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배우 차인표의 이름 앞에는 여러 수식어들이 붙어 있었다. 그가 보여주는 성실한 삶의 자세, 그가 보여주는 인도주의적 삶 등 언제나 그에게는 반듯하고 따스한, '난' 사람의 이름이 '배우'라는 타이틀보다 앞서 달려왔다. 이제, 그의 이름 앞에 또 다른 이름이 따라붙을 차례다. '소설가' 차인표. 더군다나 '따뜻한' 소설가 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97년도에 존재가 알려진 훈 할머니였다. 조선인 위안부로 열여섯 나이에 끌려가 캄보디아에서 발견된 할머니. 이름도, 언어도 모두 잊은 채 고향만 기억했던 그 할머니의 기사를 보면서 작가는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연민을 함께 느꼈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잘가요 언덕을 기억하나요.
들꽃과 제비와 순이와 용이가 뛰놀던 곳.
잘가요 언덕을 기억하나요.
별과 바람과 만남과 헤어짐이 살았던 곳.
잘가요 언덕을 기억하나요.
엄마 잃은 아기 호랑이에게 젖 먹이던 산골 마을.
그 평화 어느덧 사라지고 슬픔만 남게 된
잘가요 언덕을 기억하나요. – 5쪽

백두산 깊은 골에 자리한 호랑이 마을. 그 호랑이 마을에 등장한 낯선 타지인 황포수와 아들 용이. 그들은 용이 엄마와 동생을 잡아간 백호를 잡기 위해서 지리산에서부터 호랑이를 추적해 백두산 마을까지 온 것이다. 반드시 백호를 잡기 위해서 산에 올라야 했던 황포수는 마을을 위협하던 육발이(발가락이 6개인 호랑이)를 잡아주겠다며, 다른 동물들은 전혀 해치지 않겠다고 촌장님께 약속을 한다. 백호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서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를 향해 마을 촌장 어르신이 해주는 당부는 의미심장하다. 

   
 

 호랑이들은 우리가 이곳에 마을을 만들고 정착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이 산에서 살고 있었네.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생각을 해 보게나. 사람에게 해가 된다고, 혹은 조금 불편하다고, 혹은 조금 이득이 생긴다고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면 세상이 어찌 되겠는가? 설령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일지라도,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일세. 짐승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과도 더불어 살 수 없는 법일세. – 25쪽

 
   

결국, 황포수는 백호를 잡지 못하고 육발이만 잡은 채 산을 내려온다. 거칠고 무서운 호랑이 육발이도, 실은 새끼 호랑이의 어미였다는 것, 그 새끼 호랑이가 육발이처럼 자랄 테지만, 그 새끼를 차마 죽일 수 없었다던 용이의 고백이 먹먹하다. 엄마 없이 자라서 엄마 정이 그리운 용이에게, 역시 엄마 없이 자란 촌장님 손녀 딸 순이는 '엄마 별'을 가르쳐준다. 하늘 위에서 반짝이면서 자신을 내려봐주는, 언젠가 다시 만날 따스한 엄마 별을, 그러나 외롭고 지친, 고독한 아이 용이는 마음으로 품어내지 못한다. 저 수많은 별들 중에서 어느 것이 엄마 별인지도 찾을 수 없다.  

책에서는 이들 두 아이 또래의 정겨운 캐릭터가 하나 더 등장한다. 마을의 유일한 고아 소년인 '훌쩍이'. 말 중에 훌쩍 거리는 소리가 절반을 차지하는 이 순박한 아이는 평화로운 호랑이 마을의 선하고 욕심 없는 사람들, 그 시절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대표하는 하나의 인물이었다.  

또 작품의 한 축을 이어가는 것은 가즈오라고 하는 일본 군인인데, 그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일본이 내세우는 대동아공영의 이상을 숭배하며 스스로 자원 입대한 사람이었다. 그가 오사카에서, 조선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그리고 조선 땅에 머물면서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는 한 사람의 꿈과 이상과 소망이 어떻게 좌절되고 또 여물어 가는지를 의미 있게 조명해 준다. 여기에는 김재홍 선생님의 그림 스케치가 큰 몫을 감당하기도 했다. 이 책에 비매품으로 함께 나온 OST처럼 책의 느낌과 의미를 더 잘 전달해주는 하나의 소통 도구이기도 하다.  

뜻밖의 사고로 황포수와 용이는 호랑이 마을에서 쫓겨나듯 떠나야 했고, 그 후 7년이란 세월이 흐른다. 그 시간 동안 조선 땅에서 일본이 치른 전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그것이 얼마나 흉악한 범죄인지를 깨달아버린 가즈오. 그 가즈오가 호랑이 마을에 도착해서 순이에게 반해버린다. 그리고 그 때, 위안부 동원 명령을 받는다. 호랑이 마을의 유일한 처녀 아가씨 순이가 그 징집 대상이었다.  

이쯤이 작품 중반부다. 새끼 제비 한 마리가 이 모든 풍경들을 지켜보면서 잔잔히 서술해 가던 이야기가 급박한 긴장감에 싸이면서 절정을 향해 치달린다. 그리고 소설의 최고 절정의 순간은, 주인공들의 아픔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일 거라는 것을, 독자는, 그리고 그 역사를 알고 있는 우리는 이미 짐작하게 된다.  

작가 차인표란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작품은 정말로 자연스럽게 읽히며 재미와 감동과 여운을 함께 선사한다. 버스에 오르려던 찰나, 기사님이 출발하시는 바람에 크게 다칠 뻔했던 나는, 그럼에도 그 버스에 올라서 흔들리는 차 안에서 이 책을 펴들었을 정도니 말이다.  

