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공주의 수난기

지빠귀 부리 왕자 ㅣ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17
그림 형제 지음, 펠릭스 호프만 그림, 박경희 옮김 / 비룡소 / 2005년 8월

그림 형제의 동화에 판화가 펠릭스 호프만이 그림을 입혔다.
옛날 어느 나라에 매우 아름답지만 콧대가 사정 없이 높았던 제멋대로 공주님이 계셨는데, 구혼자들을 온갖 모욕과 면박으로 꺾는 것을 즐겨했더랬다.
누군 뚱뚱해서, 누군 키가 커서, 누군 키가 작아서, 누군 너무 창백해서, 누군 얼굴이 붉어서, 누군 등이 구부정해서 퇴짜퇴짜퇴짜!
그리고 어느 마음씨 착한 왕자님은 턱이 뾰족하게 튀어나와서 '지빠귀 부리'같다고 마구 놀려댔다.

화가 난 임금님은 가장 먼저 궁궐 문을 들어서는 거지에게 공주를 시집보내겠다고 맹세를 해버린다.
그리고 며칠 후 등장한 떠돌이 거지 악사.
공주는 졸지에 거디 악사의 와이프가 되고 만다.
근데 복장이 완전 현대식이다. 그나저나 공주는 설마 맨발???

거지 악사의 집으로 가는 동안에 지나치는 아름다운 숲과 풀밭, 도시는 모두 지빠귀 부리 왕자의 것이었다.
그때마다 공주는 그와 결혼했더라면...하고 한탄을 해버린다.
이 대사 때문에 거지 악사의 정체를 알아버렸다. (칫!)

아무튼. 일이라곤 해보지 못한 공주의 고생살이가 뻔하다.
불을 지피고 밥을 짓는 일이 공주에게 어디 보통 일인가.
거지 악사의 도움을 받아서 공주가 겨우겨우 해내는데...
(거지 악사는 할 줄 알았다는 게 대단!)

또 바구니 짜기도 시켜보지만 고운 손이 온통 상처 투성이가 되어버리고,
실을 잣게 했더니 역시나 피투성이.
서동요의 선화 공주가 생각나는구나!

결국 다음번엔 옹기 장수가 되었는데, 그나마 예쁜 얼굴로 사람들이 많이 사가서 겨우 입에 풀칠이 가능했지만, 어느 경비병이 옹기를 다 깨버리고 지나가서 이것도 무용지물!

도대체가 밥값을 못하는 공주 때문에 화가 난 거지 악사는 공주가 쫓겨나온 궁궐에 하녀로 들여보낸다. 거기서 음식들을 조금씩 남겨 주머니에 보관하던 처량한 전직 공주.
그 날은 첫째 왕자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는데 하필 지빠귀 부리 왕자를 만나게 된 것.
원래 가장 보여주기 싫은 사람한테 가장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게다가 음식 몰래 저장하던 것마저 들켜버렸으니 가장 최악!

그렇지만 대부분의 동화가 그렇듯이 해피엔딩을 위한 반전이 준비되었으니.
거지 악사는 바로 지빠귀 부리 왕자님이었던 것!
앞부분에서 이미 눈치채긴 했지만 좀 김이 빠졌다.
세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도 떠오르는 대목인데, 거지 악사로 분해서 공주 길들이는 모습이 가히 좋아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공주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불었던 사람이었다고는 하지만, 어쩐지 같은 여자로서 좀 불쾌했달까.
펠릭스 호프만의 그림 스타일이 원래 이렇게 투박하고 거친 모양인데 내가 좋아하는 취향은 아니었다. 찔레꽃 공주를 사다 놓고 아직 보지 못했는데 기대감이 더 사라지고 있는 중.
그나저나, 지빠귀 부리가 어케 생긴 것일까? 정말 그렇게 뾰족한가? 그게 더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