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꽃 할아버지의 선물 - 5세+
마크 루디 지음 / 키득키득 / 2008년 6월
절판
시네큐브의 마지막 상영작을 보러 극장에 갔던 날, 로비에 비치된 동화책을 집어들었다. 문학동네 책이 많아서 문학동네 부스인가 했는데 다른 출판사도 몇몇 보인다. 애니북스의 십팔사략이 보였고, 키득키득 동화책이 몇 권 있었다. 이름이 재밌네. 키득키득.
한 할아버지가 낯선 동네에 들어서신다. 동네 어귀는 음산했고, 사람들의 분위기는 음침했다. 누구도 웃을 것 같지 않고 누구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이 길목의 한 집에, 할아버지는 정착하신다.
흉가와 다름없어 보이는 이 집에서 할아버지는 대체 무엇을 하시려는 것일까?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그늘진 얼굴이 동네 분위기와 꼭 닮아 있다.
이런 곳에서도 웃음이, 빛이, 행복이 쏟아질 수 있을까?
누군가 도전하기만 한다면???
할아버지는 집을 깨끗이 청소하셨고, 새단장을 시작하셨다.
뿐인가? 저 찬란한 꽃들을 보시라.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 스산한 동네에 뭔가 기적이 베풀어지려는 징조일까?
할아버지는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꽃 한송이씩을 선사했다.
꽃을 받아든 사람들은 얼떨떨했을 것이다.
'꽃'이라니, 세상에 꽃이라니! 이따위 동네에 어울리지 않게!
그런데, 절대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동네의 이 꽃 한송이가 기적을 만들어 주고 있다.
밝아진 동네 분위기가, 밝아진 사람들의 표정이 느껴지는가?
꽃과 풀이 늘어가면서, 사람들의 웃음이 번지면서,
확실히 창 속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 상태로라면 유쾌한 웃음도 결코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나는 책이 있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리디아의 정원'
봄을 선사했던, 낙원을 선물했던 꼬마 아가씨가 떠오른다.
그 아이도 무수한 사람들에게 변화를 안겨주었다.
이곳, 꽃 할아버지처럼.
이제 동네는 활기로 가득찼다.
새들이 지저귀고 에너지가 가득 넘치는 게 책 밖으로 마구 삐져나올 것만 같다.
시끌시끌, 와글와글, 북적북적...
이런 의성어와 의태어를 다 갖다붙여도 모두 말이 될 것 같은 풍경.
이제 지난 날의 그 음침한 동네를 떠올리는 건 몹시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꽃 한송이의 기적의 위대함이란!
자, 그렇다면 이제 꽃 할아버지의 할 일은 다 끝난 셈인가?
어두웠던 화면이 차차 밝아지면서 최대의 빛 축제를 보여준 뒤, 책은 다시 어두운 밤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같은 밤이라고 모두 침침하지 않다.
달라진 꽃 동네의 밤은 이제 따뜻하기까지 하다.
자, 이제 꽃 할아버지는 정주었던 집을 떠난다.
다시,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작은 기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로 발걸음을 옮기실 테지.
그곳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을 만날 것이다.
작은 것이 주는 소중함을 체험하면서.
대사 한 마디 없이 책이 훌륭하다. 휴대폰으로 찍어서 더 선명한 그림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아쉽다.
책의 겉장은 두껍고 푹신푹신한 소재를 썼고, 모든 책장의 모서리는 둥글게 처리했다. 아가들이 보아도 그 자체로 장난감이 될 수 있게.
9,500원 정가로 이 정도의 표지가격을 뽑아낼 수 있구나 싶어서 좀 놀랐다. 키득키득의 다른 책 한 권도 더 보았는데 그 책 역시 이런 표지 형식을 따랐다. 표지에서 거품을 뺀다면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보통 동화책 한 권에 이 정도 가격을 하니, 사실은 이만큼 공들인 표지가 가능하다는 얘기도 되겠다.
그림도 내용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나중에라도 꼭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일단은 보았다는 것으로도 대만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