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95 2009-11-13

 
 



 
쫀쫀하게 연결되면 머리 좋아진다!
 

그렇게도 좋아하는 삼겹살이 불판에서 지글지글 익어가지만 태연은 영 먹고 싶지가 않다. 아니, 울고 싶다. 난생 처음으로 밤을 꼴딱 새워가며 시험공부를 했는데 성적은 지난 번과 변치 않은 하위 30%였던 것.

“괜찮아. 시험이야 잘 볼 때도 있고 못 볼 때도 있는 거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단 말이에요. 전 돌머리인가 봐요. 아빠를 닮은 걸까요?"
“무슨! 아빠는 학교 다닐 때 별명이 ‘일등신’이였어. 마치 신같이 매번 일등만 한다고 말야."
“일등신? 별명이 등신? 와, 짱이다! 깔깔깔~"

아빠의 농담에 태연,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태연아, 너무 걱정 마. 언젠가 기억력이 좋아지는 약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저, 정말요?"
“뇌의 신경계는 신경세포(뉴런)들과 그 사이를 이어 다리 역할을 하는 시냅스로 이뤄져 있단다. 우리가 뭔가를 기억한다는 건, 어떤 자극을 감각기관이 받아들여서 신경세포가 그것을 전달할 때 시냅스의 연결이 강화됐다는 뜻이야."

“시냅스끼리 더 쫀쫀하게 연결이 된다는 뜻이에요?"

“그래 맞아. 그런데 최근 그 연결을 강하게 하는 세포접착단백질(CAM)이라는 것이 있고, 그 안에 기억의 강도를 더욱 높여주는 CAMAP라는 단백질이 또 들어있다는 사실이 발견됐지. 다시 말해, 인류가 이 CAMAP라는 단백질을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기억력을 높이는 건 별로 어렵지 않게 된다는 뜻이야."

“와~ 정말 감동적인 과학기술이에요!"

“단순히 기억력만 좋게 하는 게 아니라, 나이가 들어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예방하거나 치매 같은 기억장애를 치료할 수도 있지. 반대로 지워버리고 싶은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도 있고."

“도대체 그 사랑스러운 약이 언제쯤 나올까요? 제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꼭 사먹을래요."

“글쎄. 네 전 재산인 3500원으로 살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어. 최근 이 연구는 대부분 2만 여개의 신경세포를 가진 바다달팽이를 통해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천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를 가진 인간의 뇌가 똑같은 결과를 낼 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거지."

“뭐야~ 잔뜩 기대만 하게 해 놓고선. 결국 머리가 좋게 태어나는 거 밖에는 방법이 없단 말이잖아요!"
“아냐, 절대 그렇지 않아. 기억력이 좋아지는 방법이 있어."
“왔다 갔다 하지 마시고 빨리 좀 말씀해 달라구요!"

“인간의 기억은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나뉜단다. 사람은 보통 24시간이 지나면 기억했던 것의 80%를 잊어버리는데, 이 80%를 단기기억이라고 보면 돼. 이건 기억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인 잔상에 가깝지. 그런데 이 가운데 일부가 노력을 하면 장기기억으로 바뀌게 된단다."

“어떤 노력이요?"

“바로 ‘반복’이지.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바뀔 때 뇌세포 속에서 새로운 신경 회로망이 생겨. 그런데 계속해서 자극을 주면 즉, 반복학습을 하면 새로운 회로망이 자꾸 생겨나서 구구단처럼 머리에 콕 박혀서 잊히지 않는 장기기억이 많아진단다. 반면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 있던 회로망도 사라져버린다고 해. 제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도 노력하는 사람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단다. 어때, 반성되는 게 있지?"

“그렇게 꼭 집어서 얘기 안 하셔도 반성하고 있어요. 밤새워 공부를 하긴 했지만 여러 차례 반복해서 공부한 적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아빠, 지금 이 상황에서 예전에 할머니가 주신 쪽지 하나가 기억나는 이유는 뭘까요?"

태연, 무척이나 음흉하면서도 희열에 찬 미소를 머금으며 색 바랜 쪽지 하나를 내민다. 그건 바로 아빠의 초등학교 때 성적표! ‘김태돌’이라는 아빠의 이름 옆으로 양양양가가가로 도배된 성적과 4학년 6반 45명 가운데 45등을 했다는 잔인한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까 그 일등신이라는 별명. 혹시, 마치 신같이 매번 끝에서 일등만 한다고 지어진 건 아니겠죠?"

아빠, 얼굴이 벌개져서 태연이 들고 있는 성적표를 낚아채듯 빼앗고는 어색하게 웃는다.

“아, 아빠랑 이름이 똑같은 녀석이 있었네! 흔한 이름도 아닌데 말야. 하하하하… 아빤 반복학습을 통해 엄청나게 좋은 성적을 항상 유지했었다고. 믿어줘 제발!!"
“아빠, 선생님이 거짓말은 나쁜 거라고 하셨어요!"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09-11-14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나쁜 기억은 자꾸 떠올리면 안좋은거죠? ^^

마노아 2009-11-14 13:56   좋아요 0 | URL
나쁜 기억을 반복 학습으로 자꾸 주지시키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자주 그래왔는데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해요.^^;;

후애(厚愛) 2009-11-14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항상 끔찍한 기억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떠올라요.
좋은 기억들만 생각하자고 하면서도 그게 잘 안 되네요.ㅠ.ㅠ.

이승환은 어쩌시고...
행복하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마노아 2009-11-14 13:57   좋아요 0 | URL
저도 늘 그런 편이었어요.
그게 날 더 힘드게 하는 건데도 해소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지요.
덜어내고 비워내기 위해서 애써야겠어요.

아, 저의 이승환 사랑은 여전해요~
그 어떤 비쥬얼로도 그 자리는 못 차지하지요.
다만 사진이 넘 이뻐서 잠시 갖다 놨어요.
사실, 요새 바탕화면도 우리 근석군이라능...^^
후애님 주말 즐겁게 보내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