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나라 - 아버지의 나라 엘 페이퍼 1
김진 지음 / 엘페이퍼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김진 선생님의 만화 '바람의 나라'가 소설로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아마도 2006년이었을 것이다. 당시 뮤지컬 '바람의 나라'가 오픈되면서 오랜만에 바람의 나라 러브러브 모드가 가동되었고, 선생님의 오랜 팬클럽에 가입도 했는데, 그때 오프 모임에서 만난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서였을 것이다. 책은 이미 절판이었고, 그 소설을 읽으면 유리 왕의 그 병적인 집착과 열등감이 이해가 될 거라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만화 '바람의 나라' 이야기 이전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2007년도에도 뮤지컬이 다시 재연되었고, 나의 소설을 향한 열망은 더 커졌지만 구하기가 막막했다. 그러다가 2008년도에 온갖 중고샵을 더 전전한 뒤 어렵사리 절판된 책을 구했다. 그 책 구하고 며칠 뒤 개정판이 나와서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지만. 

그 개정판이 이 책이다. 두권짜리 분권이었던 책을 한 권으로 묶어 나왔다. 표지가 독특한데, 껍데기를 벗겨서 펼치면 뒷면은 무휼의 포스터고, 그 뒷면은 고구려 왕가의 가계도가 나온다. 그걸 접어서 끼우면 저 모양새가 나온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표지로 쓰기엔 좀 아깝다.   





책의 내용은 만화책의 1권 분량의 내용이다. 한 권 분량의 내용을 소설로 펼쳐놓으니 분량이 500페이지가 넘는다. 굉장한 필력이다. 유리왕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들이 곧잘 나오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이야기도 아닌, 우리가 신화 속에서 전설 속에서, 또 역사서 속에서 보았던 그 내용일 뿐이다. 그런데, 그걸 엮어내는 솜씨가 보통 유려한 것이 아니었다.  

유리. 그는 고구려의 임금이었다. 그러나 준비된 왕은 아니었다. 그는 애비 없는 후레 자식 소리를 들으며 서럽게 자랐고, 아버지가 남긴 표식을 찾아 고구려 땅에 도착했을 때 제 사람이 없었다. 소서노와 그의 아들들은 남쪽 땅으로 떠나버렸고, 아버지 주몽은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기도 전에 세상을 등졌다. 천신의 아들, 강신의 외손 주몽과 달리 자신은 그저 인간의 자식일 뿐이었고, 그래서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에겐 '특별함'이라곤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는 예 있는 것이 맞는데 유리의 나라는 어찌 되었더냐?"

'고구려는 누구의 나라냐?'

물어봐라.

'고구려는 주몽의 나라다.'

주몽이 꿈꾸는 것은 부도다.
선천과 후천이 맞물린 저 하늘 나무 위에 주몽의 부도가 있다. 약속의 땅.

'유리의 땅은 어디에 있는가?'

'유리가 가야 할 세상은 어디에 있는가?'

'유리의 나라는 어디에 있나.'

아버지는 하늘의 길을 가고, 유리는 땅의 길을 걷는다.
아버지는 하늘 나무 위에 부도를 짓고, 유리는 여기 이 땅에 부도를 짓는다.

아니, 지으려 했으니 되지 않았다. – 375쪽
 
   

그리고 그 시절의 '왕'이란, 우리가 전제 왕권을 마구 휘두르는 강력한 왕을 떠올려선 곤란하다. 그는 임금이지만 이웃 나라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그 눈치 때문에 제 자식의 목숨을 끊어놓기도 하는 임금이었다. 그것이 그의 비극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왕국 내의 강력한 부족의 잡음을 없애야 했고, 그렇게 해서 국경을 곤고히 해야 했다. 그렇게 그의 약점 하나하나를 다스리는 동안 그는 세 아들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 태자는 열 다섯 무휼이다. 왕가의 자손이란, 어리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혈통이 아니었다. 태생이 그랬고, 살아온 환경이 그랬고, 그 의지가 그렇게 만들었다. 만화에서 보여지는 무휼은 차비 연과 있을 때는 그래도 약하고 여린, 어리고 순수한 모습의 사내아이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지만,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무휼은 그보다 훨씬 차갑고 무섭고 또 잔인했다. 열 살에 학반령에서 부여군을 몰살시켰던 그 솜씨는 운도 아니었고, 누군가의 도움도 아닌 그의 실력이었다. 그리고 그게 또 그의 본 모습이기도 했다.   

   
  허나,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는 왕이다. 왕을 범부취급을 하면 일이 생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말과 행동에 실수가 있다 해도 치명적인 경우가 많지 않지만, 왕이 되면 달라진다. 왕의 말에는 검이 달려 있다. 그의 생각에는 생사여탈권이 오간다. 웃는 얼굴 뒤에 다른 것이 들어 있고, 다정한 말 속에는 경고가 숨어 있다.
그게 왕이다. -320쪽
 
   

그가 후궁 영채를 다스리는 장면은 카리스마가 뚝뚝 떨어지다 못해 호흡을 잠시 멈추게 할 만큼 긴장감을 제대로 고조시켰다. 나는 그가 왕이 되어 고구려의 땅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그 무수한 싸움의 과정 중에 아버지 유리왕을 닮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그 이전부터 이미 아버지 유리 왕을 빼다 닮아 있었다. 그의 능력과 카리스마는 할아버지 주몽을 닮았을지라도, 그 피 속의 차갑고 잔인한 기운은 이미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또 충격이었다. 으레 주인공에게 기대되어지는 성격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다시금 세번째 막이 오른 뮤지컬을 보기 전에 소설을 읽고 싶어서 부랴부랴 읽었는데, 그래서인지 다시 만난 뮤지컬도 반가웠고, 작가님의 내공에 새삼 감탄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너무도 훌륭한 이 작품엔 치명적인 흠이 있으니, 정말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심각하게 오타가 많다. 문장을 망가뜨리고 어법을 무너뜨리고, 혀를 꼬이게 하는 것도 모자라서, 구두점도 마구 생략해 주고 있다. 아, '마침표' 없는 문장을 바라보는 기분이라니...;;;; 띄어쓰기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이 정도 오타면 편집자는 대체 눈 먼 장님인가 싶을 만큼의 수준이다.  

다음 권은 절대로 같은 출판사에서 내지 마세요!라고 항의 편지라도 쓰려 했는데, 2권이 2009년 출간 예정이다. 물론, 같은 출판사다. 아무래도, 출판사에 전화를 해야 할 듯 싶다. 2쇄를 찍었다면 오타를 수정했을 것이고, 만약 그랬다면 책 바꿔달라고. 그런데 과연 2쇄를 찍을 수 있었을지 자신할 수가 없다ㅠ.ㅠ 명품 책이건만 알아봐주는 사람이 너무 적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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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9-06-20 1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갖고 싶네요~~
바람의 나라 너무 좋아요~~!!!
만화책 22권까지 사고 못 샀는데, 소설이라니.. 으헉..

마노아 2009-06-21 01:40   좋아요 2 | URL
요번에 만화책이랑 스페셜 에디션 판 3권이 나왔답니다. 호호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