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대변과 소변도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제 884 호/2009-03-04]


서울 근교 중소도시에서 몇 달 사이에 벌써 4차례의 절도사건이 일어났다. 다행히 모두 사람이 없는 동안에 범행이 이루어져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연일 계속되는 범행에 지역 주민과 경찰들이 매우 예민해져 있었다. 정밀한 현장 조사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단서를 찾을 수는 있었지만 사건을 해결할만한 결정적인 증거물을 발견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 사건 모두 범행 수법이 비슷하여 동일범의 소행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다시 5차 사건이 이들 사건과는 좀 더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수사관들은 또다시 터진 비슷한 사건에 매우 당황했다. 아직 나머지 사건의 단서조차 잡지 못한 상태에서 보란 듯이 또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수사관 몇 명이 현장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별다른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고 말았다.

“아! 이게 뭐야. 대변이잖아. 에이 재수 없어. 밟을 뻔했네!”

한 수사관이 건물 외곽을 조사하다가 풀잎으로 덮여 있는 대변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어, 그래! 가만히 있어. 조심! 조심!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어. 다행이군! 어제 비가 안 와서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대로 잘 들어내서 국과수로 의뢰해야겠어.”

선임 수사관이 대변이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음을 알고 그곳으로 달려가 변을 조심스럽게 채취하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사건 현장에서 대변이 채취되어 의뢰되는 경우가 있다. 과연 대변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범인들은 범죄를 저지르기 전 극도의 긴장감으로 가끔 위의 사건과 같이 변을 보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사건 현장의 주위에서 발견되는 변은 범인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

과연 대변에서는 어떤 과학적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운 실험이 되겠지만 혈액형 및 유전자분석이 가능하다. 또한 변의 내용물을 분석함으로써 범인이 어떤 종류의 음식물을 섭취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 수사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혈액형 분석의 경우 변의 표면에 항문샘 등에서 분비된 점액성의 물질이 묻어 있는데 이 점액물질에는 분비된 혈액형 물질이 같이 묻어 있다. 따라서 이를 적절히 처리하면 범인의 혈액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혈액형을 검출하는 방법은 혈흔, 모발 등에서 혈액형을 시험하는 것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대변에서 혈액형을 분석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약 1-3그램의 대변을 취한 후 여기에 10배 정도의 알코올을 가하여 30분간 가열 후 냉각한다. 이것을 원심분리하여 1/5로 농축한 후 3 배 정도의 알코올을 넣고 4℃에서 하룻밤 방치한다. 이를 다시 원심침전한 후 건조시켜 침전물을 분말로 만들어 혈액형을 분석하는 데 사용한다. 혈액형 시험은 항체가 항원에 반응하는지 시험하는 흡착시험법을 사용한다.

유전자분석의 경우 대변에 장 내벽 세포가 같이 묻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장의 표면과 닿았던 대변의 겉면을 채취하여 전처리 과정을 거친 다음 DNA를 분리하여 유전자분석을 실시한다. DNA 분리 후에는 일반적인 DNA 분석 방법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유전자형을 얻을 수 있다. 대변 자체가 오염이 심한 상태이므로 유전자형을 성공적으로 검출하는 것이 어렵지만 비교적 신선한 대변에서는 유전자형을 검출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반면, 시간이 지나 부패가 진행된 대변의 경우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는 부패 세균 등이 사람의 DNA를 깨뜨릴 수 있는 효소 등의 대사물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소변에서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과학적 증거를 얻을 수 있다. 소변인지 여부, 사람의 소변인지 여부 그리고 유전자분석까지 모두 가능하다. 오히려 소변의 경우 대변보다는 더욱 쉽게 유전자형을 검출할 수 있다. 이러한 실험이 가능한 것은 요로상피세포가 소변에 같이 섞여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변과 같이 소변도 쉽게 부패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실패할 확률이 높다.

위 사건들의 범인을 검거하기 위하여, 목격자 진술과 확보된 일부 증거를 바탕으로 주변의 우범자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하였다. 수사 결과 수십 명의 용의자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대변에서 혈액형이 검출되어 혈액형이 일치하는 사람들로 용의자를 좁힐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대변에서 검출된 유전자형과 압축된 용의자들의 유전자형을 비교하여 일치하는 범인을 찾을 수 있었다. 이로써 몇 달 동안 시끄러웠던 사건이 전혀 증거가 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대변으로 범인을 검거하게 되었고 이들 사건 모두가 해결될 수 있었다.

이처럼 아주 하찮은 증거도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미 증거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베테랑 수사관에게는 대변이 황금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제야 수사관들 모두 입가에 미소를 띨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속담이 있잖아. 대변보기를 황금같이 하라!”
선임 수사관이 의미 있는 농담을 던졌다.

글 : 박기원 박사(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분석과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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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3-04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보니까 예전에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왔던 질문이 생각나네요. 어떤 사람이 대변을 지린 빤쮸를 동네 옷수거함에 버렸는데 버리고 나서 불안한 마음에 유전자 검사해서 걸릴 수도 있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정말 웃겼어요.

마노아 2009-03-04 17:43   좋아요 0 | URL
아니, 그런 빤쮸를 왜 옷수거함에 버렸대요? 정말 나쁜 사람일세! 쓰레기 무단투기보다 더 나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