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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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를 떠올리면, 살림 출판사가 선인세를 너무 많이 주고 계약했던 사건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그 다음엔 작년에 한참 책 광고할 때 목소리가 아주 허스키한 그 성우분...(이름이 생각 안 난다. 돌아온 일지매에서 '책녀'로 나오던데...) 목소리가 생각난다. 멘트가 "랜디 포시 교수님, 고맙습니다."였던가, "편히 쉬세요."였던가. 

암튼. 그의 마지막 강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의 책 역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좋은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고 익히 들어왔지만, 결국 모든 만남과 경험은 자신이 직접 가질 때 깊은 울림을 주는 게 맞나보다. 책으로 읽고,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서 마지막 강의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을 보고 나니 가슴이 더 벅차오른다. 벌써 8개월도 더 전에 돌아가신 이 분을 이제사 추모하게 된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내가 알기로도, 췌장암은 생존확률이 가장 희박했고 고통은 극심하다고 했다. 그 병을 40대의 젊은 교수 랜디 포시가 갖게 된다. 그는 희망을 안고 수술을 받고 화학요법을 받았지만, 암은 간으로 전이되어서 종양이 무려 열 개가 발견되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석 달에서 여섯 달. 그는 인생을 정리해야 했고, 아직 충분히 어린 세 자녀를 위해 무언가를 남겨야 했다. 그리고 그 결정체가 이 '마지막 강의'다.  

단 한 순간이라도 가족들과 더 보내어야 했던 그 시간을 강의를 위해서 투자해야 했기에 아내 재이의 반대는 무척 컸다. 당연하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만 포시 교수는 아내를 설득했고, 결국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가족과 친구들과 제자들 앞에서 인생의 중요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우리가 자주 듣곤 하는 꿈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다. 꿈이 이뤄질 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거라는 이야기. 그 구체적인 증거를 랜디 포시는 경이롭게 설명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이랬다. 

-무중력상태에 있어보기
-NFL 선수 되기
-<세계백과사전>에 내가 쓴 항목 등재하기
-커크 선장 되기
-봉제 동물인형 따기
-디즈니의 이매지니어 되기
 

그의 꿈들은 독특했다. 무중력 상태에 있어보기. 와우, 놀랍다. 물론, 그가 아폴로 13호가 달에 착륙할 때 온통 TV에 얼굴을 박고 있던 세대였기에 가질 수 있는 소망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걸 자신의 진짜 목표로 삼았다는 것은 놀랍다. 그런데 정말 꿈을 이뤘는가? 이뤘다! 대단히 놀랍게도! 뿐인가? 다른 꿈 리스트도 그는 이루었거나 거의 이루었거나 근접했다.  

프로 미식 축구 선수가 되진 못했지만, 아마추어 선수로 뛰었고, 그의 연구 성과로 세계백과사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스타트랙의 커크 선장(역을 맡았던 배우)과의 멋진 조우를 이루어냈으며, 사람보다 더 큰 봉제 동물 인형을 땄고, 그리고 꿈의 공원 디즈니의 이매지니어가 되었다.  자세한 과정과 그가 땀으로 일궈낸 기적들은 책으로 확인하시길! 

이 책 속에서 디즈니와 얽힌 에피소드가 많이 나오는데 그의 부모가 어린 그와 그의 형제들을 디즈니랜드에 보내 준 것이 거대한 나비효과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의 학문적 성과를 누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디즈니랜드의 즐거움을 누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갔다. 마치 온 우주가 그것을 간절히 바랐던 것처럼.  

