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늑대의 눈 비룡소의 그림동화 56
조나단 런던 글, 존 반 질 그림, 김세희 옮김 / 비룡소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한 눈매하시는 우리의 회색 늑대님 되시겠다. 올가미에 짝을 잃고 외로운 사냥길에 나선 회색 늑대.  

북쪽의 밤은 춥고도 조용하다. 회색 늑대는 눈 위를 미끄러지듯 걸어가는데, 보진 못했지만 그 모습은 몹시 우아했을 거라고(그래야만 한다고) 상상해 본다.  

가다가 멈춰 서서 킁킁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여기는 내 땅이라고 영역 표시를 하기도 한다.  

무려 일 년 전에 숨겨둔 고깃덩이를 찾아보기도 하지만 이미 독수리, 족제비, 오소리들이 먹어치웠을 것이다. 

골짜기 꼭대기에 이르러서는 목을 길게 빼고 긴 울음을 토해낸다. 외로움의 표시일까, 영역 표시일까. 그 울음 소리에 놀란 작은 동물들은 잽싸게 도망쳤을까, 두려워서 몸이 얼어붙었을까. 

다시 사냥길에 나선 회색 늑대. 이번 목표는 하얀 토끼다. 그.런.데. 



이 토끼, 귀엽기는커녕 너무 튼실해 주신다. 하도 크게 그려놔서 늑대도 잡아 먹게 생겼다.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토끼라기보단 체력장하는 토끼처럼 보인다. 이럴 수가! 

그런데 이때, 토끼를 그냥 놓아주는 회색 늑대. 토끼가 불쌍해서? 아니다. 뭔가 다른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 



(접사로 찍을 때 플래시 끄면 안 되는 건가? 사진이 붉게 나왔다.ㅠ.ㅠ) 

눈숲 주변에 희번득 드러나는 위협스런 눈동자들. 그리고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까지. 

회색 늑대의 목 주변 털들이 바싹 일어선다. 경계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횃불처럼 이글거리는 늑대의 눈빛. 대장 늑대가 앞장서서 회색 늑대를 탐색한다. 공격하려는 것일까?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홀로 움직이는 늑대 한 마리를 내쫓거나 아님 그들의 세계로 영입하려는 것일까? 정답은 이거다! 



아, 아름답구나! 저 눈부시게 하얀 늑대. 달빛을 온통 배경으로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포스의 주인공 되시겠다. 

그렇다. 회색 늑대와 저 하얀 늑대를 짝지워주려고 대장 늑대가 탐색전을 나선 것이다. 뭣도 모르고 무작정 덤비기만 했으면 회색 늑대는 늘씬하게 얻어터질 뿐아니라 새 짝을 맞는 복도 잃어버렸을 것이다.  

둘이 마주서자 나무들마저 긴장한 나머지 숨쉬기를 멈춘다. 마침내 두 늑대가 마음이 맞았음을 꼬리로 확인을 하고 무리를 벗어나자 나무들도 긴 숨을 토해낸다. 긴장감 조성 끝!



흰색 늑대는 평화로이 잠들어 있지만 회색 늑대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기합이 잔뜩 들어 있다. 누구도 침범 못할 그들의 가족이다. 봄이 되면 그들 사이에 귀여운 아기 늑대들도 태어날 테지. 흰색, 회색, 검은색 골고루 태어나면 좋겠다.  



1700년대까지만 해도 북아메리카 전 지역에서 늑대가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캐나다와 알래스카, 미국에서는 미네소타 주 정도에서만 늑대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땅의 원주인을 모두 몰아낸 그들은 동물들마저도 제 살 곳에서 몰아내어 더 북쪽으로 북쪽으로 밀어낸 것이다.  

늑대란 원래 수줍은 동물이었다는 작가 노트에서 화들짝 놀란다.  

동화속 늑대는 대개 약한 동물들을 괴롭히는 존재로 묘사되곤 하는데 이 책은 늑대가 주인공일 뿐 아니라 습성과 성향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사실적인 그림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워싱턴 주에 다시 늑대가 살 수 있게 늑대 보호주의자들이 노력하고 있다는데 트와일라잇 시리즈 '뉴문'의 주인공 늑대 인간이 퍼뜩 떠올랐다. 책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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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08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인간들의 몸쓸 편견 때문에 핍박을 받았군요. 인간은 동물들을 의인화해서 곧잘 악마화 하곤 하는데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로 종 다양성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것을 볼 때 인간이야말로 잔인한것 같아요.

마노아 2009-02-09 00:18   좋아요 0 | URL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서 더 송곳을 내세우고 사나봐요. 이제 충분히 위협적인데 그만 해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인류 말이지요.

순오기 2009-02-09 0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늑대를 좋게 그려낸 책은 많지 않은 거 같죠?
시튼동물기에 그려진 늑대왕 로보가 떠오르네요.^^

마노아 2009-02-09 10:36   좋아요 0 | URL
최근에야 수줍은 늑대, 감동받는 늑대 이런 식으로 좀 보이는 것 같고 어릴 때는 참 보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시튼 동물기는 읽었지만 기억이 안 나는 거 있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