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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의 선물 ㅣ 풀빛 그림 아이 10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베일리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때다.
휘파람을 불며 트럭을 몰던 베일리 씨는 그만 무언가를 차로 치고 말았다.
사슴인가 했는데 세상에, 사람이었다. 트럭에 치인 남자는 다치지 않았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옷차림도 수상 그 자체.
베일리 씨는 집에 데리고 와서 남자를 돌봐 주었다. 베일리 씨 가족은 남자가 숲에 숨어 사는 은둔자일 거라고 짐작했다.
의사 샘이 오셨는데, 머리 뒤쪽의 혹을 보며 기억 상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체온계가 고장 났다고 버리고 가셨다.
"오, 그거 버리셔도 됩니다. 고장났어요. 수은이 바닥에 붙어 올라오지 않습니다."
베일리 씨는 나그네에게 깨끗한 옷을 주었는데, 나그네는 단춧구멍 채우는 것도 어려워 했다. 저녁 시간에, 베일리 씨의 딸 캐티가 수프를 한 숟갈 떠서 후후 부는 모양을 쳐다보더니 그대로 따라 했다. 케티가 말한다.
"아이 추워, 오늘 밤은 문틈에서 바람이 세게 들어오네요."
이후 나그네는 베일리 씨 집에서 완전 적응된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기묘한 모습을 연출해 주니...
토끼들이 나그네를 보고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그가 따라와 주기를 바라면서 뒤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나그네는 베일리 씨와 함께 밭에 나가 일도 했는데 전혀 피곤해하지도 않았고 땀조차 흘리지도 않았다. 대체 이 남자, 정체가 무엇일까?
두 주일이 지나도록 나그네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베일리 씨 가족들은 나그네와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 했고, 나그네도 이제는 수줍음을 덜 탔다. 베일리 씨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부인이 피아노를 치고, 캐티가 춤을 출 때, 신발끈이 풀려버린 나그네도 열심히 춤을 춘다. 아무 걱정 없고 고민 없고 거리낌 없는 저 표정이라니, '행복'이라고 얼굴에 온통 쓰여 있지 않은가!
또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가을이 코앞으로 닥칠 듯했는데, 어쩐 일인지 삼주 동안 나뭇잎들은 전과 다름 없이 똑같은 초록빛을 자랑했고, 베일리 씨네 호박들은 여느 때보다 더 크게 자랐다.
높은 언덕에서 북쪽을 바라본 나그네는 당황했다. 멀리 있는 나무들은 벌써 단풍이 들어 빨강과 주황빛으로 빛나고 있건만, 남쪽 나무들은 베일리씨 농장 주위와 마찬가지로 초록빛으로 가득했던 것. 나그네는 뭔가 부조화스럽다는 것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이런 느낌은 다음 날 더욱 강해졌다. 초록색 나뭇잎을 볼 때면 더 큰 혼란이 찾아왔다. 나그네는 나무로 달려가 이파리 한 잎을 따서 별 생각 없이 훅!하고 힘껏 불었다. 쥐고 있던 이파리는 순식간에 붉은 색으로 변해버린다.
그날 밤, 나그네는 베일리 씨 가족 곁을 떠나버린다. 그가 가자마자 날은 갑자기 추워졌고 나뭇잎들은 더 이상 초록빛이 아니었다.
나그네가 떠난 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베일리 씨 농장에는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북쪽 나무들의 색깔이 모두 변한 뒤에도 베일리 씨 농장의 나무들은 일주일 더 초록빛으로 남았다가 하룻밤 사이 갑자기 그 어떤 나무들보다 밝은 빨강과 주황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베일리 씨네 집 서리 낀 창문 뒤에 "다음 가을에 만나요."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베일리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변하는 때다.
앞 서 읽었던 프로버디티는 반전이 미리 예상이 되는 까닭에 크게 재미를 못 느겼는데, 이 책은 즐거움과 감동이 함께 있다. 나그네의 정체가 무엇인지 대놓고 가르쳐주지 않아 은은한 재미와 설렘이 함께 있었다. 알스버그다운 멋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