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품절


이후 나이를 먹어 어느 순간부터 내 비겁함과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게 되고 마침내 그걸 넘어설 수 있게 되면서, 이제는 그때 일이 고맙다. 그로 인해 내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그 경계의 일부를 파악하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내가 누군지 알게 되는 첫걸음을 떼게 되었으니까. 선택은 언제나 자신을 드러낸다. 선택이 곧 자신이란 말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은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가장 먼저 경험하게 되는 법이다.-136쪽

당신이 당신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실제 당신은 딱 그 선택의 정도만큼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람인 거다. 자신은 그렇게 자기선택의 누적분이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인한 비용과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겠다면, 자신이 그 정도로 비겁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란 걸 스스로 인정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감수할 의사와 용기가 있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나쁜 인간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겁하고 이기적이지 않은 인간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그러나 그런 선택에 마땅히 따르는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는 자, 부지기수다. 핑계를 찾고 이유를 찾는다. 자신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결정적 차이는 거기서 만들어진다. 그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갖가지 거짓과 사기는 결국 다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좀먹는다. 비겁하고 이기적이면서 스스로 그걸 인정하지 않을 때 진정한 피해는, 그렇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입게 된다.-138쪽

이 땅에서 이기적이란 판정은 곧 패배를 뜻한다. 해서 파업의 전위에는 항상 '민주'나 '인권'이 선다. 그러나. 그래 봐야 공격은 어김 없이 후방에 엄폐해둔 '정당한' 이기심에 곡사로 쏟아진다. 파업과 이기주의는 그렇게 도의어다. 그래서 더욱 죽어라 '민주'와 '인권'에 매달려본다. 하지만 소용없다. 서로 숨기고, 간파하는 지점이 뻔하다.

종교의 구속력은 그 목표의 도달 불가능성에서 기인한다. 누구도 거기 도달할 수가 없다. 모두가 죄인인 것이다. 그렇게 율법을 어기지 않는 자가 존재할 수 없어야, 종교가 산다. 많은 종교가 그렇게 돌아간다. 종교의 음모다. 우린 이기적인 건 곧 죄악이라 믿도록 훈육되었다. 하지만 이기심은 모든 생명의 존재 원리다. 배타적으로 삼투압하지 않는 나무는 말라 죽는다. 여기까진 기본이다. 사실은 어느 누구도 '이기적이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기심은 우리 모두의 원죄가 된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돌아간다. 이건 정치의 음모다.-143쪽

이기적 권리가 충돌할 때 그 갈등을 해결하라고 있는 게, 정치다. 이기적 욕구는 당연히 기본이라 인정하고 그로 인한 갈등을 어떻게 조절해 질서를 조직하느냐 고민하기보다, 욕구 그 자체를 공격해 전체의 자유도를 관제하는 방식, 이 근본주의적 통제 방식이 바로 우리 정치의 발명품이다. 중재의 수고를 덜고, 혹여 실패하는 무능을 은폐하기 위한. 우리의 그 분은 그렇게 오신 게다.

자신이 이기적이란 사실 자체를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기심은 존재의 기본 권리다. 문제는 이기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과연 어디서 그 한계를 긋느냐 하는 거다. 그 한계선을 이어 붙이면 그게 곧 자신이다. -144쪽

남을 기쁘게 하는 데 자기 인생을 다 쓰고 만다는 건, 멍청한 걸 넘어 슬픈 일이다. 그러니 거절하는 걸 두려워 마시라. 그 공포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것처럼 삶의 낭비도 없다. -155쪽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리스크가 따른다. 모든 선택에 따른 위험부담을 제로로 만들어달라고 한다면 그건 삶에 대한 응석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선택의 이유다. 나머지는 그 이유를 붙들고 감당하는 거다. 스스로 설득될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보고,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럼 누가 뭐라고 하든 그 결과까지 자신이 감당하는 것, 그게 어른의 선택이다. -158쪽

양아치. 그들은 우선 욕망에 솔직하다. 사회는 개인의 욕망을 품위 있게 포장하고 조율하기 위해 오랜 세월 나름의 예법과 규범을 개발해왔다. 양아치는 이런 사회적 관례에 무심하다. 그래서 품위가 없다. 그러나 격식 대신 욕망을 선택한 양아치는 그 덕에, 이 땅 특유의 뒤틀린 도덕적 이중 잣대에 오랫동안 짓눌려왔던 대다수의 민간인들보다, 정신과적 차원에서 건강하다. 민간인들의 환호는 그러니까 그런 파격에 대한 카타르시스인 게다.

