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Phos -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우수만화창작 지원작
박흥용 글.그림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9월
품절


전작 쓰쓰돈과 짝이 맞는 또 하나의 작품이다.
쓰쓰돈이 '소리'를 매개로 했다면 이번엔 '빛'이다.
쓰쓰돈에선 형의 이야기를, 빛에선 동생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모두 박흥용 자신의 이야기다.
연작처럼 표현하지 않기 위해서 분리된 캐릭터를 사용했다.
그초자도 멋진 연출로 느껴진다.

동네에 TV가진 유일한 친구 집에 온 동네 아이들이 눈깔사탕 들고 가서 알랑방귀 끼며 한 자리 얻으려 할 때, 우리의 주인공은 형님으로부터 환등기 제작 기법을 배운다. 슬라이드 사진 넘어가는 기분이다.
드라마 일지매에서 이준기가 만들어주던 그 장치가 떠오른다.

친구들 모아놓고 자랑질 좀 하고 인기도 얻고 놀기도 하려면 필름이 더 필요했다.
밀짚 모자 장식으로 두르던 필름을 훔치려다가 호되게 혼나는 주인공.
지난 번 개기일식 때 필름을 쓰려고 방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디카를 사용한 지 오래 되었고, 필름 카메라도 사진만 현상하고 필름은 보관하지 못한 탓일 게다.
하나 정도는 찾을 줄 알았건만 통 나오지 않았다.
저런 용도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게 재밌다.
요즘같은 불볕 더위 때는 밀짚 모자도 간절하긴 하다.

친구들이 퉁박을 주며 떠나가고 난 뒤, 외로움과 심심함에 홀로 그림 그리는 아이의 모습.
그림이 필름처럼 길바닥에 둥둥 펼쳐져 있다.
역시나 탁월한 연출과 그림이다.
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미가 구현되었다.

전쟁 고아가 된 사진기사 아저씨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 하나 남은 유일한 사진 속의 기억에 집착한다.
그러면서 주인공에게 사진이 갖고 있는 '기록성'과 '고립성'을 설명한다.
쓰쓰돈에서도 모르스 신호를 설명하면서 음파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만 이쪽이 훨씬 쉽고 이해가 잘 되게 표현되었다.

이젠 필름이 아니라 직접 그림을 그려서 환등기를 돌리는 주인공.
동네 아이들은 홍길동과 요괴인간, 철인 28호가 함께 등장하는, 게다가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TV보다도 더 매력적인 세계와의 조우랄까.

자신의 유일한 과거가 된 사진 속의 똑같은 날짜를 유추하기 위해서 날마다, 해마다 사진을 찍어온 사진 기사 아저씨.
그 고된 기다림이 훈련이 되어서 최고의 셔터감을 자랑하게 된다.
어두움을 알지 못하면 빛을 알 수 없다는 말은 명언이 되었다.
아저씨의 잃어버린 기억이, 과거가 현재의 아저씨를 명인으로 만들어 주었으니까.
박흥용 작가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우리들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때로 어둠이 너무 강해 빛을 집어 삼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각자 모두가 빛이 되어주는 삶을 살아야 막판 뒤집기에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뉴스 보기 참 두려운 세상이다. 눈 감는다고 안 보이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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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빛 PHOS
    from Jini's home 2009-08-05 17:18 
    (C)박흥용/황매 그리움 속으로... 박흥용의 빛PHOS은 빛바랜 사진을 펼쳐보는 듯한 그리움을 담았다. 한여름에 쉴새 없이 울어대는 매미소리, 푸르름이 가득한 시골의 모습, TV에 열광하고 홍길동과 요괴 인간, 태권 브이 등 모든 것이 그리움으로 채워져 있는 것만 같다. 비록 경험하지 못한(적어도 본인에 한해서는) 시대의 모습들이 담겨 있지만 그러한 것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순수하게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리움이라는 짙은 향수로 다가온다. 그..
 
 
바람돌이 2009-08-05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박흥용씨 그림은 좋네요.

마노아 2009-08-05 09: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순오기 2009-08-05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두번째 사진 기막힌데요!
눈에 익은 풍경화~ 이 책도 사야될 것 같아요~ ^^

마노아 2009-08-05 17:31   좋아요 0 | URL
앗, 세번째 사진이 아니구요? 두 책이 한 짝인줄 몰랐는데 읽고 보니 세트처럼 엮이더라구요. 독립되어 있으면서도요.^^

순오기 2009-08-05 22:32   좋아요 0 | URL
세번째였네요~ ㅋㅋㅋ

마노아 2009-08-05 22:41   좋아요 0 | URL
저도 세번째 사진에 혹 했어요. 그림같은 풍경이에요. 작가님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