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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ㅣ 미래그림책 33
데이비드 위스너 글 그림, 이지유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5년 3월
구판절판
데이비드 위스너의 책들은 글 없이 그림만으로도 무한대의 상상력과 감동을 주는 멋이 있었다.
이 책은 내가 본 책 중에는 드물게 글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집이 날아가고 나무가 뿌리 채 뽑힐 만큼의 돌풍이 부는 일이 거의 없지만,
미국에선 허리케인이 좀 더 귀에 익은 단어일 것이다. 우리로 치면 태풍같은 느낌일까?
하늘도 캄캄하고, 온갖 것들이 둥둥 떠다니는 바람 부는 날.
아이들 둘은 그저 신기한 게 많을 뿐이다.
정전이 되어서 초를 켜둔 상태.
아이들은 바깥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몹시 궁금했다.
그렇지만 당장 나가볼 수는 없는 일.
내일 아침을 기대해볼 수밖에.
아니나다를까!
커다란 느릅나무 두 그루 중 한 그루가 뿌리채 뽑혀서 마당 한 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하마트면 옆집 윌버 아저씨네 집을 부술 뻔한 느릅나무.
정말 거대하다.
저 큰 나무를 쓰르뜨린 바람도 대단대단!
아이들은 놀라움과 걱정 대신 신나는 놀이부터 생각해 버린다.
이 우거진 나무와 뿌리를 보며 이곳을 '정글'이라고 생각해 버린 것!
두 아이는 탐험대를 이끌고 정글 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용사가 되어 있다.
코끼리 부대를 보니 한니발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 한니발인데, 설마 그 때문???
아이들은 무시무시한 표범을 나뭇 가지 하나만으로 물리칠 수 있는 용사 중의 용사!
저 멀리 만년설이 쌓인 곳은 설마 킬리만자로????
정글에 가 보았으니 바다를 못 가볼까!
바다 괴물이 나타나도, 해적이 출몰해도 무서울 게 없다.
아이들은 용사 중의 용사니까!
저 바다괴물은 어디서 유래한 형상일까? 해저 2만리? 15소년 표류기? (15소년 표류기에 바다 괴물이 나오던가? ㅡ.ㅡ;;;;)
그래. 정글과 바다를 가보았는데, 우주를 못 갈 이유가 없다.
아이들은 달나라에도 가보고 외계인과도 조우한다.
뜬금 없지만, 어저께가 달과 지구 사이가 가장 가까워져서 평소보다 30% 더 밝았다고 하던데, 정말 어제 뜬 달은 엄청 크고 밝더라! 보았으니 다행이지 못 보았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렇듯 쓰러진 큰 느릅나무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는데, 이들의 비밀스런 꿈을 펼치는데 방해자가 나타났으니......
바로 이웃집에서 쓰러진 나무를 베어서 치워버린 것.
이럴 수가! 아이들의 커다란, 너무도 근사한 놀이터가 사라져 버렸다.
크게 실망하는 아이들.
이제 아이들의 눈초리는 옆으로 옮겨간다.
그 무서운 폭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하나 남은 느릅나무!
제발 다음 번엔 우리집 마당으로 쓰러지길 바라는 아이들의 기막힌 속내!
느릅나무도 쓰러지는 걸 원치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웃집 아저씨네보다는 이들 몽상가들에게로 넘어가는 게 더 나을 테지?
그나저나, 아이들 옆에 자리한 나무들이 원근법 탓인가. 엄청 작아보인다.
때마침 비구름이 몰려오고 하늘은 컴컴해지고 있다.
아빠는 폭풍이 오고 있다고 어여 들어오라고 소리 치신다.
아이들은 덩달아 신이 나는 순간!
다음 장에선 한니발이 창 밖 풍경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유리 창 너머 놀라운 세계가 비쳐지고 있다.
아이들이 바라보고 노는 이 세상과 다른 그 무엇을 한니발은 보고 있는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글이 없는 그림책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해서 더 매력적이지만, 이 책에도 데이비드 위스너 특유의 상상력은 맘껏 묻어 있다. 내가 칼데콧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그리고 번역도 하시고 해설도 곁들이시는 이지유씨 책도 너무 좋다. 쌩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