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아테네 올림픽 때다. 우리 리포터가 풍물취재로 한 어부를 인터뷰했다. 잡은 생선 중 크고 좋은 놈들 따로 놓는 걸 보고 리포터는 당연하다는 듯 이쪽 상등품은 팔 거냐고 묻자, 어부는 무슨 소리냔 표정으로 먹을 거란다. 왜 값을 더 쳐줄 물건을 팔지 않냐 하자 나머지 판 돈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단다. 좋은 놈들은 와이프랑 먹을 거란다. 행복관이 판이한 게다. 이런 어부, 우리나라엔 없다. 왜. 우린 그렇게 배우질 않는다. 스웨덴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인간은 소유욕과 존재욕구를 가지는데 소유욕은 경제적 욕망을, 존재 욕구는 인간과 인간이,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의지를 뜻한다고. 그런데 그 존재 욕구를 희생해 소유욕을 충족시키는 건 병적 사회라고. 공교육이 처음 가르치는 게 그런 거다. 사회 시스템 역시 그 가치관에 기초해 구축되고.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건 그렇게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그 기본 태도에 관한 입장이어야 한다. 우린 그런 거 안 배운다. 대신 성공은 곧 돈이라는 거. 돈 없으면 무시당한다는 거. 그 경쟁에서의 낙오는 인생 실패를 의미한단 거. 그렇게 경제논리로 일관된 협박과 회유로 훈육된다.-13쪽
p.s. 행복에 이르는 방도의 가짓수가 적을수록 후진국이다. '747' 과업을 못 이룬 나라가 아니라. -15쪽
우리나라엔 남의 욕망에 복무하는 데 삶 전체를 다 쓰고 마는 사람들, 자기 공간은 텅텅 빈 사람들, 너무나 많다. 당신만의 노선을 찾고 그리고 거기서 자존감, 되찾으시라.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쉽지도 않다. 하지만 그 길은 당신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 다만, 결코 친절해지진 말라는 거. 오히려 이제부턴 차근차근,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라는 거. 남의 기대를 저버린다고 당신, 하찮은 사람 되는 거 아니다. 반대다. 그렇게 제 욕망의 주인이 되시라. 어느 날, 삶의 자유가, 당신 것이 될지니.
p.s.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땐,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다.
-25쪽
자존감이란 그런 거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부족하고 결핍되고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다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거. 그 지점에 도달한 후엔 더 이상 타인에게 날 입증하기 위해 쓸데없는 힘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누구의 승인도 기다리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고, 재밌어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다른 사람 역시 어떤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만약 내가 서울대를 갔더라면 분명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가치 중 겨우 공부 하나 잘하는 걸 가지고 스스로 존재 자체가 우월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린 시절의 편협하고 유치한 멘탈리티, 그걸 결코 내려놓지 못했을 게다. 그리고 거기에 걸맞은 삶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위해 내 인생 대부분을 소비하고 살았을 게다. 그렇게 누구의 기대도 저버리지 못했을 게다.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건 내 존재의 우월함을 스스로 저버리는 거라 여겼을 테니까. -28쪽
난 이제 자신이 온전히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된다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지 안다. 그래서 이제 누구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 없이는, 평생을, 남의 기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쓰고 만다. 단 한 번밖에 없는 삶에 그만한 낭비도 없다.
p.s. 그해 여름, 난 <딴지일보>를 창간했다. -29쪽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는 능력, 그렇게 세상을 보편타당한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을 우린 지성이라고 한다. 역시 언제나 문제는 '지능'이 아니라 '지성'인 것이다. -37쪽
공부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 된다? 거짓말이다. 우리나라 공교육 열심히 따라가면 시험 잘 치는 사람 된다. 그럼 시험 잘 치면 훌륭한 사람 되나? 아니다. 시험 잘 치면 점수 잘 나온다. 하지만 점수와 훌륭한 사람과의 상관관계, 없다. 그럼 판검사나 의사들은 다 훌륭하시게? 단, 점수 높으면 연봉 높을 확률,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또 아니다. 돈 버는 능력과 공부 능력, 별개다. 그럼 왜 어른들이 공부 공부 하나. 불안해서. 공부 외에 어떻게 훌륭한 사람 되는 건지 어른들도 모르니까.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지, 어른들 모른다. 물론 공부 잘하면 좋다. 유용하다. 하지만 공부와 훌륭한 사람, 관계없다. -43쪽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한 우물을 파라? 아니다. 떡잎만 봐선 모른다. 떡잎은커녕 나이 서른 넘어도 몰라. 우리 공교육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사유하고 각성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공교육 바로 그거 하라고 있는 건데. 하여 우리나라엔 대학 졸업하고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원하는 게 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 우물을 파. 그러니 호기심 가고 궁금한 건 뭐든 닥치는 대로 덤벼들 보시라. 인생 790년 못 산다. 하고 싶은 건 겁먹지 말고 다 해봐. -44쪽
영어는 도구다. 어른들은 영어를 신분의 표식, 능력의 징표로 여겼기 때문에 자기 열등감에 그렇게들 영어, 영어 하는 거다. 다시 말하는데 영어는 도구다. 취미 맞으면 하고 안 맞으면 그냥 다른 과목처럼만 해. 그래도 된다.
