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낯선 삶의 방식이었다. 당연하게 학교를 가고 졸업을 하고 그 다음 수순을 밟지 않는 아이.

왜 공부를 하는가, 왜 제도권 아래 안주해야 하는가, 먹고 사는 일에만 집착하고 사는 것이 마땅한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주인공들.

참으로, 낯선 모습이었다. 고민해야 마땅한 일임에도 우리네 교육 현실에서 생활 환경에서, 그런 고민을 하는 아이는 '4차원'에 속했다. 그런 고민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살아왔다. 때문에, 보다 자유로운 이들 영혼을 보고 있자니 슬며시 부럽기도 하고 어쩐지 화가 좀 나기도 했다.

작품의 진행 방식이 독특했다. 시작 부분에서 베트남전에 파병되기 직전의 준이가 잠시 외박을 나가서, 엄마와 동생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고, 그리고 오래 전 헤어진 연인을 찾는 대목들이 이어지는데, 그 사이사이 추억의 갈피들은 모두 뒷 내용에서 채워지고 보완되는 '맛보기'로 등장한다. 게다가 주인공 준과 다른 친구들 각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이 교차하는 형식은 아주 드물지는 않지만 또 아주 흔한 것도 아니기에 적당히 신선함을 보여준다.

아마도 작가 황석영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해방 전에 태어나서 6.25 전쟁을 겪고, 다시 고등학교 때는 4.19를 몸소 체험했던 역사적인 피가 소설가 자신에게 흐르고 있다. 전에 무릎팍 도사에 나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가는 곳마다 어떤 큼직한 사건에 꼭꼭 노출되었다고 한다. 방금 말한 전쟁, 4.19가 그랬고 베트남전, LA폭동, 영국 테러 사건 등등등... 운명적으로 그렇게 정해진 것인지, 작가 자신의 뜨거운 피가 그렇게 사건을 만들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책의 제목처럼 역사는 한 번도 그를 비켜간 적이 없었다. 그에게 자유로운 영혼과 도전, 그리고 남다른 각오가 없었더라면 그 시대를 감당하며 살기 힘들었을 것이고, 우리는 시대를 대표하는 명 소설가 한 명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 준의 남다른 방랑벽. 거의 역마살 수준이었다. 학교 수업을 빠지고 산으로 돌아다녔고, 한 달씩 남도 여행을 다니고,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산사에 들어가 수행을 하지 않나 고기잡이 배를 타지 않나 공사장에서 일을 하지 않나, 같은 나이 대의 다른 소년, 청소년, 청년들이 경험하지 못한 길로만 부러 다니는 듯 인생 여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주인공 준은 특별히 사회 문제에 열을 올려서도 아니고, 여자에 관심을 갖지도 않았고, 오로지 본인...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했다. 실상, 근원적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바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시대의 작가가 탄생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 기나긴 시간 동안 한결같은 기다림으로 자식을 애타게 바라보았을 그 어머니를 생각하면 상당히 불효자였다는 건 명백해 보인다. 심지어 자살 소동도 벌이지 않는가.

딱 부러지는 이유 없이도 방황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자아의 신화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이고, 충동적으로 치기어린 마음에 자살 소동까지 벌일 수 있다고 치자. 불가능한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심적으로 크게 공감이 안 간다. 내가 그런 삶을 살아보지 못해서라기 보다 일반적인 관점으로 지극히 비상식적이지 않은가? 가출, 여행까진 괜찮은데, 그래 출가해서 스님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부분도 괜찮아 보이는데, 자살 소동까지 가버리니 이건 참 갑갑해지는 심정이랄까. 그냥 '남다른' 그 감성 탓이라고 보기엔 저지른 짓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목숨이란 그저 자신만의 것이 아닌, 가족과의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더 익숙한 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예인 한 명이 자살을 해도 그 노출된 삶의 단면 때문에 제3자들이 안타까워 하는 법인데, 하물며 자식과 형제의 죽음이란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지만, 내가 불편했다고 해서 준이가 보여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가치 없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새벽 여명 찬란히 빛나던 순간 '샛별'이라고 불리던 별이, 서쪽 하늘 초승달 옆에서 초라하게 떴을 때 '개밥바라기'로 불린다고 해서 그 별이 샛별이 아닌 것은 아니니까. 결국 우린 모두 자신만의 샛별, 지금 당장은 개밥바라기로 보이는 그런 별들을 품고 있다. 그 별을 바라보는 관점과 비추어 내는 강도는 모두가 다르다 할지라도.

준이의 어머니가 준이가 쓴 원고를 불태우고 난 뒤 했던 말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책을 쓴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제 팔자를 남에게 다 내주는 일이란다.

 
   

작가가 고심하여, 고혈을 짜내어 탄생시긴 소설들에는 작가의 기억과 추억과 창작 의지와 그밖의 모든 에너지가 녹아 있을 것이다. 그 안에 진하게 녹아 있는 자신의 팔자를 끄집어 내어 독자에게 보여주기. 숭고하고도 처절하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작가 황석영의 삶을 우리는 대강 눈치채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나와의 궁합은 그닥 찰떡이 아니었지만, 이런 소설-게다가 청소년 소설, 게다가 작가의 소년기 모습이 녹아 있는-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거장'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정진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주인공 준이가 보여준 진지한 고민과 칼날 위를 걷는 듯한 위태로움을 함께 읽어본다. 우리는 다만 지켜볼 뿐이지만 격려의 박수를 늘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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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2-18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리데기에 좀 실망해서 이 책은 안 보고 싶었는데~ 줄줄이 있는 우리집 청소년을 위해서 사야 되나~ ^^

마노아 2008-12-18 10:40   좋아요 0 | URL
전 바리데기가 좀 더 나았던 것 같아요. 거장이라고 불리는데 읽은 책이 고작 두 권이라는 게 미안해서 며칠 전에 중고샵에서 객지를 건졌어요. 읽으려면 시간은 좀 걸릴 테지만요^^

다락방 2008-12-1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장이라고 불리는데 읽은 책이 고작 한권인걸요, 전. ^^;;

마노아 2008-12-19 19:49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포함해서 두 권이에요^^ㅎㅎ
이번 2008책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1등하고 있길래 당황스러웠어요. 요거랑 하악하악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