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예상했던 대로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부슬부슬. 창밖을 보면 보이지 않는데, 손을 내밀어 보면 손이 젖는다. 아주 가느다란 비였다.  

새로 추가할 반찬이 없었기 때문에 이날의 아침 준비는 한 시간만에 끝난다.  

전날 끓여놓은 육개장인데 왜 한 시간씩이나 걸리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예상했던 대로 이 날도 나의 자리는 식탁이 아니라 조카의 조그마한 식탁 옆자리. 허리가 아프구나.ㅜ.ㅜ 

비도 왔지만 이 날은 운전해 주시는 분이 휴가를 내셔서 밖으로 외출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랬는데 뜻밖에 택시를 부르더라. 

중국 택시는 무척 작았고, 운전석을 투명 플라스틱으로 감싸는 형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름 보호 장치인가 본데 좀 기괴해 보였다.  

오빠가 관리실까지 가서 어딜 가면 좋겠냐고 문의까지 해서 가게 된 곳은 상하이 테크날로지 & 사이언스 뮤지엄이었다. 이름은 뭔가 거창했지만 실망 그 자체! 

그러니까 여기 전시된 것들은 대략 이런 수준이다. 

 

아, 저 조잡한 박제 판다 곰이라니..ㅠ.ㅠ 난 상하이 동물원 가서 살아있는, 대나무 잎을 먹는 팬다 곰이 보고 싶었단 말이다...(주르륵!) 

사람은 엄청 많았다. 다들 디카 하나씩 들고 정신 없이 찍는다. 내가 어리지 않아서인 걸까? 난 저렇게 가짜 티가 나는 걸 보면서 전혀 기쁘지가 않더만. 차라리 집에서 백과사전을 보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았다.  



피아노 치는 로봇. 모양새는 제법 그럴싸 했지만 연주가 별로다. 로봇이 치는 게 엄청 티가 난다. 팍팍! 

보아하니 언니랑 오빠도 실망한 눈치다. 어린 조카 녀석은 신이 나 있었지만. 

넓기는 오지게 넓어서 우린 허기도 지고 다리도 아파 매점으로 향했다. 여기 매점은 넓은 전시 공간과 비교되게 엄청 작았는데, 금연석과 흡연석이 마주보고 배치되어 있다. 중국에선 대개 그렇다고 한다. 나중에 내가 스타벅스엔 흡연실이 따로 있다고 하니까 놀라더라.  

암튼, 입구에서 메뉴를 정해서 식권으로 바꾸는데 뭐 먹겠냐고 묻지도 않는다. 알아서 구매하고 줄부터 서는 오빠. 

우린 자리 확보하고 의자 구하느라 동분서주. 그 사이 조카는 또 다시 잠이 들었다. 이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잠든다.  

혼자서는 다 못 들고 올 게 뻔해서 오빠랑 같이 줄 서 있는데, 여긴 배식 시스템이 아주 웃기다.  

먼저 주문한 사람의 요리가 한꺼번에 나온 게 아니라 A라는 식권 음식이 다섯 개 정도 함께 나오면 그 음식을 주문한 사람들이 차례로 그것을 집어 간다. 그러니까 먼저 계산하고 줄 서도 자기 음식을 주방장이 금방 안 만들어 주면 다음 사람이 음식 먼저 받아갈 때까지 내내 기다려야 한다는 거다.  

우리 메뉴는 볶음밥 하나랑 감자 튀김 두 개, 그리고 과일 샐러드였는데, 감자가 기름에 완전 쩔어서 나와서 느글느글....-_-;; 그나마 기름진 볶음밥이 제일 먹을 만 했다. 과일도 푸석푸석... 맛 읎다! 

차라리 집에서 책을 보았더라면 더 나았을 것을. 돌아갈 때는 택시가 안 잡혀서 빗속에서 오래 기다려야 했다. 제법 춥더라.  

어렵게 택시를 잡아 탔는데 라디오에서 드라마가 나온다. 한 사람의 남자가 모든 역할을 다 소화하는 거였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 말이 너무 시끄러웠다. 엄마는 뒷좌석에서 저거 끌 수 없냐고 투덜거리는데 우리 중 중국말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지라 집에 갈 때까지 그렇게 도착했다는 이야기. 무려 40분을...;;;; 

저녁에 엄마가 잡채를 해주셨는데, 중국에서 파는 당면은 한국 것과 달리 너무 끈적끈적했다. 엄마는 당면을 삶은 뒤 찬물에 씻으면 식어서 맛이 없다고 늘 뜨거운 채 양념과 섞는 것을 고수했는데, 중국 당면은 너무 끈적거려 찬물에 씻어야 맛이 날 녀석이었나 보다. 아아,,, 모처럼 저녁 밥상을 빛내준 잡채는 실패작이었다ㅠ.ㅠ 

저녁 먹기 직전 오빠는 조카를 내게 맡기고 아래 층 피트니스 센터 다녀왔다. 며칠 운동을 안 했더니 너무 찌뿌드드하다고. 난 조카랑 happy feet 비디오를 보고, 퍼즐을 맞추고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그 다음엔 두 사람의 결혼식 DVD를 봤는데 생각보다 재미났다. 내친 김에 그들의 앨범도 모두 섭렵!