또한 양아치는 비장하지 않다. 비장하면 양아치가 아니다. 일상의 안위와 개인의 행복을 맨 앞에 높는 그들은 본질적으로 소시민이다. 너는 민족 중흥을 '위해서'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이라고, 무섭게도 내 탄생의 목적을 못 박아주는 국가 앞에 '공익과 질서'를 지키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반공정신이 투철한' '근면한 국민'이 되겠다고 선언해야 했던 과거의 민간인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그냥 태어났고 그냥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기 뜻대로 산다. 그들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 안 띠고 태어났단 말이다. 제 인생의 주인인 것이다.-163쪽

그리고 양아치는 독립군이다. 양아치는 조직폭력배가 못 된다. 폭력을 못 해서가 아니라 조직을 못 해서다. 양아치가 조직을 한느 순간부터 그들은 이미 양아치가 아니다. 상명하달, 지배와 피지배를 기본 원리로 하는 조직에 무조건 충성하고 그 조직의 권위를 빌려서야 자존을 형성하고, 자신을 조직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고서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아내는 집단 정체성의 조폭보다는, 그렇게 철저히 개인으로 남는 양아치가 훨씬 더 근대적 자아에 가깝다.

한 방향으로 기울어져서 가던 차는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충분히 틀어야 비로소 바로 간다. 충분히 엄숙하고 충분히 집단적이며 충분히 도덕적인 당신, 이제 양아치가 돼라. 개인과 조직 사이에서 갈등할 때,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언제나 그렇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비장하지 않은 독립군인 채로, 당신 자신이어야 한다. 그렇게 독립된 개채로서의 자각 없이는 개인의 자존도 없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양아치가 돼라.-164쪽

사실 당신만 그러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선택을 못 하는 진짜 이유는 답을 몰라서가 아니니까. 그에 따르는 비용을 지불하기 싫어서니까. -185쪽

자신을 가장 오해하는 자가 누구냐. 바로 자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자기만 자기라고 생각하고, 나머지 자기는 외면하거나 모른 척한다. 때론 남들은 다 아는, 명백히 나쁜 자기도 여러 방어기제를 동원해 부정해버린다.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데 자기만 자기가 그러는 줄 모르는 거지.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산다.
그런데 당신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을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직접 대면하려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큰 용기다. 그런 자만이 자신이 실제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지 알게 된다. 자신에 대한 오해가 없어지는 거다. 그런 오해가 사라지고 나면, 그렇게 자신의 경계를 파악하고 나면, 쓸데없는 자기비하나 턱없는 과대평가는 더 이상 않게 된다. 그저 생겨먹은 대로의 자신으로 살기 시작한다. -204쪽

이 세상에서 제일 바보가 해보고 싶은 게 명백하게 있는데 그걸 시도조차 안 해보고 접는 거야. 몰라서 못 하면 할 수 없지. 근데 당신은 알잖아. 그 자체가 행운이야. 자기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거든. 당신 690년쯤 살 건가. 22세기에 한번 시도해보려고? 어차피 앞으로 한 50년 살면 기력 떨어져요. 기력 있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도전해봐야지. 아직 20대에 불과한데 괴로운 걸 왜 억지로 하고 앉았어. 해보고 싶은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국에. 왜 사나. 행복하려고 사는 거잖아. 불행하면 관두는 거야. 대신 가이드가 당신한테 무한한 행복만 가져다줄 거라곤 기대하지 마. 그런 건 없으니까. 세상에 좋기만 한 건 없잖아. 그건 당신도 알지? 가이드가 재미없으면 또 다른 거 하는 거지 뭐. 직업 하나만 가지고 평생 사는 거 그거 요즘은 자랑 아냐. 겁내지 마. 질러.-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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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10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양아치를 무소속 주먹이라고 했지요.

마노아 2008-12-10 21:26   좋아요 0 | URL
여하튼 '무소속'은 맞군요. 굿바이 솔로의 이재룡이 떠올랐어요.

비로그인 2008-12-11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소속 주먹, 너무 재밌는 표현이네요 ㅅㅅ

마노아 2008-12-11 08:19   좋아요 0 | URL
창의력이 넘치는 표현이었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