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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17 - 원조 마산 아귀찜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7년 7월
평점 :
5개의 에피소드가 진행되는데 하나 빼고 나머지는 모두 짠한 이야기들이었다.
고향의 맛, 엄마의 맛을 기억하는 지체 장애가 있는 동생이 형의 라면 집에서 모든 반찬을 어리굴젓으로 통일(?)시킨다. 그 바람에 어리굴젓으로 유명해져버린 라면집. 그러나 인면수심 주인에 의해서 라면집을 부수고 나온 형. 결국 그토록 원망하며 떠났던 고향 땅에서 다시 시작하는 두 형제의 정이 뜨거웠다.
두 번째 식객 여행은 보광 레스토랑 패밀리들이 각자 자신에게 '감사'의 의미가 되어준 음식을 하나씩 소개하는 시간을 보여주었다. 학생운동 하다가 붙잡혀간 고문실에서 먹었던 국밥 한 그릇, 가난한 만화가에게 힘내라고 김밥을 말아서 몰래 두고 갔던 여고생 팬의 이야기, 갈치를 깨끗하게 먹을 줄 알았던 이유로 운암정에 합격할 수 있었던 성찬의 옛 이야기, 자식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자꾸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어무이께 수제비를 직접 만들어서 대접하고 하룻 밤 자고 왔던 이야기, 그리고 고무신 거꾸로 신은 애인 때문에 사고칠 뻔 했던 군인 시절 먹었던 건빵 이야기까지 다양한 '감사'의 주제가 펼쳐졌다.
그 중 마지막 주자였던 재용 씨는 유자차에 얽힌 사랑을 이야기한다. 유자차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이, 그 유자차를 먹으려고 하면 역사적 순간이 꼭 겹쳐서 만남을 방해 받았다.
87년 6.29선언에 전교조 교사 해직 사건, 대홍수에 성수대교 붕괴, 그리고 삼풍 백화점 붕괴까지. 너무 극적인 사건들이 자꾸 겹치니 마치 소설같고 드라마 같지만, 그런 극적이고 기막힌 순간이 매 순간순간 우리 역사에 있어왔으니, 이런 사연 없으란 법이 없지 않은가.
과연 그들은 긴 인생의 여정 속에서 다시 함께 유자차를 만날 수 있는 순간을 맞을 수 있을까.
우리가 쓰는 부엌칼이 스텐레스 칼인줄 몰랐다. 관심이 없었으니 전혀 무지했던 게 당연했다. 전통 칼은 점차 자취를 감춰갔고, 대장간에서도 만들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을 때, 시집가는 딸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부엌 칼을 만드는 장인이 등장했다.
눈매 매서운 무속인의 잠깐 등장에 이어 하루종일 다양한 사람들이 칼 만들기 작업을 방해했는데, 게 중에는 동생을 욕보인 나쁜 시키를 멱 따겠다고 낫 갈러 온 사람도 있었고, 이 좋은 호미를 만원에 사갈 수 없다고 2만원에 사간 호미 수집가 외국인도 있었다. 좋은 물건 제 값 주고 사겠다는 그 자세 앞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혼자 몸으로 외동 딸 키워낸 그 아버지 눈에 밟혀서 새색시 얼마나 눈물 지었을까 짠하다.
마산은 아귀찜의 본고장이다. 아귀찜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작품의 내용보다 그 경이로운(!) 사투리 재현이 더 신기했을 뿐이다. 숱한 방송 취재로 피를 본 원조 할머니가 박대하는 장면은 실제로 식객 취재 당시의 사건을 재연한 것이라고 한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무수히 공을 들이고 또 고생도 하는 프로 정신이 보였다.
봄, 봄, 봄은 새혼 가정의 갈등 이야기를 보여줬는데 성찬이가 봄철 이벤트로 직접 당첨자의 집에 가서 요리를 해주는 에피소드 안에 엮어냈다.
진달래 화전이 그림처럼 고왔는데 실제로는 개화 시기를 못 맞춰서(이상 기온으로) 비슷한 꽃으로 재연을 했다고 한다.
철저한 고증을 앞세우지만 이런 난관 앞에서는 둘러 가는 방법도 꼭 필요할 듯.
식객은 늘 재밌었다. 감동을 줄 때도 많다.
이번 편에서는 유독 장인 정신이 느껴졌고 언제나 빠지지 않는 가족 간의 정도 듬뿍 느껴졌다.
그나저나 왜 자운 선생님은 '두번째 식객 여행' 청취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