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청소부 풀빛 그림 아이 33
모니카 페트 지음, 김경연 옮김,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 풀빛 / 2000년 11월
평점 :
품절


독일의 거리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 아저씨. 아침 일찍 출근해서 온통 파란색으로만 덮여 있는 옷을 입고, 파란 자전거를 타고, 파란 물통과 청소 도구를 갖고 일을 하는 아저씨. 아, 파란색 일색이라니 색 감각은 엉망이다. 그림도 나로서는 좀 무서운 느낌이 드는 스타일이어서 비호감인데, 파란색 옷을 벗어버리는 순간 느낌이 확 달라지니, 역시나 온통 파란색으로 주문을 한 작가 탓인가 보다.  



아저씨는 작가와 음악가들의 거리를 몇 해 째 청소하고 있는데, 저 작가들과 음악가들의 이름을 붙인 찬란한 거리라니, 엄청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도 몇 해 전에 골목골목 순수 우리 이름으로 예쁜 이름들을 지었지만, 그냥 행정 표시판이 하나 더 늘어났을 뿐 하나도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 익숙하지도 않고 오히려 혼란만 준다. 계획을 착실히 세우지 않고 무작정 들이밀기만 해버려서 오히려 역효과만 난 셈이다. 당연히 세금만 낭비했다.  

암튼, 

이 거리에서 어느 날 아저씨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게 된다. 

엄마와 같이 서 있던 남자 아이가 아저씨가 글자의 선을 지워버렸다고 외친 것이다. 그 거리는 '글루커거리'인데, '글루크'는 독일어로 아무 뜻이 없지만 '글뤼크'는 행복이란 뜻이기에 아이는 글자가 지워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의 엄마가 그건 작곡가 이름이라고 정정해 주었지만 아저씨는 당황했다. 사실 자신도 아이만큼이나 글루크라는 사람에 대해 몰랐던 것이다.  

아저씨는 이 순간 중대한 결심을 한다. 자신이 열심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열심히 알아가기로! 

동전을 던진 결과 그림이 먼저 나왔고, 그래서 아저씨는 음악가부터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글루크-모차르트-바그너-바흐-베토벤-쇼팽-하이든-헨델 

아저씨는 신문을 꼼꼼히 살피면서 음악회나 오페라 같은 공연 정보를 수집했다. 어떤 날은 옷을 잘 차려 입고 공연을 보고 왔는데, 그 덕분에 머리 속에서는 음악 소리가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크리스마스에는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레코드 플레이어를 구입했다. 거실에 누워서 음악을 감상하는 아저씨에겐 낙원이 펼쳐진 셈.  

일을 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그 가락을 휘파람으로 연주했다. 단조로운 휘파람이지만 나름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되었을 것이다.  


다음에는 작가에 도전했다.  

괴테-그릴파르처-만-바흐만-부슈-브레히트-실러-슈토름-케스트너 

도서관에서 이들이 쓴 책을 빌려왔다. 책을 통해서 아저씨가 만나게 되는 보물들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건 음악에서 발견했던 비밀들과 비슷했다. 

'아하! 말은 글로 쓰인 음악이구나. 아니면 음악이 그냥 말로 표현되지 않은 소리의 울림이거나!' 

아저씨는 작가들과도 음악가들과 같이 친구 사이가 되었다. 일을 하면서 특별히 마음에 든 구절들을 혼자 읊조리는 아저씨. 누군가 곁에서 보았으면 아저씨를 시인으로 알지 않았을까.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런 표지판 청소부를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표지판 청소하는 사람 따로 있고, 시와 음악을 아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순간! 

시간이 흘러 아저씨는 꽤 나이를 먹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표지판을 돌보고 보살피는 성실한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다. 

이따금 손가락 끝으로 이제는 너무도 소중해진 이름들을 어루만지며 일하는 동안 자기 자신에게 음악과 문학에 대해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제 거리의 명물이 되고 만다.  

사람들은 아저씨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그 유명세를 타고 TV에서 취재를 나오기도 했던 것이다. 아저씨는 무려 네 군데의 대학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지만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나는 하루종일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입니다. 강연을 하는 건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나는 교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아저씨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표지판 청소부로 머물렀다.  

아저씨의 선택이 현명했다고 박수를 치고 싶다. 내가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아저씨가 대학 강단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면 사람들은 그가 어떤 것이든 실수를 하게 되면 그럼 그렇지, 그 사람은 원래 청소부에 적당한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말을 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경계와 인정하지 못하는 배아픔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상상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저씨는 지금 그 자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니, 방해받지 않고 지금처럼 즐겁게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아저씨를 지나치다가 발견하고 또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의 즐거움도 방해받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데, 아저씨는 정규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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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09-06-16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저씨의 선택이 현명했다고 생각되네요...
평범하던 사람들이 유명세를 타면서 힘들어지는 경우 많잖아요...
마음 편하고 행복하면 그게 최고지요...^^

마노아 2009-06-16 23:07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자기의 페이스를 지키면서 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

순오기 2009-06-16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멘트에 싸~~해요.ㅜㅜ

마노아 2009-06-17 01:53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뭐....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