가즈오와 그의 병사들이 조선 마을에서 쓰러진 벼를 일으키며 함께 일하고 평화를 느끼는 대목은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였다. 저들도 일본 땅에서는 그저 순박한 농부였을진대, 그들도 원해서 이 전쟁을 치렀던 것은 아니었을 텐데, 그들에게도 돌아가고픈 고향이, 지키고픈 가족이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아프게 박히는 기막힌 역사적 진실들이다.  

   
 

 지금 논바닥에는 일본군도 호랑이 마을 사람들도 없습니다. 그냥 사람들만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다. 새끼 제비는 알고 있습니다. 저들은 해낼 것입니다. 합심해서 송장처럼 쓰러졌던 벼를 모두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생명이 끊어져가던 벼가 살아나겠지요. 다시 살아난 벼 이삭은 더 많은 쌀 알갱이를 품어 키워낼 것입니다. 그 쌀 알갱이들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되어 지치고 배고픈 누군가의 생명을 지탱해 줄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들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생명일지라도,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일회성이 아닌 연속성을 가진, '살아 있음' 그 자체라는 것을 새끼 제비는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 109쪽

 
   

결국 위안부로 차출된 순이를 구해내려고 어머니께 마지막 편지를 올리는 가즈오의 고백에는 한 인간이 가졌던 무수한 번뇌의 조각들이, 그가 군인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 지키려고 했던 양심과 신념이 드러난다. 그런 고백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들릴 뿐, 국가라는 이름으로, 공적인 책임을 지고서 울리지 않는 것이 안타깝고 서러울 뿐이다.  

   
 

 어머니, 다시 어머니를 못 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보고 싶습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어머니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열한 일본군 장교로서 어머니의 품에 안기느니, 용서를 구하는 한 인간으로서, 죽어서라도 어머니의 마음에 안기겠습니다.

불효자 가즈오 마쯔에다 올림 – 133쪽

 
   

작품에서 내내 흐르는 주제 의식은, 결국 '용서'일 것이다. 용이가 백호를 용서하고 마음으로부터 비워낼 때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위안부 할머니들도, 고통 받았던 그 시절 무수한 사람들도 그 마음에 참 자유를 찾으려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용서'를 필요로 할 터인데, 용이의 고백처럼 용서를 구하지 않는 상대를 용서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것이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던가.  어쩌면, 그건 '신'의 영역일 수도 있겠다.  백호처럼 본능에 의해 움직인 짐승도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하고서 악마적 범죄를 저지른 그 대상들을, 그리고 여전히 뻔뻔하게 사과하지 않는 그들을, 자연적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할머니들더러 용서하라는 말을 어찌 할 수 있을까. 일방적인 용서로 과연 할머니들의 마음은 자유로워지실 수 있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그토록 악하고 독하고 무서운 것도 인간이지만, 또 그 반대로 그렇게 선하고, 따스하고, 아름다운 존재도 인간일 수 있음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용이와 순이를 통해 독자를 향해 조용히 말하고 있다. 독자는,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에 기대어 그 마음에 잔잔한 동의를 표시해 본다. 용이가 마침내 엄마별을 찾아낸 것처럼, 그 별의 따스함을 알아차린 것처럼...... 그리고 작가 역시 엄마 별을 통해 참 용서에 다가간 것처럼.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 어느 독자의 동화책으로 내보는 건 어떠냐는 질문에 차인표는 손사래를 쳤다. 십 년 이상 이 작품을 온통 품어안고 창작의 고통에 시달렸던 그로서는 이해가 가는 반응이다. 나로서는, 동화보다는 영화 쪽이 좀 더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다고 느끼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제작할 능력이 되지 않고 누군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 '누군가'가 나타났으면 한다. 그것은 상업적인 성공 가능성이 보이는 것 이상으로, 이 작품이 주는 아름답고 건강한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이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할머니들이 계시는 '나눔의 집'에 이제 여덟 분이 살고 계시다고 한다. 그 분들이 험했던 이 땅에서의 삶을 모두 내려놓기 전에, 진정한 화해와 반성, 용서와 자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그런 기적같은 일이 진정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실어본다. 무거울 법한 이야기를 이토록 편하게, 따스하게, 감동적으로 엮어준 작가 차인표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에게는 부담이겠지만, 독자는 다음 작품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꼭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덧글) 제목 '잘가요 언덕'은 호랑이 마을의 언덕 이름이다. 떠나는 사람을 향해 잘가라고 손 흔들어주는, 또 만나자고 인사하는 언덕 이름인데 쉼표가 들어가는 바람에 마치 '언덕'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표지 디자인의 실수다. 다음 쇄를 찍을 때 꼭 수정되었으면 좋겠다. 진정 옥의 티였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9-04-19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응이 좋은 거 같아요~~ 워낙 소재가 심금을 울리는 소재긴 한데, 소설가의 역량이 따라주나 보군요.^^
잘가요 언덕이란 고유명사를 이렇게 망가뜨렸다니...헐!

마노아 2009-04-20 00:04   좋아요 0 | URL
전혀 기대도 안 했는데 직업 작가처럼 잘 썼더라구요. 감탄했어요.^^
제목은 정말 큰 실수지요. 헐~~

다락방 2009-04-19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 책이 반응이 좋더군요. 서점에서도 몇번이나 들었다가 연예인이란 선입견이 자꾸 책 사기를 망설이게 했는데...흐음..

마노아 2009-04-20 00:05   좋아요 0 | URL
출판사도 영업을 잘하고 있지만, 일단 책이 좋으니까 가능한 반응같아요. ^^

2009-04-20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0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0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0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0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