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개의 시선 - If You Were M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학생들과 함께 본 영화다. 2주 전에 봐서 생각이 좀 덜 선명하긴 하지만 여섯 개의 시선은 6편 중 다섯 편을 무척 재밌게 보았다. 일단 감독진도 나한테 익숙한 사람이 더 눈에 띄기도 한다.  혹여 학생들이 너무 지루해 하면 6개 중 다섯 편만 보여줄까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무척 진지하고 재밌게 잘 보았다. 다행다행! 

여섯 명의 감독들이 각각 '인권'에 대해서 얘기하는 단편 영화 모음이다. 각각의 색깔이 다른 만큼 느낌도 다르지만 유머 속에 공포와 경종을 울리는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임순례 감독의 실업고 3학년 학생의 취업을 위한 미모 전쟁을 다룬 '그녀의 무게'. 새학기 시작하자마자 첫째도 몸매 관리, 둘째도 몸매 관리라고 다그치는 여선생님과, 불시에 체중 검사를 하며 이래가지고 취업하겠냐고 학생 몰아세우는 남선생님까지. 그야말로 경악의 연속이었다. 면접 시험장에서 키작은 여학생은 아예 면접 대상으로 취급도 하지 않는 면접관. 안경 쓰고 온 여학생에겐 수술을 왜 하지 않았냐고 묻기까지 한다. 영화는 좀 더 자극적으로 묘사했겠지만, 표면으로 내놓든 감추었든 저런 식의 인물지상주의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요새는 대학 졸업하는 남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성형을 한다고 하더만....;;;; 

두번째는 '그 남자의 事情'. 어느 시간대인지 애매모호한 이상한 아파트. 가운데가 뻥 뚫려 있어서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고, 아파트 벽면마다 반공 시대의 오마쥬 같은 묘한 문구들이 넘쳐나는 그곳. 이 영화는 말해주는 게 너무 없어서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나 좀 이해가 안 갔었다. 한 남자가 성범죄자로 낙인 찍혀 있었는데 정보를 보니 '가상' 시스템에서 뽑힌 거였단다. 아무튼 주민들은 이 남자를 대놓고 피하고, 오줌 싸다가 집에서 쫓겨난 꼬마 아이가 소금 구하러 아파트 집집을 전전하지만 어른들이 아이를 놀리면서 보여주는 언어폭력도 상당히 심각했다. 이 작품은 클로즈업 기법만으로도 상당한 긴장감과 공포감을 조성시켰는데 특히나 소리의 울림, 공개된 듯 막혀있는 아파트, 벽면의 커다란 글자가 물결치듯 흐르는 느낌,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숨쉬기 힘든 침묵을 읽어야 했다. 과거처럼 보이지만 미래에 더 가까울 그 모습들에서 공포를 느끼는 건 당연해 보였다.  


세번째는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온 '대륙횡단'. 계속해서 짧은 단어의 소제목이 주르륵 나오는데 블랙 코미디로 웃음을 끌어내지만, 실상 그 상황을 겪어내는 사람의 입장에선 얼마나 황당하고 서러울까 싶어 웃기도 미안한 작품이었다. 여동생이 약혼을 하는데 식구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그는 집 지키는 사람으로 남겨두고 나서는 모습에 화가 났다.   


영어 발음을 제대로 구사하게 해줄 욕심에 아이의 혀를 수술하는 '신비한 영어나라'는 설정도 끔찍하지만 수술 장면의 리얼함이  공포영화 보는 느낌을 주고 말았다. 이 미친 영어 교육을 어찌하면 좋을까. 미친 교육이 그거 하나는 아니지만......  


지진희가 출연한 '얼굴값'은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꼴값하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는 생각에 참 한심하다는 느낌이었다. 주차 매표를 하는 직원이 예쁜 외모에 이런 데서 일하기는 아깝다고 시작한 그의 말꼬리 잡기가 끝내는 얼굴값 한다며 폭언을 일삼는 수준으로 번지는데,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에서 '차별'을 끌어낸 솜씨가 일품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반전은 납량특집 수준이었다.  



마지막 작품이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였다. 네팔의 어느 부족은 우리나라 사람들하고 너무 흡사하게 생겨서 서로 구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게다가 말도 우리나라 사람이 정신나간 모양으로 중얼중얼 거리는 느낌으로 들려서 더더욱 구별되지 않는 사람들. 찬드라는 네팔에서 온 이주 노동자였는데, 어느 날 길을 잃고 돈도 잃어버린 채 식당에서 밥을 먹고는 경찰서로 인도된다. 그는 네팔 사람이라고 말을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정신 이상자라고 여겨 정신 병원에 보내버린다. 무려 6년 반이나 병원에서 있어야 했던 찬드라. 아무리 그 나라 말을 하는 사람을 찾는 게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 웃지 못할 심각한 얘기를 박찬욱 감독은 또 특유의 재치를 발휘해서 웃기게 풀어나가니, 영화 보면서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참 고민스럽기까지 했다. 전에 중고샵에서 '말해봐요, 찬드라'를 구입했었는데 실화라는 것만 알았지 이런 내용인 줄은 몰랐다. 책이 제법 페이지가 있었는데 영화에서 짧게 말한 것 이외의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듯하다.  

영화에는 변정수나 지진희 같이 이름이 알려진 배우도 간혹 나오지만, 실제로 자기 이름을 걸고 자기 이야기를 얘기하는 사람까지 리얼리티를 짙게 반영하고 있다. 대사는 제법 아낀 편이지만 음악과 글과 효과음 등으로 몰입 효과가 좋았다.  

차별이라는 것이 어느 한 부분만 고쳐서 커다란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건 총체적인 문제이고, 전반적인 수준이다. 그 나라 사람들의 인격과 관습과 또 교양의.  

모두가 다같이 바뀌어야 고쳐질 수 있는 것들이지만, 사실 그것들도 작은 부분들이 고쳐나갈 때 커다란 하나의 울림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의 언어 습관이, 우리의 시선이, 또 의식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혹은 알고 있다 할지라도 왜곡되어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오염시키게 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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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9-21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어요.^^ 이것도 종료.

마노아 2009-09-21 00:47   좋아요 0 | URL
2003년도 영화여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