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마이크로소프트의 새 윈도 시리즈 ‘윈도7’이 세계에서 동시 발매됐다. 반응은 좋은 편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타트카운터에 따르면 22일 발매 직후 윈도7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1.75%, 이 점유율은 발매 1주일 만인 10월 말 기준으로 2.82%까지 뛰어올랐다. 윈도 시리즈의 직전 제품인 ‘윈도비스타’와는 비교도 안 되는 빠른 속도의 보급률이다.
윈도7이 인기를 끄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속도’다. 지금까지 윈도 시리즈는 새 제품이 등장했을 때 ‘업그레이드’를 하면 컴퓨터의 속도가 느려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다양한 새 기능들이 추가되기 때문에 구형 컴퓨터가 새 운영체제(OS)를 작동시키기 버거워했던 탓이다. 하지만 윈도7을 설치한 뒤에는 속도가 줄어드는 걸 거의 느낄 수 없다. 컴퓨터를 시작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부팅 속도는 컴퓨터의 전반적인 속도라곤 할 수는 없지만 ‘첫 인상’을 결정하는 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윈도7은 윈도XP보다 더 빠른 운영체제처럼 느껴진다. 과거 똑같은 컴퓨터에 윈도XP 대신 윈도비스타를 설치했을 때, 속도가 느려져 다시 윈도XP로 ‘다운그레이드’했던 경험을 생각하면 확실한 속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자체 비교 결과도 윈도7의 부팅 속도가 같은 사양의 컴퓨터에서 윈도XP보다 빠르다고 나왔다.
시각 효과와 디자인이 윈도XP와 비교할 수 없이 개선된 것도 눈에 띈다. 3차원 입체영상과 투명한 창틀 등 화려한 모양새가 특징인 윈도비스타의 시각효과 ‘에어로’는 윈도7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일부는 더 화려하게 개선되기도 했는데 작업표시줄이 대표적인 예다. 작업표시줄에 실행되고 있는 작업 위로 마우스를 가져가면 현재 실행중인 작업의 모양이 작은 창 모양으로 등장한다.
이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개선하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울인 노력의 결과다. 단순히 그래픽만 화려해진 게 아니라 작업을 돕는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노트’라는 프로그램 아이콘에 커서를 올리면 새 메모를 작성하는 메뉴와 기존에 작성한 메모도 함께 열린다. 마우스 클릭을 최대한 줄이고 과거에 하던 작업을 쉽게 이어서 하도록 도운 셈이다.
윈도7은 이런 인터페이스 변화에 잔신경을 많이 썼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7을 만들면서 한국에서 사용하는 마케팅 문구는 “여러분의 아이디어로 만들었습니다”였다.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많이 반영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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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7은 빨라진 속도와 한층 업그레이드된 기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위
사진은 미디어센터(3번 그림)와 윈도XP와 호환할 수 있는 가상화기술(5번그
림) 등을 표현한 것. 아래 사진은 윈도비스타의 시각효과 ‘에어로’를 따르며
일부는 더 화려하게 개선된 시각효과를 보여준다. 사진제공. 김상훈> |
윈도 시리즈에 기본으로 포함된 프로그램도 대폭 업그레이드됐다. 특히 ‘윈도 미디어플레이어’ 등의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은 ‘윈도 미디어센터’로 통합됐다. 사진과 동영상, 음악 등을 모두 윈도 미디어센터에서 감상할 수 있다. 마치 TV를 볼 때 리모컨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인터페이스도 인상적이다. 방향키만 움직이면 편리하게 음악과 사진, 동영상 등을 볼 수 있다.
