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요일  

수업 마치고 집에 오는 길,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내가 탈 버스가 오려면 8분을 기다려야 한다. 비가 많이 왔었고, 책 읽으며 기다릴 수도 없는 입장. 아침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점심도 아직이어서 환승 30분 내에 밥을 먹기로 했다. 길 건너 바로 들어간 식당에서 오므라이스를 시키고 기다렸는데 백반이 나왔네. 옆 테이블 음식을 잘못 갖다줬다고 생각했는데 내 오므라이스는 오리무중이고, 결국 환승 할인을 못 받았다. 아씨... 아줌마 나빴어...;;;; 

2. 목요일  

친구네 학원으로 가서 점심 먹고 놀다가, 저녁 먹고 헤어졌다. 한참 떠들고 웃고 했더니 마음도 가벼워지고, 기분도 조금 들뜨는 듯했다.  

3. 금요일  

최악의 컨디션.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원래 여름을 타는 녀석인지라 이런 일이 한 두 번은 아니지만 상태가 무척 안 좋았다. 이럴 때 더 움직여서 기운을 차려야 하는데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는 한나절. 언니가 기운 차리라고 엄마한테 뭐 사다 먹으라고 만원을 주고 갔다네. (이봐, 나에게 줄 돈이 얼만데...;;;;;) 엄마는 빵이랑 우유랑 사오면서 오는 길에 콩나물 천원어치 사오라고 하셨다. 슈퍼가서 콩나물이랑 우유 사고, 제과점 가서 빵 사갔고 집에 왔는데, 어머나... 내가 사온 건 숙주나물이네....;;;; 이상타. 숙주나물은 축 쳐져서 흐물흐물한데 얘는 팔팔하잖아... 했더니 그건 무쳐놔서 그렇다네... 엄마, 바꿔 와? 했더니 그냥 먹자신다. 난 콩나물이 더 좋은데.... 

약속은 강남역이었다.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막힐 것 같아서 갈 때는 지하철을 타기로 결심. 지난 번 처럼 지하철만 세번 갈아타기 싫어서 사당까지 쭈우욱 내려갔다. 그리고 2호선 갈아타고는 목적지에서 하차. 화장실에 들렸다가 밖에 나와보니, 어머나! 여긴 교대역이네. 아뿔싸, 10여분 남긴 했지만 부랴부랴 제일 먼저 오는 아무 버스를 탔다. 그리고 옆좌석 아가씨에게 강남역 가냐고 물으니 간다고 한다. 휴우~ 안심하고 앉아 있는데 얼라, 강남역 출구가 스윽 뒤로 빠지는 게 아닌가? 이런! 지나쳤잖아! 내려보니 신논현역이다. 그 아가씨 참 불친절하네... 이번에 내리세요! 한 마디 더 보태줬음 얼마나 좋았을까...ㅜ.ㅜ 그래서 다시 버스 갈아타고 강남역 하차. 헥헥... 힘들구나... 

반가운 얼굴을 만나서 삼겹살 집으로 직행! 아, 맹세코 여태껏 먹어본 모든 고기 중에서 최고로 맛있었다. 평소 삼겹살을 잘 안 먹었던 나는 삼겹살이 이렇게 맛난 음식이라는 걸 처음 알아버렸다. 왜 그 동안은 내게 삼겹살을 권한 사람이 없었던 거지??? 

수다에 수다를 떨면서, 까르르 웃고 나니 기분이 마구마구 업되는 거다. 이 기분 그대로라면 바로 알라딘 서재의 잠가놨던 카테고리를 다 열어놓아도 좋을 것 같은 기분! 그래, 좋았어! 원래 내 장점은 좌절도 빠르지만 회복도 빠르다는 거잖아?! 내 힘으로 안 되는 건 빨리 털어버리자구!!! 이러면서 고고씽 집에 왔는데, 알라딘 접속했다가 재좌절. 아씨... 알라딘은 나를 자꾸 무참하게 하는구나. 참, 속상하네...... 

안 되겠다. 댓씽유두를 보면서 제대로 기분을 회복시키리라. 음악 영화 너무 좋다. 멋진 님에게 받은 선물이라 더 설렌다. 시집도 읽으면서 마음을 정화시켜야지. 음악이 있고 문학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좋은 사람이 곁에 있어서 고맙다.   

그리고, 역시 몸을 움직여야 무기력증에서 헤어나온다. 낮동안의 그 물에 젖은 솜같은 몸이 오히려 밤 되어 더 가벼워졌으니 말이다. 

