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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노 갓파의 인도 스케치 여행
세노 갓파 지음, 김이경 옮김 / 서해문집 / 2008년 12월
품절
독특한 책을 만났다.
인도 여행기이면서 역사서를 표방할 만큼 다양한 인도사를 지나가고,
기행문이니까 사진이 주를 이룰 것 같은데 사진은 단 한장도 들어가 있지 않다.
대신 무수한 스케치가 들어가 있다.
모두 세노 갓파 자신이 그린 그림들이다.
그의 본업은 무대 감독이다. 그리고 또 여행가이다.
여행을 갈 때 그는 스케치북을 늘 갖고 다니는데, 그가 만나는 무수한 사람과 사물, 그리고 건축물 등을 세심하게 그림으로 옮겨놓는다.
심지어 자신이 탔던 열차와 머물렀던 호텔 방의 도면까지 다 그린다.
그리고 그 물건 사이의 간격도 재고 실내 온도도 체크한다.
이 남자, 보통 특이한 인물이 아니다.
세노 갓파의 인도 여행은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1978년과 1983년.
서른 해를 꼬박 넘긴 시간이니 이 여행기록은 꽤 오래된 데이타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세노 갓파가 다녀온 것은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천천히 흘러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인도'니까.
그는 멋진 자연 풍경에는 그닥 끌려하지 않았다.
사람 손을 탄 건축물들. 그것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과 역사 속에서 갖고 있는 의미,
그리고 현재 인도인들에게 어떤 실체인가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그가 인도의 역사와 인도의 종교, 인도의 풍습을 함께 얘기하는 모습을 듣다 보면 자연스레 그곳 사람들의 삶이 눈에 그려지게 된다.
게다가 이렇듯 친절한 그림도 함께하지 않는가.
타지마할을 조성시킨 샤자한 황제는 아내의 묘를 완성시킨 다음에 흑색으로 된 자신의 묘를 하나 더 만들 계획이었다고 한다.
만약 그 흑색 묘까지 완성되었다고 한다면 타지마할을 찾는 관광객은 더 엄청난 볼거리를 눈에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쉬워하기에는, 저 공사에 동원되었을 무수한 백성들의 피눈물이 밟힌다.
없는 것은 없는 대로, 있는 것은 있는 대로 만족하도록 하자.
스케치가 워낙 조밀한 까닭에, 또 그 안에 담긴 글자들이 빡빡한 까닭에 있는 데에 시간이 제법 걸렸다.
게다가 원작의 편집을 그대로 살린 탓인지, 세로 읽기가 너무 많다.
일본 사람들이야 그게 익숙하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어디 그런가.
워낙에 집착하는 성격의 나는 글자 하나 안 놓치려고 용을 쓰다 보니 눈이 좀 쉽게 피로해지긴 했다는 전설...;;;;
호기심쟁이 갓파는 인도 여인들이 입은 전통 의상 입는 순서를 재현시켜 보고 자신도 직접 입어보는 등, 뭐든 자기 손으로 해보는 게 많았다.
그들의 전통 그림도 따라 그려보고, 순례자들의 고행 길도 마다하지 않는 열성을 보였다.
그 바람에 맨발로 땅을 걷는 일이 익숙한 그들과 달리 발바닥이 뜨겁게 달궈지는 통증을 맛보기도 했지만.
조장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고, 온 그대로 떠나는 장례 문화.
무엇도 더럽히지 않는 정신이 돋보인다.
그림으로는 잘 상상이 안 가지만 실제로 보면 압도 당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다른 종교의 의식을 들여다 보자니 엄숙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새들이 와서 먹는다고 생각하면 좀 으스스해지기는 하지만.
이걸 다 어떻게 그렸을까 궁금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직접 그리는 것은 분명한데 완성까지 다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는 사진을 찍고, 사진을 토대로 가급적 사실적으로 스케치를 해낸다.
어떤 호수에서는 300척의 배를 다 그리고 싶었지만 180척의 배를 그려넣은 것을 아쉬워하는 대목이 있었다. 180척도 대단하다.
심지어 궁전 같은 경우 창문의 숫자까지 모두 일치하게 그린다니 이 남자의 집착 정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듯.
인도를 여행하기 위한 '안내서'라기 보다, 인도라는 나라를 들여다 보며 호기심을 더 건드리는 책으로 이 책은 더 적합해 보인다.
인도인다운 능청스러움과 조화로움, 자연스러움 등을 접할 기회도 많이 만날 수 있다.
인문지리서이면서 역사서, 그리고 그림책이기도 한 독특한 책과의 만남!
세로 읽기의 압박만 뺀다면 참 멋진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