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리뷰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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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구두를 벗어 버린 신데렐라 ㅣ 뜨인돌 그림책 12
노경실 글, 주리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09년 3월
절판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림이 너무 예뻐서 꼭 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처음엔 하늘바람님 서재에서 보았고, 그 다음엔 교보문고에서 훔쳐보았고,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예약 걸어서 2주를 기다린 뒤였다. 호호홋!
초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엄마 없이 사는 신데렐라는 훌륭한 집에서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외로웠고, 멀리 장사를 나가신 아빠를 오래오래 기다렸다는 것.
쪼로쪼로로로 삐이삐삐삐 호로호로로로
새들의 노랫 소리를 작가가 표현한 부분이다. 우리 말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오랜만에 돌아오신 아버지는 새엄마와 언니 둘을 데리고 왔다.
신데렐라를 안아주는 새엄마가 너무 크게 표현되어 있어서 비례가 좀 불편하지만, 어쨌든 엄마와 언니들의 성격은 표정에서 이미 드러난다.
하지만 나를 감동시킨 것은 정교한 레이스 옷조각이라는 거!
그림이 동화책의 느낌보다 만화책의 느낌이 강하다.
순정만화의 한 대목을 보는 듯한 느낌.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지만, 나로서는 무척 마음에 든다.
그런데 남자 아이들은 이런 그림을 싫어할까???
아버지는 다시 배를 타러 나가시고, 하필 그 배는 난파당하고, 아버지는 실종!
신데렐라는 그야말로 재투성이 소녀가 되어 새엄마와 언니들의 온갖 구박을 받아야 했다.
깜죽거리는 저 언니들을 보라.
확 끄집어내어서 머리카락을 쥐고 흔들어 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아이를 저렇게 방치하고 멀리 여행을 떠난 안목 없고 대책 없는 아버지라니.
소공녀 세라에서도 그렇지만, 이야기들의 패턴은 대개 비슷하다. 꼭 착하고 예쁜 아이는 든든한 보호자였던 아버지가 사라지는 순간 나쁜 여자들의 앙갚음의 대상이 되어서 죽도록 고생한다. 많은 동화 속에서 등장하는 그 이야기들은 여성과 남성에게 기대되고 또 부여되었던 이미지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기분 나쁜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신데렐라는 좀 남다르다.
자기 몸보다 훨씬 큰 쇠똥을 굴리는 쇠똥구리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어버렸다.
물론, 어느 묘한 할머니의 조언이 있기는 했지만 깨달음은 어디까지나 신데렐라의 몫.
힘들어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 누군가 도와주면 혼자서 일어설 수 없다는 것.
이제 신데렐라는 달라졌다. 언니들이 미모를 가꾸어서 돈 많은 남자한테 시집갈 생각만 하고 있을 때, 과거 왕자님을 기다리곤 했던 신데렐라는 이제 독서를 하면서 꿈을 키운다.
어른이 되면 불쌍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다짐하는 예쁜 신데렐라.
그나저나 이 그림 속에서는 거울조차도 예쁘다는!
얼마 전 갑자기 등장했던 그 할머니의 등장으로 왕자님의 무도회에 갈 수 있게 된 신데렐라.
(그런데 그 할머니는 한 컷도 등장하지 않는다!)
호박이 변신한 마차도 아름답고, 레이스가 찬란한 신데렐라의 드레스도 훌륭하다.
(그런데 이 그림 속 신데렐라는 앞의 그림보다 얼굴에 살이 좀 올랐다...;;;;)
아름다운 궁전에서 왕자님과 춤을 추게 된 신데렐라.
왕자님 얼굴에 '흡족하다'라고 써 있다.
이런 무도회 장면을 볼 때면 고등학교 때 꾸었던 꿈이 생각난다.
왕자님의 무도회에 참석을 했는데, 모두들 자기랑 결혼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여자들 속에서 내가 당당하게 나랑 결혼하고 싶냐? 하고 물었던..ㅋㅋㅋ
꿈 속에서는 그 모든 대사가 노래로 진행되었는데, 청혼의 순간에는 꼭 노래가 있어야 한다는 나의 다짐(?)이 그때에도 이미 굳어 있었나 보다.
시간은 금세 12시를 향해 달려가고, 유리 구두 한짝을 흘려버린 신데렐라가 다시 재투성이 소녀가 되어버린다. 마법이 사라져가는 모습이 너무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어서 그림이 환상적으로 보인다.
우스개 이야기 속에는 호박으로 만든 종이 한 장이, 코피 난 왕자님 콧속에 있다가 왕자님 코를 무너뜨리기도 하건만, 이 이야기 속에 그런 코믹은 없다. 다행히... ^^
왕자님은 유리구두의 주인공이 신데렐라라는 것을 알고는 '실망'한다. 왕자가 직접 신발 들고 나타난 것도 놀랍고, 실망을 감추지 않은 것도 신선 그 자체다. 왕자는 재투성이 소녀의 진짜 아름다움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언니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외모에 현혹되었던 한 사람에 불과했으니까.
그리고 이제 이 책의 하일라이트!
신데렐라는 유리 구두를 던져 버린다.
신데렐레의 깨달음과 당찬 발언, 그리고 동화의 미덕인 해피엔딩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는 아마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자신의 짐작과 어떻게 맞아 떨어지는 지는 책을 통해서 확인해야 한다.
기존의 신데렐라 동화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기획으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제목에서부터 내용의 진행이 예상되지만, 그 뻔할 수 있는 이야기의 단점을 아름다운 그림체로 극복했다.
표지의 신데렐라는 책을 두 권 들고 있는데, 그 야무진 모습이 예쁘다.
하지만 이렇게 책 읽을 기회도 잡지 못하고 재투성이 소녀로 살아야 하는 많은 여자 아이들이 있다. 그러니까 그런 아이들에게도 힘이 되어줄 수 있게 신데렐라는 얼른 어른이 되어서 그 아이들의 힘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