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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드라호스 자크 그림, 로버트 홀든 각색, 이은석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익히 잘 알려진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이런 이야기들은 결국 그림의 힘으로 다시 재조명 받지 않나 싶다. 모두에게 익숙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새롭지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림도 각별하지만 글도 남다르다. 운율이 느껴지는 글솜씨 때문에 마치 노래하듯이 들린다. 누군가 하멜른에서 있었던 이 비극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우리 곁에서 들려주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잠시만 엿보자면 이런 분위기다.

하멜른 마을은 주인이 둘이었네.
하나는 사람, 다른 하나는 쥐.
어디가 사람이 사는 집이고
어디가 쥐가 사는 집인지
헛갈릴 정도였지.



그림 작가 드라호스 자크는 어린 시철 건축 관련 책들이 가득 찬 아버지의 서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덕분에 독특한 그림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유독 건물들이, 기둥들이, 지붕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칼라와 여백을 적절히 조합했는데 가느다란 펜선에서 오는 간결한 압축미와 생략미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쥐들은 대체 뭘 먹고 저리 오동통통 살이 쪘을까. 사람들이 기함하는 것도 당연하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쥐를 무서워한다. 하긴, 우리도 쥐를 보면 ㄲ ㅑ ㅇ ㅏ !!! 하고 비명부터 지르니 뭐라 할 일도 아니다.  

이렇게 쥐에 시달리니, 쥐를 해치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겠다는 결심이 섰던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 마을의 보물이란 보물은 다 내줄 것만 같았다. 상대가 마녀라 해도, 혹은 악마라 해도. 

그리고 그때. 별안간 등장한 사나이가 바로 이 남자다. 



형형한 눈빛이 마녀처럼 무섭지만 그저 사람이다. 피리를 잘 부는. 그 많은 쥐떼들이 현혹되어 그를 무작정 따라갈 만큼 말이다.  

사나이의 달콤한 피리 소리에 맞춰
쥐들은 춤을 추었네.
꼬리를 바짝 세우고
폴짝폴짝 뛰어다녔지. 

달콤한 피리 소리는 쥐들을 유혹했네.
"가자! 맛있는 치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대!"
 

하멜른이 자유를 찾고 사람들이 기뻐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를 어쩌나. 화장실 들어갈 때 맘과 나올 때 맘이 180도 다른 것을! 

사람들은 사내에게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쥐들이 사라졌던 것처럼. 



못된
쥐처럼
욕심이
생겼네.
 

사람의 그림자가 악마처럼 변한 모습으로 그려진 탁월한 묘사다. 저 그림자를 거울로 대치해도 마찬가지의 등식이 성립할 것이다. 결국 욕심 때문에 망하고 마는 게 인간이니까. 

피리 불던 사나이는 마을 사람들의 욕심 사나운 반응에 제대로 화가 나버렸다. 그는 보물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사람들에게 정말 소중한 무언가를 가져가리라 결심한다. 그건 바로...... 



아이들이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기쁨! 

사나이는 다시 피리를 불었네.
한 번, 두 번......
그러자 아이들의 눈앞에 천국이 나타났네. 

"당신들은 저주받았소.
주머니는 두둑할지 몰라도
당신들의 마음은 텅 비게 될 것이오."
 



아이들은
사나이를 따라 가네.
환상을 품은 채,
노래를 부르며...... 

하멜른 사람들은
쥐를 없앤 값을
톡톡히 치렀다네.
 

아이들이 지나가는 다리에 금이 가서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사람들이 쌓은 욕심의 성을 보는 듯하다. 

책의 마지막에 이 이야기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게 없어서 아쉬웠다. 어릴 적 보던 책에 이 책의 배경에 대해서 읽었을 법한데, 사실 생각이 안 난다. 지금 짐작하기에 언뜻 '페스트'가 떠오른다. 쥐가 옮긴 그 페스트 균으로 마을의 아이들이 많이 죽은 것을 피리 부는 사나이에 빗대어서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또 더불어 생각나는 것이 권교정 작가의 데뷔작이다. 동화 패러디, 각색에 능한 권 작가는 피리부는 사나이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데뷔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아니라고 해도 확실히 초기작이다. 아, 백설공주의 계모에 관한 메르헨이 데뷔작이고 이게 두 번째 작품이던가????), 하여간 거기서도 피리부는 사나이가 아이들을 데려간 것이 아니라 다른 속사정이 있었던 거라는 이야기를 상상으로 펼쳤었다. 워낙 오래 전에 읽어서 잘 기억도 안 난다. 책은 분명 어딘가에 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이야기도 재밌고, 교훈도 묵직하지만 그림이 무엇보다 너무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표지의 바탕 색이 너무 어두워서 책꽂이에 꽂아두면 눈에 잘 안 띈다는 게 유일한 단점이다.  

이 작가의 다른 그림책이 더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권교정 작가 책도 다시 보고 싶은데, 당장 찾을 수 없는 어느 상자나 창고에 있을 듯하다. 어흑...내 책...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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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09-04-21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마을에 쥐들과 산다고 상상을 해 보았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끔찍하다는 생각밖에 안드네요.^^
사람들은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걸 왜 모를까요..

마노아 2009-04-21 11:39   좋아요 0 | URL
그래서 인간이 미련하지요. 그럼에도 여태 멸망않고 살아있는 게 용해요. 그치만 인간이 파멸한다면 필시 그 욕심 때문일 거예요ㅠ.ㅠ

메르헨 2009-04-2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의 위에 댓글을 보니...^^ 데블스 에드버킷...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네요.
무섭고도...끔찍했지만 참으로 기억에 오래 남는...그런 영화였습니다.
욕심...그 단어 때문에 떠오르네요.^^

마노아 2009-04-21 13:28   좋아요 0 | URL
그 영화 정말 재밌었어요. 마지막의 그 반전이란 소름 끼쳤지요.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는 영화였어요. 인간의 허영, 욕심, 그 틈새를 악마는 기막히게 파고들지요.^^;;;

hnine 2009-04-2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때 이 동화를 읽었는데 어린 마음에 그냥 무서운 느낌만 들었던 기억이 나서 지금도 이런 동화는 과연 어린이를 위한 동화일까 어른을 위한 동화일까 생각해보게 되요. '동화란 어린이들을 위해서 쓰여진 이야기임을 기본으로 하고 어른들도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던 저의 지금까지의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어린이와 어른이 동시에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라고 해야할까요?

마노아 2009-04-21 21:40   좋아요 0 | URL
저는 어릴 때 그 아이들을 다 데리고 가서 그 남자는 어디 가서 살았을까... 이런 궁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동화가 읽을 때마다, 그 나이에 맞춰, 갖고 있는 배경 지식에 따라서 계속해서 다르게 읽혀지는 듯해요. 아무튼 좋은 동화는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겠지요. ^^

L.SHIN 2009-04-22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에 이 동화를 읽었을 때는 '그래, 그렇지. 당연한 결과야'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피리 사나이도 옹졸하네요. 허허벌판에서 갑자기 정신을 차린 아이들은 굶어 죽었을까요? -_-

마노아 2009-04-22 12:03   좋아요 0 | URL
저 사나이가 다른 곳으로 데려다가 잘 살지 않았을까요? 응징의 대상은 어른들이었으니까 아이들은 살려뒀을 것 같은 제 바람이에요.^^;;;

꿈꾸는잎싹 2009-04-22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참 독특하네요.

마노아 2009-04-23 00:07   좋아요 0 | URL
뭐랄까. 독일스런 그림이었어요. 독일 작가는 아니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