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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누이 ㅣ 옛이야기 그림책 까치호랑이 12
이성실 글, 박완숙 그림 / 보림 / 1997년 3월
평점 :
옛날 어느 마을에 아들만 셋을 둔 부부가 살았는데 늘 예쁜 딸 하나 갖기를 소망했다.
날마다 고갯마루에 있는 서낭당에 가서 딸 하나만 얻게 해달라고 치성을 드렸는데,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부부의 기도소리를 들어버렸다.
부부는 얼마 뒤 그토록 바라던 딸을 낳아서 금지옥엽으로 키웠건만, 집안에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집에서 기르던 짐승들이 밤새 한 마리씩 죽어버렸던 것이다.
큰 아들더러 밤새 외양간을 지키라고 했지만, 꾸벅 조는 바람에 실패하고, 둘째 아들도 꾸벅 조는 바람에 실패하고,
셋째 아들만이 억지로 졸음을 쫒아가며 지키고 있는데, 누이 동생이 재주 세 번 넘더니 그만 여우로 변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소간을 꺼내 먹더니 다시 재주 세 번 넘고 누이 동생으로 변신해 방으로 들어갔다.
날이 밝고 아버지께 이 이야기를 했지만, 누이를 모함한다고 오히려 쫓겨나버린 셋째 아들.
깊은 산 속 어느 절에서 스님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며 지낸 셋째 아들. 시간이 흐르니 집 소식이 궁금하기만 하다.
그래서 집에 다녀가려고 하니 스님이 위험하다며 붙잡는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던지라고 흰 병, 파란 병, 빨간 병을 주셨다.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은 온통 폐허가 되어 있고 식구들도 모두 사라졌다. 남아 있는 것은 여우 누이 뿐.
오늘 저녁 한끼는 오라비 잡아먹고, 내일 아침 한끼는 오라비가 타고 온 말을 먹겠다고 대놓고 좋아하는 여우 누이.
이때부터 도망치려는 오라비와, 쫓아오는 여우 누이의 한 판 추격전이 벌어진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구미호를 능가할 수 없겠지만, 스님이 주신 색깔 병으로 때맞춰 위기를 극복해 내는 셋째 아들.
나는 이 이야기를 여덟 살 때 들었다. 그때 우리 집 앞에는 잡초가 허리까지 오는 빈 터가 있었는데, 여우가 쫓아오자 호리병을 던지는 모습들이 그 잡초 더미 속에서 재현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집앞을 지나가는 것도 무서웠다. 내 기억 속의 이야기는 하얀 병이 아니라 노란 병이었다. 가시 덤불을 헤치고 나오는 모습이 노란색이 더 어울릴 법 하건만, 뭐 중요하진 않다. 그래도 파란 병과 붉은 병의 순서는 맞았으니까.^^
어릴 때 누가 이 이야기를 해줬는지 모르겠다. 당시 엄마는 병원에 계셨으니까 엄마는 아닐 것이고, 우리 언니가 아니면 동네 아주머니나 할머니가 아니었을까. 어리던 나날이어서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 해주면 혹 해가지고 귀 기울여 들었었다. 오래도록 잊고 있던 기억이었는데,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는 게 스쳐지나가니 기분이 야릇하다.
그때도 난, 어쩐지 여우 누이가 좀 불쌍했었다. 아마도 인간으로서 1000일을 버티면 진짜 인간이 될 수 있었던 다른 구미호 이야기들과 겹쳐져서 저 여우 누이에게도 식구들은 모르는 남다른 사연과 사정이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여우 누이는 그저 무섭고 나쁜 여우로만 묘사될 뿐 다른 동정의 여지가 없다.
그림도 눈이 쫙 찢어진 게 몹시 무섭기만 하다. 그런데 기억과 추억의 탓으로, 여전히 좀 짠한 구석이 있다. 셋째 아들은 식구들 다 잃고 혼자서 잘 살 수 있었으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