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내게로 왔다 2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시가 내게로 왔다 2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어릴 때부터, 좀 심각한 것을 좋아했다. 심각한 내용의 만화나 드라마, 영화 등등. 뭔가 복잡한 복선이 깔려 있고, 마무리까지 다 보아야 큰 얼개가 보이는 이야기들. 그래서 대하사극을 좋아했고, 만화도 바사라나 침묵의 함대, 레드문, 불의 검... 이런 책들을 좋아했다.  그런 취향은 최근에 좀 바꼈는데 너무 심각한 내용들은 가뜩이나 아픈 머리를, 고단한 삶을 더 버겁게 하는 것 같아 말랑말랑한 것들이 급 좋아지고 있다. 그래서 요새 격하게 아끼는 드라마로 '미남이시네요'가 있다.^^

그렇다면, 시는 어떨까? 시집을 많이 읽지 않는 나인데, 시는... 사실 잘 모르겠다. 시인들의 언어는 내게 너무 난해하다. 시인도 그걸 알아달라고 쓰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얼마 전에 읽은 시집은 너무 어려워서 도무지 리뷰를 한 자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쉬운 시집을 읽고 싶었는데, 그리하여 고르게 된 '시가 내게로 왔다' 2편이다. 1편의 시들이 제법 대중적이었다고 기억하는 것 같다. 그래서 2집을 펼쳐들었는데, 근래에 나를 힘들게 한 시집에 비하면 무척 대중적인 시 모음집이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모르겠는건 모르겠더라. 김용택 시인의 코멘트가 달려 있지만 코멘트도 같이 난해하기도....;;;; 

그래도 게 중에는 내게도 공감이 가거나, 이해가 되어 끄덕여지는 시들이 곧잘 있었다.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도 포함되어 있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담임샘의 제안으로 학생들이 날마다 시 한 편씩 골라와서 낭송해 주는 시간이 있었다. 두 명의 학생 중 하나는 시를 고르고 하나는 음악을 준비한다. 당시 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못한 길'을 골랐는데,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건만 죄다 입시용 시만 들고 오던 아이들에 비해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자화자찬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니 웃기지만. ^^ 

 암튼, 그 시가 이 시집에 있었는데, 김용택 시인의 코멘트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대가 지금 가는 길이 그대의 길이다.
그러나 때로 나는 내가 가지 않은 다른 길을 생각한다.
그 길로 갔어도 나는 행복했을 것이다. – 58쪽
 
   

세상의 끝 여자 친구-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왔지만, 가보지 못한 길, 선택하지 못했기에 아쉬워하고 미련이 남을 때가 많다고 여긴다. 정말 그 길로 갔어도 어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건만, 그때 그렇게 했어야 했다는 무수한 자책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괴롭힐 때가 많다. 그런데 시인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 길로 갔어도 행복했을 거라고. 바꿔 말하면, 지금 가고 있는 이 길도 행복한 거라고, 오히려 더 행복한 거라고...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인생을 돌이켜 어느 선택의 지점에 설 수 있다면, 돌이키고 싶은 나의 과거가, 나의 현재가, 나의 미래가 분명히 있는데, 그런 생각들을 모두 흩어 놓으며 진한 위로를 준다. 지금 가는 길이 그대의 길이라고... 나의 길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감사해진다. 만족스러워진다. 행복이 뭐 별거던가... 

   
 

 호수 1(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감을밖에 – 70쪽

 
   

시인의 위대함은 그 간결함에 비해 무한한 의미와 감동을 실어주는 시적 언어에서 두드러지는 듯하다.  

보고 싶은 마음은 호수만 하니, 눈감을밖에...라고.... 

내가 또 격하게 좋아하는 뮤지컬 '바람의 나라'에서 해명 태자는 죽기 하루 전에 혜압을 찾아가 사랑을 나눈다. 그때 불렀던 노래 가사에 이런 게 있다. '나는 눈 감고 있으려오 그대 눈앞에 세상은 눈물 뿐이니...' 내일이면 아버지 명으로 죽어야 할 자신이건만, 오늘 찾아와 사랑한다 말하는 그 남자를 품어주는 여인, 그 여인 앞에 이제 세상은 온통 눈물 뿐인데, 그걸 아는 사내는 미안하다 말도 못하고 눈을 감겠다 말한다.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을 가는 사내의 비장미가 물씬 뚝뚝뚝...  

저 예쁜 시에 견주어 비교하자니 너무 슬픈 구성이지만, 더불어 생각나 버렸다.^^ 

'직녀에게'는 노래로만 알고 있었다. 원래 가사가 시라는 걸 얼핏 듣긴 했지만 전문은 처음 보았다. 역시, 절절하다. 

어제,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행사를 하는 걸 보면서, 참 부러웠다.  

우리의 이별은 왜 이리 길까....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길이 없어도, 우리는 만나야 한다. 이제는, 이제는 만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산적한 문제들이 너무 많아서 통일은 얘기가 나오면 '뭥미' 표정이 되기 일쑤인 세태가 황망하다. 세대가 어려질수록 그런 생각들은 더 견고해진다.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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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11-10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은 가을이네요 님 다라 시가 땅기는 걸 보니 말이에요

마노아 2009-11-10 12:08   좋아요 0 | URL
아핫, 가을이어서인가요. 역시 가을엔 시가 좀 어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