 

4. 토요일 

아침부터 달려야 했다. 조카가 처음으로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는 날. 대회 장소는 이대였다. 둘째 언니랑 조카가 먼저 차에서 내리고 큰언니랑 나랑 둘째 조카는 주차를 한 뒤 대회장으로 이동을 할 생각이었는데, 행사장 바로 옆 주차장은 휴일이어서인지 닫혀 있었고 학교 내 주차장은 너무 멀었다. 주차하고 올라와 보니 대체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길이 없는 것. 건물 안에서 마주친 어느 분께 물었더니 어디로 가라고 해서 갔는데 거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물어물어 행사 시작 직전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바람에 샌들 신고 내리 뛰었더니 발이 다 까져버렸다. 나중에 의자에 앉고나서야 발견했다. 오매 아픈겨....ㅜ.ㅜ 

조카는 다섯 번째로 연주를 했는데 평소 너무 빨리 치는 버릇이 있어서 천천히 치라고 일러줬는데, 알고 보니 그 곡은 그렇게 빠른 게 맞더라고, 피아노 원장샘이 아쉬워하셨다..ㅜ.ㅜ 조카 앞에 녀석이 무지 잘 쳤는데 하루 지나 결과를 알아보니 그 녀석이 대상 받았고, 조카는 85점으로 6등을 했다. 5등까지 상주는데...ㅡ.ㅡ;;;;; 

오전 동안에 우리가 들은 참가자의 연주만 200명이 넘었다. 총 3타임으로 나눠서 한다고 하니 심사위원들은 귀에서 쥐가 날지도 모르겠다. 그게 업이다만....;;;; 

저녁에는 마포에서 돌잔치가 있었다. 친한 언니의 아기 돌잔치. 덕분에 우리 모임의 번개 정모가 되어버린 셈.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2000년이었으니 거의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시집 가서 아기 엄마된 사람이 있고, 여전히 미쓰인 우리도 있고, 대부분 학생이었던 우리는 대부분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세월 참 빨라. 당연하지만.  







갈 때 지하철 타느라 고생했는데, 올 때는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정류장을 몰라서 무진장 헤매주시고, 그 바람에 까진 발은 더 깊게 패여버리고...(일부러 샌들 바꿔 신고 나왔는데도 발 상하는 것은 막을 수가 없더라.) 집에 와서는 콩콩이 발로 다녀야 했다. 아흐 동동다리~  

 

5. 일요일  

정말, 정말 무지무지 더운 날이었다. 94년의 서울 39도를 기억하는 나는, 해마다 그때만큼 덥진 않아...를 외치며 위로하곤 했지만, 거기서 5도 못 미치는 34도의 서울은 왜 이리 더운가. 서울도 덥지만 우리 집이 너무 더운 까닭일 것이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자기가 힘들다. 역시 아흐 동동다리~ 

6. 월요일 

사랑니를 뽑기로 한 날이다. 마취를 하고 충치 두 개를 치료하고 마지막에 사랑니를 뽑았다. 자꾸 나를 누르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이빨 빼는 중이었던 거란다. 이빨이 안 뽑히려고 용을 써서 그런 느낌이었을까? 잇몸을 꿰매고, 일주일 뒤 다시 푸른 뒤 남은 한쪽도 마저 사랑니를 뽑을 예정이란다. 마취는 정확히 4시간 뒤에 풀렸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별로 안 아팠다. 자꾸 피를 삼켜야 하는 게 좀 메롱이긴 했지만.  

사랑니 뽑는 것 자체는 12,000원으로 저렴하다 여겼는데 CT촬영 2만원에 레진(?) 2개에 20만원...ㅠ.ㅠ 

CT는 저번에 찍은 것 같은데 같은 게 아닌가보다. 한쪽으로만 음식을 씹어야 하는데 습관적으로 양쪽 다 사용하려 든다. 뭐든 균형이 맞아야 하는구나... 

7. 화요일 

큰 조카의 생일날이었다. 선물로 줄 책들을 골라내고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책 반납하고, 치과 들러서 어제 사랑니 뺀 자리를 소독했다. 그리고 그 버스 안에서, 김대중 전대통령님의 서거 소식을 들었다. 병원에 입원하시고 자꾸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릴 때부터 오래 못 버티시겠구나 싶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곤 있었지만, 역시나 갑작스러웠고, 노무현 전대통령님을 보낸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싶어서 마음이 아렸다. 잔인한 2009년이구나...... 내 몸의 반이 무너졌다던 그 분, 남은 절반도 다시 무너져 내려 영원한 잠에 이르시니, 85년의 긴 시간 동안 해내고 이뤄내고 또 겪어낸 것이 무수히 많아, 더 계셔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염치 없지만, 그래도 우린 어떻게 하라고... 막막한 마음에 땡깡이라도 부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고 나니, 내게 있었던 일들의 사소함이 무색해진다. 물론 고통은 늘 상대적인 것이어서 내 고통이 사라진 게 아니고, 내 상처가 아문 게 아니고, 미움의 대상이 용서의 대상으로 둔갑한 것도 아니건만, 그래도 이제 응석은 그만 부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도, 마음도......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9-08-20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우여곡절 많은 한주일이었군요~ 컴백홈(아니 알라딘)을 환영해요!^^

마노아 2009-08-20 20:11   좋아요 0 | URL
컴백 알라딘이네요. 순오기님이 반겨주니 역시 고향이 좋은 것이여~ 싶어요.^^

같은하늘 2009-08-20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렸더니 숙제를 아주 많이 남겨주셨군요...
정말 마노아님이 돌아오시니 꽉~~찬 느낌입니다...^^
그나저나 언제 다 읽어본데요? ㅋㅋㅋ

마노아 2009-08-20 23:36   좋아요 0 | URL
일주일치를 한꺼번에 다 올린 셈이 되어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