뉴스에서 용산 이야기가 나와서 무슨 사건이냐고 물어서 시작된 이야기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촛불 집회, 온갖 민영화, 2009년 예산과 관련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했는데, 언니는 그게 정말이냐고, 그런 게 가능하냐고 묻는다. 네... 가능해요, 한국에서는...ㅠ.ㅠ  

언니는 미국산 쇠고기가 그렇게 불안정하냐고 묻는데, 자신들이 먹는 쇠고기와 우리가 수입하는 쇠고기가 왜 달라야 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왜 달라야 하는지, 저도 좀 알고 싶네요. 이제 대형마트 뿐아니라 백화점에도 미국산 쇠고기가 대놓고 깔린다고 좀 전에 기사에서 봄...;;; 

대통령 이야기도 했다. 대통령 바껴서 너무 부럽다고. 자신들도 부재자 투표로 오바마 찍고 왔다는데, 변화란 두고 볼 일이지 아직은 아무 기대 안 한다고 했다. 그래도 일단 '당선' 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조금의 변화는 시작된 게 아닐까.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눴고... 그리고 또 굿나잇!

방에 돌아와서 책을 읽는다. 한국에서 비행기 탔을 때부터 읽었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드디어 이 날 다 읽었다. 400페이지가 좀 넘는 책인데 읽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각주, 원주 등등이 무척 심오하고 길어서! 


책은 생기발랄한 표지를 자랑하지만, 또 문체가 엄청 코믹했지만, 그럼에도 참 슬펐다. 도미니카의 경악할 만한 독재자가 배경에 깔려서, 그런 독재자가 세상에 너무 많아서 슬프더라. 책 속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미국이 도미니카를 침공한 사실을 사람들이 모른다고.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도 사람들은 모르게 될 거랑 마찬가지라고.  

망각은 너무도 쉬이 찾아온다. 쳇! (그나저나 이 책 번역 진짜 짱!!)

공지영의 책은 무거운 마음을 좀 덜어주는 데에 제법 도움이 되었다. 일단 책장이 빨리 넘어가니까 거기서부터 기분이 좋더라. 흔들 의자에서 책 읽으며 하루를 조용히 마감하려고 했는데...... 

이날은 연휴의 막바지인지라 불꽃놀이가 끝장을 내려 하고 있었다. 어찌나 밤새도록 불꽃 쇼를 하는지, 소리가 너무 커서 창 닫고 커텐 이중으로 쳤는데도 고막이 울릴 지경이다. 나의 조용한 독서 타임은 대체 어디메에..ㅜ.ㅜ 



방에서 찍은 동영상을 캡쳐한 사진이다. 전날 전전날은 좀처럼 불꽃 쇼를 못 봐서 아쉬웠는데 이날은 너무 넘치게 터트려서 좀 힘들었다. 밤새도록 할 것 같았던 불꽃 쇼는 정확히 새벽 1시에 끝나서 새벽 6시에 다시 시작하더라.  

책보다가 잠든 목요일. 이제 1박 2일만 더 버티면 된다. 오,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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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05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하기 여행기가 아니라 상하이 고역기...군요..^^

마노아 2009-02-05 01:36   좋아요 0 | URL
상하이에서 뭘 봤냐, 얼마나 재밌었냐! 하고 물으면, 막 꽃팔려요..ㅜ.ㅜ

바람돌이 2009-02-05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쯤되면 저라면 화가 막 나기 시작할 듯.... 저도 소심하니 대놓고 화는 못내고 속만 끓이고 있겠어요.ㅠ.ㅠ

마노아 2009-02-05 02:06   좋아요 0 | URL
목요일쯤 되니까 어느 정도 포기가 되더라구요. 아, 이 사람들은 원래 이렇구나...ㅠ.ㅠ

Kitty 2009-02-05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제가 가까운 일본 정도에만 있었어도 마노아님 놀러오시라고 하고 싶어요 ㅠ_ㅠ
중국까지 가서 팬더를 못 보고 오시다니욧!!!!!!!!!!!!!

마노아 2009-02-05 09:18   좋아요 0 | URL
전에 일본 팬더가 죽었는데 중국에서 엄청 비싼 돈을 요구하면서 팬다를 보낸다고 해서 일본 동물원이 고민한단 기사를 보았는데 그후 어떻게 되었나 모르겠네요.
중국까지 가서 팬더를 못 보다니ㅠ.ㅠ

순오기 2009-02-05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못 말리는 사람들, 중국도 오라버니 가족도~~ㅜㅜ

마노아 2009-02-05 09:18   좋아요 0 | URL
울 오빠 패밀리 공공의 적이 되어가고 있어요.ㅎㅎ

후애(厚愛) 2009-02-05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할수록 너무 화가 나요. 초대를 해놓고선 불청객 대접을 하고 있네요.

마노아 2009-02-05 09:19   좋아요 0 | URL
불청객까진 아니지만 일년 내내 한집에서 사는 사람 대접이었죠.ㅋㅋ
근검 절약이 너무 몸에 익어서 손님 접대가 이렇더라구요ㅠ.ㅠ

2009-02-05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5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6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6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