물론 윈도7도 문제를 가지고 있다. 가장 먼저 지적받는 부분이 호환성이다. 윈도XP에서 잘 작동하던 프로그램이 윈도7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새 운영체제를 사용하는데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윈도XP 이후 8년 동안 큰 불편 없이 업무를 보던 많은 사용자들이 단지 아름답고 조금 쓰기 편리하다고 해서 비싼 가격을 지불하며 새 운영체제를 설치할 지는 미지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호환성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해왔지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필수적으로 호환성을 포기해야 하기 마련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윈도XP가 윈도7에서 하나의 프로그램처럼 작동하는 기능을 개발했다. 윈도XP를 윈도7에서 프로그램처럼 작동시킨 뒤 그 위에서 윈도XP용 프로그램을 또 작동시키는 것이다. 이런 기능을 ‘가상화’라고 부른다. 컴퓨터 위에서 소프트웨어적으로 별도의 컴퓨터를 한 대 더 작동시키는 것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라 ‘가상의 컴퓨터’를 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기능이 ‘프로페셔널’과 ‘얼티미트’ 버전에서만 쓸 수 있다는 데 있다. 윈도7은 가장 저렴한 ‘홈프리미엄’과 그보다 고급 버전인 ‘프로페셔널’ ‘얼티미트’ 등으로 나뉘어 판매되는데 홈프리미엄에서는 이 기능이 제외된다.
사실 아쉬움을 말하자면 끝이 없다. 비슷한 시기마다 새 버전을 내놓는 경쟁자 애플의 ‘맥OSX’(맥오에스텐)과 비교하면 윈도7은 디자인에서 상대적으로 덜 매력적이다. 리눅스 운영체제와 비교하면 가격이 너무 비싸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큰 위협이 윈도7 앞에 놓여 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던 운영체제의 의미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컴퓨터를 이용해 우리가 하는 일을 생각해보면 이런 트렌드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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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7은 홈프리미엄(왼쪽 사진)과 프로페셔널, 얼티미트 등으로 나눠 판매된다. 오른쪽 사진
은 웹에서 서비스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 플리커의 모습이다. 사진제공. 김상훈> |
우리는 인터넷익스플로러로 인터넷 정보를 찾고 ‘곰플레이어’로 동영상을 감상하며, ‘MS워드’로 문서를 작성하고 ‘엑셀’로 스프레드시트를 만든다. 회사 시스템에 접속해 전자결재와 e메일을 확인하고 ‘네이트온 메신저’로 친구와 대화도 주고받는다. 포토샵으로 사진을 편집하거나 아이튠즈로 MP3 음악을 듣는다. 이 모든 것들이 과거에는 별개의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미 많은 게 달라졌다.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사진은 플리커에서, 메시지는 트위터로 주고받으며, 웹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포토샵익스프레스로 이미지를 편집하고 구글 문서도구를 이용해 문서와 스프레드시트를 주고받는 세상이 됐다. 운영체제와 프로그램을 다시 설치하지 않아도 웹브라우저로 모든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셈이다.
이런 시대에는 성능 좋은 운영체제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할 수 있다. 윈도XP로도 업그레이드 없이 웹에 접속해 다른 일을 쉽게 할 수 있다.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윈도7의 인기를 소개하면서 단서 하나를 달기도 했다. “과거와는 달리 새 윈도는 컴퓨터의 교체 수요를 이끌지 못하고 있다. 윈도는 빠르게 교체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컴퓨터 시장은 여전히 정체 상태”라고 한 것이다. 이제 사용자들은 더 이상 자신의 컴퓨터 성능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다만 웹에 얼마나 좋은 서비스가 나와 있는지 살필 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입장을 고려했을 땐 또 다른 문제도 눈에 띈다. 윈도7의 보급은 확실히 빠른 속도로 이뤄지지만 비스타의 운영체제시장 점유율은 급속하게 떨어지고, XP의 점유율도 하락 추세다. 반면 경쟁 제품인 애플의 OSX은 더디지만 꾸준하게 시장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구글이 만드는 ‘크롬운영체제’까지 이 경쟁에 가세한다면 MS는 더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어쩌면 윈도7의 화려한 시작은 ‘OS 전쟁’의 서막일지도 모를 일이다.
글 :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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