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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를 먼저 접하고 원작을 나중에 읽을 경우, 영상의 이미지가 강해서 영화가 더 재밌었던 적이 많았다. 반지의 제왕이 그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그랬고, 트와일라잇이 그랬다.
그런데 이 작품은 원작을 먼저 읽기 위해서 책을 미리 구입해놨는데, 뜻하지 않게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 상영 날짜가 잡혔으면 부랴부랴 책을 읽었겠지만, 편집이 아직 안 끝난 영화의 시사회에 초대받은 것은 처음이라서 그야말로 불시에 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3개월도 더 전에 말이다.
영화는 충격적이었다. 대단히 슬픈 내용일 거란 얘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았지만, 그야말로 비극 그 자체. 그들의 아픔과 고통도 이해하고, 그래서 그들에게 일방적인 비난도 쏟을 수 없지만, 그렇다 하여도 또 합리화할 수 없는 그들의 다른 죄에 대해서 불편하게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가 이미 개봉한 상태. 편집이 완성된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원작을 먼저 읽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읽어 나가다 보니, 내가 본 영화와는 무척 분위기가 다르다. 일본판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손예진 고수 주연의 우리나라 영화 '백야행'은 내용을 상당히 바꾼 듯 보인다. 아무래도 영화화 시키면서 세 권에 달하는 긴 내용을 좀 줄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원작은 배경이 70년대 초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이야기이다 보니 설정들도 상당수 바꿔줘야 했을 것이다.
나를 가장 충격으로 몰아넣은 건, 일본 학교의 70년대 현실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요즈음에 들어서야 나올 법한 끔찍한 이야기들이 거기서는 이미 30년 전에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의 우리나라 상황은 많은 부분 일본이 이미 거쳐온 과정을 답습하고 있고, 사회 문제 역시 그렇게 반복되고 있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며 선망해하며 추켜세우는 그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손에 잡히는 것 같아 아찔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어제는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에 대해서 학생들과 잠시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좋은 부모의 기준을 '돈'의 유무로 판단해 버리는 아이들의 상처가 보이는 것 같아 많이 아팠다. 이 사회가 아이들을 이렇게 비정하게, 삐딱하게 만들어버리는구나 싶어서... 그게 아니라는 증거를 믿게 해주기 힘들어서......
이 작품 속 두 주인공은 서로 깊은 상처를 갖고 있다. 남자 아이는 아버지가 죽었고, 여자 아이는 엄마가 죽었다. 그 죽음에는 어떤 연관이 있고, 거기에 그들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묻어 있다. 그리고 그 강렬한 기억은 이 아이들이 성장하는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올 것이고, 이 아이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질 어떤 순간은, 너무도 멀게만 보인다.
감정을 말살시켜 버린 아이들. 제 목표를 위해서 무엇이든 수단화할 수 있는 아이들. 마땅히 누려야 했을 순수한 기억과 사랑에 대한 추억을 갖지 못한 아이들.
괴롭다. 비록 소설이라 할지라도, 그 끝을 향해 같이 달려나가는 게 숨이 차다. 더군다나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상태라면 더욱.
내가 갖고 있는 책은 구판 버전인데 영화 개봉에 맞추어 새로이 책이 나왔다. 처음에 책장에 꽂혀 있는 노란 책등과 빨간 책띠를 볼 때는 표지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전면 표지의 그 희끄무레한 하얀 빛이, 이 책의 제목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든다. 반면 새로 나온 책의 표지는 그닥 내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
미스테리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는 작가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어둡고 아픈 이야기, 혹은 잔인한 이야기를 쓸 때, 작가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다 쓰고 난 다음에 그 마음은 얼마나 지치게 될까. 그럼에도 또 쓰게 되는 동력은 어떻게 얻을까? 아님, 소설은 소설일 뿐~ 하면서 훌훌 털어버릴까. 어느 쪽도 분명하게 똑 떨어지는 기분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아픈 이야기를 쓰고 나면 진이 빠질 것 같다. 독자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말이다.
영화와 달리 원작 소설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의 이야기들이 풍성하다. 시간을 보채지 않고, 기억을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쌓아간다. 그 호흡에 벌써부터 힘 빠져하면 안 되겠다. 아직 두 권의 이야기를 더 만나야 하니까. 연민을 느끼되, 그로 인해 억눌리지는 말자. 그것도 독자의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