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9
그림 형제 지음, 낸시 에콤 버커트 그림, 랜달 자렐 엮음, 이다희 옮김 / 비룡소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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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안 좋아하는 공주가 바로 '백설'공주다. 백치미의 극치랄까. 너무 멍청하다 보니까 이쁜 줄도 모르겠다.
그치만,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백설공주는 예쁘다.
정말 서양 여자애를 가까이에서 사진으로 찍은 것 같은 느낌.
복숭아빛 발그레한 뺨에 솜털이 보송보송해 보인다.
눈아래 저 라인 좀 보라지. 너무 실감나게 그려냈다.

백설공주 엄마, 왕비 모습이다.
백설공주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된 배경의 그 모습인데,
꼭 타로트 카드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의 그림이다.
만화가로는 '규하' 씨 느낌이랄까.

양 페이지에 그림이 가득 차 있고, 다음 페이지에는 양쪽 가득 글씨가 가득찬 편집이다.
사냥꾼에게서 벗어난 백설공주가 도망치는 모습이다.
너무 어여뻐서 놔줬다는 설정은 맘에 안 든다. 가여워서도 아니고 양심 때문도 아니고 예쁘기 때문이라니...;;;
암튼, 이 화면에 네 계절이 다 녹아든 느낌이다. 멀리멀리 정신 없이 도망치는 모습이라서 그랬겠지만, 백설공주의 표정은 동물들과 술래잡기 하는 분위기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일곱 난쟁이다. 보통의 그림에서 혹은 '설정'에서 일곱 난쟁이는 비록 나이를 먹긴 했지만 '귀엽게'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 현실 속의 난쟁이들은 키만 작을 뿐 이미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귀엽지는 않다. 그냥 어른의 체격에서 키만 작게 축소된 느낌이다.
그런데 이 책의 그림이 꼭 그렇다. 좋게 말하면 리얼한 건데, 어째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저 일곱 난쟁이들은, 어째 좀 무섭게 생겼다..ㅜ.ㅜ

허리끈을 졸라맸다고 바로 기절하는 백설공주. 운동부족이다...;;;
그림의 분위기가 독특하다. 잠들어 있는 해의 반쪽이 잠겨 있는 모습도 그렇고.
푸른 빛깔을 깔아놔서 꼭 눈의 여왕이 사는 성 같다.

독이 든 사과를 만드는 장면이다. 왕비의 동작은 꼭 춤을 추는 것 같고, 실내에 바람이 들어와 책장을 날리는 모습이 어째 으시시하다.
열린 창 너머 달, 박쥐, 테이블 위의 해골과 벌레 등등, 연출이 훌륭하다.
미술팀(?)에게 박수를...

이야기 구조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바로 그 백설공주다. 그러니까 내가 복장 터져하는 못마땅한 멍텅구리 그 백설 공주.
그렇지만 비판이나 욕을 할래도 원작의 내용은 알아야 가능한 것일 테니, 조카가 백설공주 책을 읽는 것을 못마땅해 하지 말자.

저렇게 혼자 해내는 건 아무 것도 없고 아무리 당부를 해줘도 들어먹지 못하는 공주나,
죽은 시체라도 아름다우니 가져가겠다고 나서는 변태 왕자님은 이제 지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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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7-08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설공주라고 불리는 여인에 대해 할 말이 무척 많아요. 백설공주, 왜 우리 나라에선 유독 공주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는데, 원전에서는 슈니 바이스, 눈처럼 하얀 아이 입니다. 한국의 백설공주는 멍청하고 아둔한데, 원전에서는 그렇지도 않아요. 왕비는 백설공주(눈처럼 하얀 아이)의 간과 허파를 갖고 오라 하여 그것을 먹었지요. 중세 서양인들은 간과 허파에 그 사람의 본질이 깃들어있다 생각하였기에 그러한 것이었으나 그녀가 실제 먹은 것은 멧돼지의 것이었으니, 멧돼지의 본질이 왕비에게 스며들게 된 것이지요.

일곱 개의 산을 넘어 일곱 해가 지나 일곱 난장이를 만납니다. 7,7,7이 되풀이 되는 것은, 7이 그만한 험준한 고비와 오랜 시간을 뜻하기 때문이어요. 그 7의 장벽을 지나서도 눈처럼 하얀 아이는 본래의 마음을 지니고 있어요. 그저 살려고 멍청하게 흘러흘러 일곱 난장이를 만난 것이 아니니, 눈처럼 하얀 아이가 나름 지혜롭다는 것이겠지요. 마노아 님이 복장터져 하시는(저도 어릴때 그랬어요) 그 부분은, 눈처럼 하얀 아이를 현혹하려는 마음에 마침내 슬기로운 마음머저 눈이 멀고 만 것을 뜻하는 것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처럼 하얀 아이를 제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눈처럼 하얀 아이가 정신을 차렸을 적에 아, 내가 왜 이랬지, 하는 식의(정확한 말 잊어버림 흐흑)자각의 한마디를 했기 때문입니다.

쓰다 보니 무척 긴 댓글이 되어 버렸어요. 전 한국이들이 다들 멍청한 백설공주! 라고 말하는 것을 독일어 원전을 읽고나서야 안타까워 견딜 수 없는 사람인지라 흥분해버렸지 뭐여요. 요즘 읽을만한 책으로는, `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고등학생 논술을 나름 겨냥한 것 같기는 한데, 이것이 가장 잘 된, 완역판 '눈처럼 하얀 아이'인 듯 해요.

마노아 2009-07-08 11:01   좋아요 0 | URL
일전에 '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리뷰 쓰셨던 것 기억나요. 우리나라에서 유독 공주라 불리면서 더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외국 작품을 번역한 책에서도 백설공주의 설정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짝퉁이 활개를 치기 때문일까요?
간과 허파, 7이라는 숫자에 스며있는 의미 등이 인상 깊어요. 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해 내는군요.
저는 권교정 작가가 윙크에서 데뷔할 때 백설공주 계모에 관한 메르헨...(아마 이런 제목이었을 거예요.)이란 작품을 썼던 게 기억나요. 동화 패러디를 잘하는 작가답게 그 계모가 사실은 아이를 엄청 사랑했고, 아이 역시 그 사랑을 알고 있더라는 이야기였는데 적어도 멍청한 백설공주와 나쁜 새엄마로 그려내진 않았지요.^^

서양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백설공주에 대한 인식은 어떤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보단 낫겠지요?
추천해 주신 책은 꼭 볼게요. 안 그래도 찜해둔 책이에요. 당장은 아니어도 저도 꼭 보고 싶어요.^^

비로그인 2009-07-08 12:25   좋아요 0 | URL
저런 설정으로 그려진 것은요, 아예 초반에 `눈처럼 희고(하늘), 흑단처럼 검고(땅), 피처럼 붉은(사람)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이라고 눈처럼 흰 아이의 어미가 바랬기 때문이지요. 일단 희고 검고 붉은 아이여야 하니까요. 그나저나 저 그림, 정말 희고 검고 붉군요! 아차차, 그리고 하나 더, 왕자에게 눈처럼 흰 아이를 난장이들이 넘긴 것은, 왕자가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로, 마음으로 받들겠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어요. 아, 누군가가 저렇게 말한다면 안넘어갈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실컷 읽고 횡설수설)

마노아 2009-07-08 14:49   좋아요 0 | URL
천지인이 다 녹아 있는 형태로 태어났군요. 왕자님의 그 고백은 멋져요. 그런 고백들을 다 건너 뛰고 딴지 걸 대사만 책에 남아버렸을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