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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강도 - 네버랜드 Piture books 038
토미 웅게러 글, 그림 | 양희전 옮김 / 시공주니어 / 199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세 강도'라고 쓰고서 꼭 '세 친구'라고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
어린이 책에 강도가 주인공으로 나섰는데, 사전적 의미의 그 무시무시한 강도일 것 같지 않았다. 일지매 같은 의적이거나 아니면 어리숙하고 멍청한 강도 쯤으로.
이 책의 세 주인공은 내가 생각한 그 두가지 종류의 강도와 비스무리하다. 둘을 섞어 놓았다고 보면 될 거다.
세 강도가 있는데, 그림 상으로 눈이 다 보이는 녀석과 하나만 보이는 녀석, 하나도 안 보이는 녀석이 한 컷에 모두 잡혔다. 재미있는 구도다.
망또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저 옷이 몹시 탐난다.
첫번째 강도는 나팔총을 가지고 다녔다.
두번째 강도는 후춧가루 발사기를 가지고 다녔고.
세번째 강도는 커다랗고 빨간 도끼를 들고 다녔다.
첫째와 둘째에 비해 셋째 무기가 좀 무시무시해 보인다.
저 나팔총의 소리는 얼마나 클지 궁금해진다.
그림자 극을 연상시키는 이런 그림이 마음에 든다.
커다란 보름달에 비친 도끼날은 무시무시하기보다 예쁜 장식물로 보이고,
가느다란 나뭇가지 끝에 앉은 올빼미의 표정이 재미나다.
뒤따르는 강도들의 굽은 등에서 이들의 평소 행동거지가 눈에 그려진다.
아무래도 똘똘한 도둑으로는 안 보인다.
후춧가루를 쏘아서 말을 놀래키고, 도끼로 마차를 부순다.
그리고 나팔총으로 사람들을 위협해서 그들의 재물을 훔친다.
인명은 해치지 않은 채 나름 머리를 써서 강도짓을 하는 세 강도들. 그렇다면 훔친 재물들은 대체 어디에 쓰는 것일까? 그리고 훔칠 것이 없을 때는 어떻게 대처할까?
어느 날 세 강도가 덮친 마차에는 티파니라는 이름의 고아 소녀가 타고 있었다. 티파니는 심술궂은 숙모네로 살러 가던 길이었기 때문에 강도를 만나서 오히려 기뻐했다는 전설이 있다!
강도들은 따뜻한 망토로 티파니를 감싸서 안고 데려갔다. 그리고 동굴 구석에 푹신한 잠자리를 마련해서 티파니를 재웠다.
잠에서 깨어난 티파니는 강도들이 모은 재물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물었고, 생각해본 적 없는 이 어리숙한 강도들은 우왕좌왕! 그리고 이때부터 이들의 본격적인 변신이 시작된다.
강도들은 자기네 보물을 쓰려고, 길을 잃은 아이나, 불행한 아이, 버려진 아이들을 닥치는 대로 데려왔다.
그리고는 이들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성을 샀다.
아이들은 빨간 모자와 망토를 차려 입고, 새 집으로 이사했다.
지금까지 까맣고 푸르스름한 빛으로만 등장하던 배경이 탁하긴 하지만 그린 빛으로, 그리고 밝은 빨강으로 채워지면서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환해졌다.
이 성에 대한 소문이 온 나라에 퍼지자 날마다 세 강도네 문가에는 제발로 찾아오거나, 누군가 데려다 놓은 아이들이 가득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또 있다.
졸지에 전문 마차털이범에서 전문 보육원, 고아원, 희망의 집으로의 변신이랄 수 있겠다.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할 나이가 되자 성 근처에 집을 지었다. 마을은 점점 커졌고, 온통 빨간 모자와 빨간 망토를 차려입은 사람들로 가득찬다. 사람들은 인정 많은 양아버지가 된 세 강도를 기리려고 뾰족 지붕이 있는 높은 탑 세 개를 세웠다. 위인이 된 강도 세 아버지 이야기 한 판이었다.
작품을 읽고 나선 아이들의 생각을 물어보면 좋을 듯하다. 세 강도는 과연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나쁜 사람인가. 그네들이 사람들을 도운 것은 잘한 짓인가, 훔친 돈으로 선심을 썼으니 옳다고 할 수 없는 것인가. 여러 의견이 나올 것이다. 어느 쪽도 맞자 틀리다 가르지는 말자. 아이들의 생각과 반응을 지켜보고 들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기 등장하는 세 강도의 이야기는 우리네 현실에서도 많이 마주칠 수 있는 어떤 가치와도 통할 것이다. 큰 도둑과 작은 도둑, 진짜 도둑과 무늬만 도둑. 그리고 의로운 돈과 불의한 돈. 진정한 도움과 가식적인 도움 등등등.
잛은 글과 강렬한 대비가 느껴지는 그림이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전달한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