져버린 우리의 문화 유산. 어휴...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의 잔해. 왼쪽으로 명동 성당이 보인다. 폭격을 맞았음에도 굴뚝 부분이 끝까지 남아 있는 게 신기하다. 유독 튼튼한 것일까?
비행기에서 바라본 피폭된 도시의 모습. 정찰기에 탑승해서 찍은 사진이다.
확실히 컬러로 찍은 사진이다 보니 보다 현장감이 느껴진다.
흑백 사진은 과거의 시간이 더 잡히는 느낌인지라 멀게 느껴지는데, 이 사진들은 모두 컬러 사진이어서 보다 현실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흑백으로 보든 컬러로 보든 전쟁의 참혹한 흔적들은 아프다.
파괴된 수원 화성 장안문. 성벽 위쪽은 1/3이 날아갔다.
주변부도 모두 폐허 상태. 한국 전쟁 당시 수원이 입은 피해가 꽤 컸다 한다.
앳되어 보이는 소년 병사의 철모에 진달래가 피었다. 전쟁 속에서도 어김 없이 봄은 오는데, 소년의 지친 얼굴에선 표정이, 감정이 사라진 듯 보인다.
전쟁 속에서는 지나친 감상이 오히려 마음을 더 힘들게 했을 것이다.
이 소년병은 그 후 살아남았을까...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지프차에 오르고 있고, 그 뒤로 월튼 워커 장군이 서 있다. 초대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떤 워커 장군은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의 전면 철수가 제기되던 분위기에서 홀로 한반도 고수를 주장하며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한다. 1950년 12월 23일, 그가 탄 지프와 트럭이 충돌하는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후에 한국정부는 미군을 위한 휴양시설로 호텔을 건립하는데, 워터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호텔명을 워커힐 호텔이라 이름 짓는다.
아가일 부대원이 미군 병사와 작전 회의를 하고 있다.
미군 장교의 부인들은 아가일 부대가 킬트 안에 속옷을 안 입는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물론 이들은 전투시에는 정규 전투복을 착용했다.
백파이프 연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미 전함 아이오와 호의 16인치 함포가 북한쪽을 향해 불을 뿜고 있다.
당시 함포탄 한 발은 1만 달러 정도로 캐딜락 승요차 한 대 값과 맞먹었다고 한다.
사람의 목숨은 자동차 몇 대로 환산할 수 있을지...ㅜ.ㅜ
미군 폭격기 동체에 그려진 그림이다.
전투기에는 상어가, 폭격기에는 '핀업걸'이 그려지곤 했다.
폭격기에 탑재할 네이팜탄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전쟁 동안 미군은 매일 약 110톤의 네이팜탄을 투하했다고 한다.
알루미늄과 휘발유 등을 섞어 젤리 모양으로 만든 네이팜을 연료로 하는 네이팜탄은 3천 도의 고열을 내면ㅁ서 30미터 이내를 불바다로 만드는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살상 무기로 현재는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초창기 휴전 회담이 열렸던 개성의 시장 모습.
북한군(중앙)과 미국측 사람들이 평화롭게 섞여 있다.
휴전 회담이 진행되었던 탓에 개성은 북한 전여게 퍼부어졌던 폭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개성은 현재 가장 많은 한옥이 보전돼 있는 도시가 됐다.
주방도구부터 여배우들의 낡은 사진까지 각종 중고물품들을 팔고 있는 소년.
외국 배우가 더 낯이 익다. 오른쪽에서 두번째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일까??
초여름 시골풍경. 농부들이 모심기를 하고 있다.
전쟁 중에도 계절은 바뀌었고 논과 밭을 돌보는 일은 계속됐다.
휴전협정서.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장군과 김일성의 서명이 보인다.
이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미군 부대가 판문점 남쪽에서 대기중이었다고 한다.
결국 최후까지 양측은 서로를 믿지 못했던 것이다.
모두가 흑백 필름을 쓰던 시절에 아주 드물었던 컬러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은 남달랐다. 그렇지만 사진의 색깔이 주는 특별함을 제외한다면 이야기는 평범하다.
한국전쟁에 관한 사진집은 '지울 수 없는 이미지'를 추천한다. 울먹이며 봤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