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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 - 안견과 목효지 꿈속에서 노닐다
권정현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평점 :
한 달 조금 더 전에 일본으로부터 몽유도원도가 건너와 고작 일주일 여의 시간 동안 우리에게 공개된다고 알려졌을 때 온통 시끄러웠다. 2시간에서 4시간, 심할 경우 6시간씩 줄서서 기다리고, 전시 마지막 날에는 자정까지 관람 시간을 연장해가며 사람들은 다시 볼 수 없는 몽유도원도를 보고자 다리품과 시간을 바쳤다. 그렇게 우리를 열광하게 하고 안타깝게 만들었던 몽유도원도, 그 그림을 그린 안견이라는 사내, 그가 살았던 시대, 그가 그렸던 꿈, 그리고 꿈을 나누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 펼쳐진다.
처음 이 책을 읽으려고 지하철에서 책을 펼쳤다가 오래지 않아 내리려고 하는데, 옆자리에 앉은 여자분이 다급하게 붙잡는다. 책 제목을 알려달라고. 권정현 작가의 '몽유도원'이라고 일러주고 부랴부랴 내렸다. 그 여자분은 고맙다고 했다. 내가 읽는 동안 곁눈질로 읽어내려가면서 몹시 흥미를 느꼈나 보다. 나처럼 첫 소절부터 읽어내렸으니 더 관심이 생겼을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몹시 흥미롭게 시작된다. 민응신의 '서화잡기' 사라진 그림에 붙여....라는 대목을 쓰면서 사라진 '몽유도원도'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니 미스테리한 시작이다. 게다가 프롤로그에서는 안견으로 추정되는 노인이 자신의 '몽유도원도' 그림을 한 소년에게 전달하면서 눈을 감으며 시작한다. 한 세상을 풍미했던 대 화가가 저리 초라한 몰골로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그 속내가 궁금해 봄직하다.
그렇게, 작품은 시간을 뒤로 돌려 아직 세종 치세일 때, 안견이 안평대군을 만나기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화서 화원으로 이름을 꽤 날렸지만, 정작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하는 40줄에 들어선 안견이 등장한다. 온갖 서화를 보물처럼 모아 놓은 안평대군의 서고가 탐이 나서 몰래 담까지 넘어버린 지친 예술가의 갈증이 제대로 그려졌다. 그 안견을 받아들이는 안평대군의 모습은 호탕하기 그지 없다. 역시 예술을 아는 인물인지라 사람도 알아본 것일까. 안평대군의 후원 속에서 안견은 여러 도움을 얻었고, 그 와중에 그가 꿈 속에서 보았던 그 선계의 모습을 한폭의 그림으로 담아내니, 그것이 '몽유도원도'다. 안평의 꿈 속에서는 사람이 등장했지만 안견의 그림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있지 않은 그 풍경. 신선은 살되 사람은 살지 못한 그 세계는 작품의 중요한 복선이 되기도 한다.
1부의 주인공이 안견이라면, 2부의 주인공은 단연코 목효지다. 조부가 역모 사건에 휩쓸려 노비가 된 이 불운한 사내는, 죽어가면서까지 아들에게 글을 읽혀 이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풍수가로 거듭난 사내다. 비록 신분은 노비지만 훌륭한 스승 밑에서 땅의 기운을 제대로 읽어냈던 그는 왕릉을 잘못 쓴 것을 지적하며 신분의 회복과 급상승을 노렸지만, 오히려 양인으로 가까스로 올랐던 것이 도로 노비로 떨어지는 비운을 맞는다. 이후에도 세종 사후 문종 때, 또 김종서 집안의 가묘까지 명당과 그렇지 않은 땅을 힘주어 지적해 냈지만 번번이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미 후대를 살고 있는 독자는 그네들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왕기가 서린 땅, 역모의 움직임 등이 모두 눈에 보이고 결과까지 다 알고 있으니, 그걸 풍수학적 이론에 맞추어 설명하는 것이 신선하면서도 동시에 지루하게도 읽힌다. 정말 풍수적으로 그런 이야기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결과에 맞추어 짜맞춘 것인지 혼동이 오기 때문이다.
일제 때도 일본은 우리나라의 기를 막기 위해서 쇠말뚝도 많이 박았고, 풍수지리학적으로 저주를 건 사례가 무척이나 많았다. 그걸 생각한다면 미신 같으면서도 그 힘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작품에선 숭례문에 가로막힌 관악산의 화기가 비보로 세워놓은 숭례문은 태우지 않고 경복궁 동쪽 담을 건너뛰어 수양대군 사저로 흘러든다는 주장을 따르기 어렵다고 목효지가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미 숭례문이 불탄 사건을 전국민이 두눈으로 목격한 경험을 가졌기에 화재로 여러 번 경을 친 서울 사대문 안의 역사가 갑자기 무서워진다. 또 기화 스님의 입을 빌어 나온 대목에 대륙을 통일한 진나라가 망한 이유는 만리장성을 쌓으며 수많은 지맥을 잘랐기 때문이고, 수나라는 운하를 건설하면서 임의로 맥을 잘라 역시 단명왕조로 끝났다고 설명한다. 단지 그뿐만은 아니었지만, 그것들이 그 두 나라를 망하게 한 데에 큰 몫을 해냈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여전히 4대강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삽질에 매달리는 현정부를 생각할 때 아찔함이 밀려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풍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히 문제가 많은 사업이지만.
