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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작아졌어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23
정성훈 지음 / 한솔수북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에 '토끼가 커졌어!'를 읽었는데 이 책 역시 같은 작가의 책이었다. 오우, 토끼는 커졌고, 사자는 작아졌다니, 대체 어쩌다가??? 



이유는 모른다. 그냥 평소처럼 점심 먹고 잠자고 있었는데 눈 떠 보니 상황종료. 대체 무슨 조화가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다.  

알겠는 것은 그저 막막할 만큼 작아졌다는 사실 뿐. 바로 이렇게! 



나무도 까마득하게 높아보이고, 풀숲도 정글 마냥 우거져 보이고,  들쥐도 작아진 사자에겐 위협적일 만큼 커보인다. 게다가 개울이라니, 이건 완전히 바다다.  

그만 그 개울에 빠져버린 사자. 꾸르륵 꾸르륵 그래도 물에 빠져죽을 뻔한 사자를 구해준 것은 바로 가젤.



가젤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바로 어제 사자가 자기 엄마를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원수의 생명을 구해주다니, 가젤은 너무너무 화가 나서 사자를 다시 물에 빠뜨리려고 한다.  

당장 죽게 생긴 사자. 일부러 그런 게 아님을 적극 변명하며 가젤의 마음을 돌리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꽃을 내밀까, 노래를 불러볼까, 뿔에다가 그림을 그려줄까, 털을 빗질해 줄까...... 

나름대로 열심히 가젤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애를 쓰는 작아진 사자.  

그림 상으로는 너무 귀엽고 웃기기까지 한 모습이지만, 정작 가젤의 마음은 어떨까. 

가젤은 엄마를 잃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어떤 선물로도 엄마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소중한 엄마를 빼앗아간 것은 지금 눈 앞에 있는 사자다.  

괴로워 울부짖는 가젤을 보며 사자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도 함께. 



"그럼......, 날 먹어." 

사자의, 진심이었다. 목숨이 아깝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사죄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자는 그만큼 미안했고, 가젤의 마음이 달래지길 원했다.  

'토끼가 커졌어'에서 힘이 세져버린 토끼는 제 힘을 과시하고 함부로 썼지만, 이 책 속의 가젤은 달랐다. 자신보다 한없이 작아진 사자가 얼마나 약한 존재가 되었는지 알고 있지만, 그걸 이용해서 의미 없는 복수를 하지 않는다. 복수를 해도, 엄마 가젤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니까.  

전작이 재미와 해학에 대해서 얘길했다면, 이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용서와 관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린이의 눈높이를 맞춰서.  



가젤의 눈물을 열심히 닦아주는 사자의 모습. 가젤도 놀라고 독자도 놀라고, 그리고 사자도 놀랐다. 

다음 순간 원래의 크기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무엇이, 사자를 원래 모습을 되돌려 버렸을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 그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제 다시 사자는 커졌고, 가젤을 잡아먹을 만큼 위협적으로 변해버렸는데, 둘은 어떤 관계가 될까? 

가부와 메이 시리즈가 떠오르는 책이다. 6권의 시리즈를 보면서 끝내 울게 만들었던 그 책처럼, 이 책도 왈칵 감동이 밀려온다. 

사죄와 용서에 대해서 생각한다. 과연 반성과 사죄 없는 용서가 가능할 것인가. 

역사적 사건에서 진심이 담긴 사죄와 그렇지 않은 변명의 차이를 무수히 발견하곤 한다. 거창하게 역사적 사건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의 삶 속에서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을 보면서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사자와 가젤의 관계를 갖지 못한 까닭이었다. 한 달쯤 전에 만난 친구가 내게 해준 말은 그것이었다. 네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은, 그리고 들어야 마땅한 말은 세 마디다.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난, 울어버렸다. 단 세 마디. 오래도록 갈망했던 그 세 마디. 그렇게 말해주면 다 용서해줄 것 같은데, 다 잊어줄 것 같은데, 결코 해주지 않는다. 이유를 알고 있다. 미안해 하지 않는다. 미안하지 않으니 고맙지도 않다. 미안하지 않고 고맙지 않으니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절망스러웠다.  

죽은 가젤의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내가 치렀던 희생과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 되돌릴 수 없으니, 난 사과라도 받고 싶은데 해 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다 극복하는 휴먼 드라마가 싫다.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소장하기로 결심했다. 아름답고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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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4-04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평생 소장 가치가 충분한 책이예요. 강추~~~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이게 그리 어려운 일이라죠~ 특히 가족간에는!ㅜㅜ

마노아 2009-04-04 02:42   좋아요 0 | URL
가슴이 뭉클해지는 책이었어요. 이 책을 알게 된 건 순오기님 덕분이에요. 감사감사~
단 세마디만 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드네요. 그러니 부족한 우리들이죠.

후애(厚愛) 2009-04-04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자가 강자에게 먹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라고 할 수가 있지만...그래도 이세상 모든 야생동물들이 육식을 안 하고 채식만을 한다면 먹고 먹히는 일들이 없을텐데..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책인 것 같아요!


마노아 2009-04-04 15:17   좋아요 0 | URL
제 몸이 커졌을 때 그 힘을 남용한 토끼와, 제 몸이 작아졌을 때 진정 자신을 돌아본 사자 이야기. 많은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도 그런 큰 힘과, 이런 막막한 사태가 생겼을 때를 상상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