사랑의 매? 그런 거 없다. 매는 그냥 매다. 악법도 법이다? 아냐. 악법, 바꿔야 한다. 악법 만나면 싸워. 시민불복종 공부하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노. 하나 보면 하나 안다. 사람 속단하는 거 아니다. 남자는 군대 가야 사람 된다? 천만에. 가야 하니까 가는 거야.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 핑계다.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 구축하라고 국가 있다.
동방예의지국, 이건 우리 조상들이 공물 상납 잘하고 종주국 예우 잘했다는 중국인들 칭찬이다. 뭐 자랑스러울 거 없다. -45쪽
미래란, 애초, 불안한 거다. 누구도, 모르니까. 그 공포가 금융시스템 탄생의 주역이다. 그거 통제코자 저금하고 펀드 사고 보험 든다. 당장의 즐거움 중 일부는, 그렇게 이자율과 수익률로 계량되어, 유보된다. 차후 인출될 현금으로 그 희열, 보상받으리라 믿으며. 그렇다면, 그 쾌락 중 과연 얼마를 털어, 예치할 것인가. 이 교환가치의 개인적 기준을 관장하는 게, 바로 세계관이다. 당신과 남친은 이게, 안 맞는 거고. 당신 믿음과는 다르게, 여기에, 옳고 그르고, 없다. 근검절약에 의한 부의 축적을 신의 축복으로 환산해 낸 칼뱅 자본주의는, 절묘하긴 하나, 절대적인 거 아니다. 사표 내고 전세 털어 세계일주 하는 커플들, 삶에 무책임해 그러는 게 아니라고. -48쪽
자기 선택이 곧 자신이란 거, 이거, 사실, 곧이곧대로, 수용키 어렵다. 누구나 야비하고 몰염치하고 이기적이며 부도덕한 선택, 한다. 그리고 그런 선택 뒤 대다수는 사연부터 구한다. 그 선택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그리고 그 속에 숨는다. 그리고 공감해줄 사람 찾는다. 피치 못 할 사연 있었단 거지. 자긴 원래 그런 사람 아니란 거지. 그런데. 아름답지 않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기 객관화의 임계점이란 게 있다. 그랬으면 하는 자기가 아니라 생겨 먹은 대로의 자신을, 덤덤하게,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순간 있다. 자신이 멋지지 않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서 멋질 수는 결코 없는 법이란 걸 깨닫는. 이거 절로 안 온다. 도달해야 한다. 그러자면 대단한 분량의 용기가 지성과 함께 요구된다.
3. 모든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감당하는 거다. 사람들 선택 앞에서 고민하는 진짜 이유는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선택으로 말미암은 비용을, 치르기 싫어서다. 당신은 그 관계로써 이젠 정숙한 아내, 윤리적 엄마가 아니다, 란 사실 감당하기 싫다. 그로 인한 죄의식, 불안 비용도 싫다. 반대 선택도 마찬가지다. 설레는 가슴, 정서적 충만, 격정적 사랑 잃고 건조한 결혼,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싫다. 둘 다 갖고 싶다. 선택하기 싫은 거다. 하지만. 공짜는 없다. 우주 원리다. 뉴턴은 이걸 작용, 반작용이라 했다. 근데. 이 말 가만 뒤집어 보면, 비용 지불한 건, 온전히, 자기 거란 소리다. 이 대목이, 포인트다. 공짜가 아니었잖아.
4. 내 결론은 그렇다. 자기 선택과 그 결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로 인한 비용 감당하겠다면, 그렇다면, 그 지점부터, 세상 누구 말도 들을 필요 없다. 다 조까라 그래. 타인 규범이 당신 삶에 우선할 수 없다. 당신, 생겨 먹은 대로 사시라. 그래도 된다.