2부의 끝은 목숨을 건 상소로 운명을 걸었던 목효지가, 결국 곤장 100대를 맞고 황해도 관노로 유배조치되면서 마무리 된다. 그리고 대망의 3부는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대결 구도로 가는데, 이 3부의 마무리가 매끄럽지 못하다. '계유정난'의 결과야 이미 알고 있는 노릇이지만, 그 안에서 안견과 목효지가 해내는 그릇의 크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안견이라는 인물이 정치를 가까이 하기 보다 그저 그림에만 심취하기를 원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하는 존재로서의 자아가 앞쪽에서 두드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안평대군과의 우정이 더 깊게 그려져서 안견의 행보에 공감이 가질 않는다. 단지 목효지가 안견의 집터를 보면서 배신하되 살아남을 위인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대처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마찬가지로, 목효지가 땅보다 사람을 보아야 한다는 스승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걸 '대의'에 연결시키는 건 급작스러워 보인다. 작품 속 어디에서 목효지가 가난한 백성을 위한 땅 한 평을 위해서 싸웠던가? 그런 생각을 언제 품었던가? 그는 일신의 영욕을 위해서 큰 도박을 걸었던 불운한 사내였기는 하지만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안위를 위해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투사나 영웅은 아니었다. 그러나 작품의 말미에선 목효지를 그런 영웅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자미원'이라는 최종 목적지가 있었다는 말은 역시 공감되지 않는다.
초요갱은 또 어떤가. 그녀가 실존인물이라는 걸 모른 채 책을 읽었기 때문에 목효지의 갈망과 설움을 증폭시켜줄 하나의 캐릭터로만 여겼다. 그런데 연표를 보니 이 여자가 행보가 보통을 넘지 않던가. 찾아보니 실록에도 무려 16차례나 이름이 올랐다 한다. 많은 남자들이 이 여자를 탐내서 부끄러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아 희대의 미녀였기는 한가 보다. 그런데 작품상의 초요갱만 보면 그 정도로 대단했을 법한 인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좀 미모롭고, 남들만큼의 욕심이 있는 평범한 여자로 느껴진다. 그래서 초요갱의 이름이 올랐던 여러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은 무척 애를 쓴 느낌이 나는데도 기대치를 다 만족시키지 못했다. 세조의 정변이 성공한 쿠데타가 되긴 했지만 그 이후 조선의 행보를 생각해 봤을 때 실패했어야 마땅했던 정변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세조가 문종보다 형으로 태어났다면 그가 조선의 훌륭한 임금이 되었을 거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차자였고, 조선의 법은 그를 조카의 신하로 묶어두어야 했다. 그의 원대한 포부가 무엇이든, 그는 부적절한 절차와 방법을 통해서 왕이 되었고, 그 바람에 나쁜 역사의 선례를 남겼다. 안타까움은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왜 자신은 성골이 아니냐고, 그 바람에 꿀 수 없는 꿈과 이상에 대해서 얘기했던 것과 비슷한 거다. 기회가 있었다면 분명 좋은 정치를 해낼 수도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됐든 인정해줄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던 인물이라는 것.
더불어 안평대군과 김종서의 카리스마가 약했다. 안평대군은 지나치게 유약했고, 김종서도 좀 우둔하다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에 비해 한명회는 얼마나 절묘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던가. 어차피 실패할 거라는 걸 알면서 읽으면서도, 작품 내에서의 긴장감이라는 게 팽팽하지 못하고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 있단 생각이 들었다. 천명이 그들에게 있지 않았고, 준비 과정에서의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보다 극적일 수 있었을 부분들의 긴장감을 놓치면서 작품이 지루하게 읽힌 것이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실패한 그들에게 더 큰 아쉬움을 느낄 수 있게, 그들이 추구한 '대의'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국 작품은 제목처럼 선명하지 못하고 꿈속을 거닐듯 아련하고 답답한 느낌으로 마무리 되었다. 기실, 누구라고 인생을, 운명을 한 마디로 잘라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이 역사라 할지라도. 작품의 제목과 그 제목이 은유하는 인생사는 공감을 하지만 캐릭터를 통한 주제 의식의 설명은 부족했다고 여긴다.
특별 전시 기간에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지만, 몽유도원도는 개방 시간 내에 볼수가 없어서 1미터 밖에서 어깨 너머로 감상해야 했다. 다시 일주일 뒤, 전시가 끝나고 모조품으로 대체된 그림으로 호기심과 불편함과 언짢음을 달래야 했다. 진품은 아니지만 진품과 꼭 같을 그림을 보며, 그 꿈 속을 거닐면서 인간이 아닌 선계에서 살 수 있었던 안평대군의 안타까움도 같이 느껴보았다. 아득하고 안쓰러웠다. 현실과 목표, 이상의 괴리... 몇 백 년 전의 꿈이 아니라, 오늘날의 꿈과도 닮아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