그는 출발이 좋았던, 운이 좋았던 사내였는지 모른다. 훌륭한 부모님을 만났고, 훌륭한 멘토를 만났고, 훌륭한 스승과 제자, 그리고 아내를 만났다. 그 모든 것이 단지 행운이었을까. 행운조차도 그 스스로 불러냈다는 확신이 든다. 그의 긍정 마인드가, 정직함이, 성실함이, 열정이 말이다. 심지어,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동안에도 심장 마비나 교통사고처럼 급작스럽게 세상을 작별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가 이 강의 후에 '성자 랜디'로 불리는 것도 그저 농담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무척 부드럽고 극적으로 읽히는데, 그의 극적인 인생 여정을 생각할 때 당연하기도 하지만, 책을 정리한 제프리 재슬로의 역할이 컸던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 랜디 포시 교수의 동영상을 보면 말이 무척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한된 시간 안에 그의 마지막 강의를 다 녹여야 했기에 다급한 것도 있었겠지만, 그의 전공과 평소 성격 등을 고려할 때 원래 말이 빠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강의 자체보다 책의 진행이 더 소설적이다. 픽션이라는 말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기승전결이 있다. 시간을 두어 만든 책이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강의 때 실제로 썼던 슬라이드, 사진 등이 책에도 곧잘 나오곤 하는데, 그의 가족 사진이 나올 때마다 여간 마음이 짠한 게 아니었다. 특히나 실제로 강의 끝나기 약 3분 전에 아내의 깜짝 생일 파티로 다 함께 노래를 불러주고 뜨겁게 키스하는 장면이 그랬다. 강의가 있었던 2007년 9월 30일 그 시간에, 아내 재이는 이렇게 말했다. "제발 죽지 말아요." 얼마나 간절했을까. 촛불을 불 때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무엇으로도 바꾸지 않을 그 소원은 남편이 살아남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강의 막바지에 이 강의의 진정한 목적은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이냐에 관한 것이며,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남기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아버지, 아이들이 자랄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그 아버지가 남기는 인생에 관한 메시지이며 사랑의 메시지였다. 분명 아이들은, 자라면서 아버지의 부재로 힘든 시간을 겪을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이 채워져 있다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채울 수 없는 그 공백이 분명 아이들을 아프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온 마음으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불태워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표현해주었던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이,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울 아부지는,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임종 직전에는 거의 식사를 못하셨고 그저 마른 시체처럼 누워 계실 뿐이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단 둘만 있을 때 엄마가 물었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냐고. 아빠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셨고, 그저 빨리 예수님 만나고 싶다고만 하셨다. 평생 교회를 거부하고 신앙을 멀리했던 아빠로서는 놀라운 대답이었지만, 나중에 이 소식을 듣고는 많이 섭섭했다. 왜 한 마디도 남겨주지 않으셨을까. 미안하다. 사랑한다. 잘 살아라... 뭐 이런 말 짧고도 강렬한데 말이다.  

십년도 더 지났다. 여전히, 그 부분은 섭섭하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 랜디 포시만큼 인상적으로, 멋진 메시지를 선물로 주진 않았지만, 그 마음이 이만 못했을까 생각한다.  

랜디 포시는 꿈을 가질 것과, 그 꿈을 향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열심히 토로했다.  간절한 부름 끝에 꿈이 스스로 우리를 찾아오는 이야기도 아낌 없이 들려주었다. 기적같은 그 이야기들을. 살아서 오래오래 그의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남는 기적은 그의 것이 아니었지만, 그는 적어도 의사가 얘기했던 최장 6개월에서, 다시 6개월을 더 살다가 이 땅을 떠났다. 하루 하루가 간절했던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있어서는 기적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강의에서 영감을 얻은 많은 이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그 꿈과 만나는 기적을 체험할 것이다. 역시, 기적같은 일이 아니던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랜디 포시 교수님, 그의 건강한 메시지가 그의 이야기, 그의 전언을 듣는 많은 사람들을 또한 건강하게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리고 나는 그가 그랬던 것처럼 '티거'로 살고 살아갈 것이다.

덧글) 책의 표지가 너무 고루하단 인상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이가 그린 듯한 느낌의 로켓이 보인다. 별처럼 반짝이는 꿈이 표지 한 가운데에 새겨져 있다. 부록으로 같이 온 WISH BOOK은 꿈 다이어리다. 자신의 꿈과 꿈을 이뤄가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들을 적어나갈 수 있게 구성한 다이어리. 날짜가 적혀 있지 않기 때문에 내년 도에 써도 좋을 다이어리다. 그의 책에 어울리는 별책부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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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4-0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의 진심이 담긴 리뷰에 그저 조용히 추천만 하고 갑니다.

마노아 2009-04-05 22:16   좋아요 0 | URL
조용히 웃지요. 감사합니다. ^^

순오기 2009-04-05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봤군요.....
이 책 읽어서 꿈에 아버지가 보인 것 아니었을까......
다음으로 글 보내기가 안 돼 있어요.

마노아 2009-04-05 22:17   좋아요 0 | URL
아버진 어제 그제 꿈에서 보았는데, 이 책은 거의 오늘 다 읽었어요.
아빠는, 뭔가 굉장히 심적으로 물리적으로 힘들 때 꿈에서 자주 보아요.
그리고 꼭 돌아가시기 직전의 비참했던 모습으로 나타나서 마음이 안 좋지요.
개인적인 얘기가 있어서 다음 블로그 설정을 안 했는데, 또 얼마나 읽겠냐 싶어서 다시 설정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