-54쪽
자기객관화란 입체의 연속된 공간 속에서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스스로 인지하는 거다. 그리고 그렇기에 거기 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여행이다. 세계 속에 연결되어 존재하는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오감으로 직감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일정 거리 이상이 확보되어야 제 모습 전체가 조감되는 법이니까. 그러기 위해 우리 땅의 물리적 연결이 필요하다.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평양 거쳐 모스크바 지나 파리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전쟁 끝난 지 50년이 넘었다. 싸우다 말고 50년씩 쉬는 전쟁, 인류 역사에 없다. 이거 휴전 아니다. 종전이다. 미국, 이거 50년째 안 하고 있다. 전쟁이 일시 중지 상태인ㅇ 건 전쟁이 거대한 비지니스 모델인 자들에게나 짭짤하다. 맥아더, 벌써 40년 전에 죽었다. 이제, 땅을, 연결하자. 그게 진짜 세계화다.-57쪽
당신이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은 어디까진가.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럼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거다.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건 삶에 대한 응석에 불과하다.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가 아니라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꿈을 말하며 용돈 타서 쓴다는 당신,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수입 적으면 적게 쓰라. 없으면 자신이 번 만큼만 쓰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위의 세 가지 질문에 냉정하게 답한 후 '꿈'을 말해도 말하시라. 그런 질문 생략하고 그저 꿈만 말한다면, 그 단어 뒤에 숨어 부모한테 얹혀사는 팔자 좋은 놈팽이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꿈은 목표이지 핑계일 수 없다. -65쪽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냥 그 일을 하는 거다. 실패를 준비하며 핑계를 마련해두는 데 에너지를 쓸 게 아니라. 토 달지 말고, 그냥, 그 일을 하는 거, 그게 그 일을 가장 제대로 하는 법이다. 그런다고 하고 싶은 대로 다 되느냐.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겠나. 도리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거지. 하지만 해보지도 않는데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알겠나. 하지도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되길 바라는 건 멍청한 게 아니라 불쌍한 거다. 자기 인생에 스스로 사기 치는 거라고. 그리하여 난 꿈을 말하는 대신 이렇게 외쳐야 한다고 믿는다. "하면, 된다! 아님 말고."-67쪽
다행히 여행이 선사한 선과 색과 면의 세례를 나도 모르게 받아, 운 좋게도 몇 마디 더듬거릴 줄은 알게 된 난 이제, 돈 많이 버는 것보다, 비싼 집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제 나름의 고유한 스타일을 가지는 거라 믿는다. 그게 없는 사람은 도무지 섹시하지가 않다. -76쪽
더치페이가 결코 나쁜 건 아니지만 동시에 이걸 기억해둘 필요 있겠다. 딱 반이 항상 가장 공평한 건 아니라는 거. 사실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렇다. -81쪽
은퇴는 30대부터 대비해야 한다......
그렇게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어차피 다가올 시간을 위해 유보해버린다는 사고방식도 매력적이지 않지만, 나이를 먹으면 나이를 먹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이 또 따로 존재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사고방식은 노년이란 젊었을 때 모아둔 연금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퇴물이 되는 게 당연한 순리라고, 아예 사회적으로 못 박아버리는 것 같다는 거다. 물론 체력도 지력도 따라주지 않아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젊었을 때부터 미리 그런 상황만을 준비한다는 게 나로선 마뜩지 않다. 30대에 하고 싶은 것의 리스트가 있는데 70대에 하고 싶은 것 리스트가 없으란 법이 어디 있는가. -82쪽
테이블은 서너 개만 둘 것이며 부자 되자고 하는 건 아니니 가격은 딱 식당 돌아갈 만큼만 책정한다. 그러니 손님은 그냥 내가 준비한 걸 먹거나 아니면 꺼지거나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들끼리 밥만 처먹는 것들은 퇴장이다. 오면 당연히 대화에 동참해야 한다. 조선일보를 칭송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대화 내용에 문제 있어도 바로 퇴장이다. 그렇게 취향과 세계관이 비슷한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떠들며 늙어가고 싶다. 이 식당을 위해 난 50대부터 요리를 배울 생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요리 학원 3개월 다녀 배우는 게 아니라 살면서 두 달에 하나씩 일년에 다섯 가지 정도. 그렇게 50대 내내 요리를 배울 생각이다. 그리고 그 모든 걸 한 사람의 동업자와 하고 싶다. 서빙을 내가 하면 요리를 그가 하고 요리를 내가 하면 서빙을 그가 하는. 따로 설명이나 지시 필요 없고 이윤과 역할 때문에 다투는 법 없는, 그런 동업 한 사람과 인생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 인생 전체를 털어서 그런 동업자 한 사람, 그 나이에 남길 수 있다면, 그럼 성공한 삶이 아니겠나 싶다.-84쪽
부모를 바꾸려는 모든 시도는, 그것이 논리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방식 자체를 부정하란 것으로 여겨지기에, 실패한다. 설득 대신 한겨레 구독해 우편으로 보내드리시라. 거기까지가, 예의다. 그리고 그 문제로 당신들끼리 싸우지 마시라. 슬프다. 대신 당신들 다음 세대에게는 이 유산, 절대로, 물려주지 않겠다는 걸로 매듭지으시라. 나쁜 것의 가장 나쁜 점은 유전된다는 거니까.
p.s. 조선일보, 편파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편파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하지 않기에, 나쁘다.-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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