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정태원 옮김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보았으니, 결말도 이미 알고 있고 다만 원작과 영화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느끼는 게 목표였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다르다. 굳이 어느 쪽이 더 좋냐고 묻는다면, 나로서는 늘 먼저 접한 매체의 손을 들어준다. 그러니까 내 경우, 영화 쪽이 나았다는 이야기이다.

확실히, 일본과 우리의 정서 차이가 있다. 영화는 한국 버전으로 많이 순화(?)시켰다는 느낌이다. 일본 원작은 좀 더 잔인하고, 좀 더 치명적이고, 좀 더 섬뜩하다. 반면 한국 영화는 보다 당위성을 주려고 많이 애썼다는 느낌이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라기보다 정서의 차이로, 한국 영화 쪽이 더 마음에 닿았고 그래서 더 애절했다. 물론, 원작의 힘에 기댄 덕이었지만.

책에서는 실제 직업이 탐정인 양반이 뒤를 밟았는데, 영화에서는 비서가 뒷조사를 하는 것으로 옮겨갔다. 한국에선 '탐정'이란 직업이 낯선 까닭일 것이다. 영화에서도 고수는 대사가 거의 없었고 표정과 몸으로만 연기를 했지만, 원작에서도 료지가 그랬다. 다만 영상과 활자의 차이로 독자는 영상에서의 이미지에 더 기대게 된다. 

영화만 보았을 때는 하얀 어둠 속을 걸어온 이가, 줄곧 태양 아래를 걷고 싶었던 이가 남자 주인공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작을 읽어 보니 여자 주인공 유키호도 똑같았다. 하얀 어둠 속을 내리 걸었던, 태양 아래를 당당히 걷고 싶었던 소망을 가졌던 것이다. 삶의 굴곡을 생각해볼 때, 그와 그녀에게 연민을 아니 가질 수 없지만, 그 연민으로 그들의 모든 행보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또 안타깝다.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도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한석규가 요한에게 좀 더 일찍 널 잡아주지 못해서, 널 말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한 것이 절절하게 와 닿았다. 그 폭주를 누구보다도 자신이 더 제어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니 원작에서도 료지는 그렇게 스스로 끝장을 내버린 것이 아닐까. 

마지막 씬의 그 충격적인 장면도 나로서는 영화가 더 압권이었다. 그녀에게는 그게 최선의 방법임을 알지만, 그렇게 봉합해버린 병든 마음으로 어찌 살아갈까 안쓰럽다. 

미스테리물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는데, 내가 읽어본 책들은 대개 슬펐던 것 같다. 범죄와 피와 살인 사건이 연루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감정의 부산물일까? 좀 더 통쾌하고 통렬하고 시원한 미스테리물을 읽고 싶다. 이렇게 아프고 슬프고 찝찝한 기분이 아니라... 작품이 나쁜 게 결코 아니지만 감정이 불편하다. 하얀 어둠 속의 그 소년 소녀가, 채 자라지 못하고 상처입은 채 웅크리고 있는 그들이 아직도 눈에 밟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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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2-15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그래서 못읽겠어요. 영화를 봐도 아프고 힘들었는데 세권짜리 원작 책으로 보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거 아녜요. 아마 울어버리지 않을까 싶어요. 자꾸만 그래도 읽어보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치고 올라오는데 마노아님의 리뷰만 읽고 역시 읽고싶은 마음은 접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이 리뷰는 그래서 순전히 제 개인적으로 고마워요, 마노아님.

마노아 2009-12-15 23:35   좋아요 0 | URL
원작이 더 참혹하고 잔인해 보여요. 영화는 한국적으로 그나마 좀 순화를 시킨 느낌이에요.
배우들이 소화도 잘 해냈고요. 히가시노게이고의 책은 겨우 두 가지 읽었지만 참 우울하네요.
골든 슬럼버도 갖고 있는데 이 녀석도 이런 분위기일까요? 벚꽂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이유'도 대기 중인데, 아 이누가미 일족도 있구나. 알라딘에서 다른 분들 리뷰나 페이퍼 보고서 주섬주섬 모아논 책들이네요. 그래도 차차 읽어야죠. 이런 종류의 책들도 아프지 않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고파요...

다락방 2009-12-16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골든 슬럼버]는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에요! 안심하고 읽으셔도 좋아요. 저랑은 완전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는 제 여동생 말에 의하면 [골든 슬럼버]는 여태 자기가 읽은 책 중에 으뜸이래요.(물론 소설로 따지면 제 여동생은 살면서 아마 50권도 안읽었을 것 같긴 하지만요. ㅎㅎ)

마노아 2009-12-16 09:05   좋아요 0 | URL
아, 골든 슬럼버가 다락방님 페이퍼 읽고서 제가 산 책인가봐요. 분명 누군가의 서재에서 좋다는 얘길 듣고 중고샵에 나왔을 때 잽싸게 건졌었거든요. 우려하는 내용이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다락방님! 굿모닝~ 이렇게 추운 날 다락방님이 막 그리워지는거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