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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권윤주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전작이며 출세작인 스노우 캣은 오래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단출하고 아기자기한 그림과 조금은 엉뚱한 캐릭터이지만,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느낌은 '우울'과 '외로움'이었다. 그러니 '혼자 놀기'가 그렇게 가능했을 것이다.
작가님의 성향과 성격 등은 알 수 없지만, 그 우울함이 나한테까지 전염되는 것 같아서 그닥 유쾌하지 않았다. '파리의 스노우캣'은 아주 재밌게 보았지만.
이 책도 작가의 평소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우개'는 지우는 존재다. 지워야 할 무언가. 지워지는 무언가...역시 우울한 정서가 먼저 깔린다.
책의 제본은 정말 훌륭했다.
실로 꿰매는 정통적인 사철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표지의 톤도 그렇거니와 일단 '고급스런' 느낌을 준다. 손에 들고 읽는 감촉이 남다르다.
혼자 왔다고, 1인용 좌석 안내해 달라고 하니, 정말 달랑 의자 하나 밖에 없는, 게다가 구석진 자리로 안내 받은 스노우캣. 어쩐지 남일 같지가 않다. 나도 혼자 밥 먹고 혼자 차 마시고, 혼자 영화 보고 공연 보고, 할 거 다 하지만... 어쨌든 혼자인 까닭에 당당히 중앙 좌석을 혼자 떡하니 차지하지는 못한다.(사실 그 자리를 좋아할 일도 없지만. 보통은 창가 자리를 선호하니까.) 그래서 대개 구석진 자리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기 마련인데, 평소 개의치도 않고 의식도 못했는데, 지금 이 그림을 보니 자신의 느낌과 상관 없이 남이 보면 참 '외로워' 보일 수 있겠다. 남들 보기에 외롭지 않아야 할 필요 없고, 설사 외로워서 외로워 보인들 그게 또 무슨 상관이겠는가.
사실, 외로움이란... 현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는 친구 같은 존재이지 싶다. 원래 인간은 외롭게 태어났고, 외롭게 성장하고 외롭게 죽어간다. 매스미디어가 더욱 더 발달하고 있는 현대는 더 외로움에 둘러싸인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걸 굳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혹은 강조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외롭지 않다면 더 좋겠지만, 기왕에 외로울 거라면 외롭다는 사실로 더 불행해지는 건 슬픈 일이니까.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지우개'다. 스스로 제 몸을 지워나가서 군중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스노우 캣.
외로움에 대해 한껏 힘주어 얘기했지만, 마음이 아파지는 그림이었다. 매몰되어 가고 있는 자신과 잊혀져가고 있는 나란 존재에 대한 연민 같은 것 말이다.
평범한 제목 '지우개'지만 생각의 타래를 엮어가자면 이야기거리가 많이 나올 수 있는 지우개다.
종이를 오려서 세워둔 스노우 캣. 누워 있던 자리가 그림자처럼 흔적이 남아있지만, 실상 검은색인지라 그림자가 벌떡 일어선 느낌이다. 푸르른 하늘이 느낌 탓인지 시리게 보인다. 외로움이 사무치는 작품이었는데, '그리움'도 솟구치는 만남이었다. 그 대상은 알 수 없지만......
ps. 그런데 '핀홀 카메라' 너무 신기해 보인다. 정말로 사진이 찍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