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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 - 빨강머리 앤 100주년 공식 기념판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빨강머리 앤에게 늘 호의를 갖고 있긴 했지만 일상적으로 늘 유지되는 애정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100주년 기념판이 짠하고 나왔을 때는, 너무도 갖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앤을 다시 만나지 못하면 갑자기 내가 막 불행해질 것처럼.
다행히 빨강머리 앤은 나와 만나주었다. 아주 반갑게!
빨강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를 먼저 읽고, 이어서 빨강 머리 앤을 읽었다. 아주 어릴 적에 읽었던 그 앤이 접혀졌던 기억을 바로 세우며 다시 기지개를 켰다.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생기발랄한 그 모습 그대로. 그렇지만 앤은 순수함으로 상징되던 그 어린애로 남아 있지 않았다. 작품을 읽는 동안 앤은 성장했다. 몸만 자랄 뿐 아니라, 마음의 크기가, 정신의 세계가, 넓고 아득해졌다. 그 앤을 바라보는 사람도 함께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행복 바이러스를 퍼트리면서. 그녀에게 '빨강머리'라는 다시 없을 멋진 별명이 없었더라면 꿈 전도사, 행복 전달자 등의 이름으로 불렸어도 좋으련만.
프린스에드워드 섬에 발을 들여놓은 앤. 매슈와 마릴라가 원했던 남자아이가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그 섬에서 그렇게 조우하라고 운명지어진 것처럼 앤은 그곳 초록 집의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역시 운명처럼 그곳 에이번 리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앤의 주변에 펼쳐진 모든 것들은 원래 이름이 없었다는 듯 새롭게 이름을 지어 받게 되었고, 그 순간 더 큰 '의미'가 되었다. 김춘수의 '꽃'처럼.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지나간 시간에 대한 많은 후회를 간직하게 된다. 그때 이랬어야 했는데,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는 중얼거림. 좀 더 이성적이지 못했던, 혹은 좀 더 감정에 충직하지 못했던 것들. 글쎄. 둘 다 후회스럽긴 하지만 내 경우 감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들, 내 본능을 진작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에 더 큰 아쉬움을 갖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앤은 참 부러운 존재다. 마음에 떠오른 생각을 모두 입으로 표현해 내는 아이. 그게 지나쳐 실수도 많고 실례를 할 때도 있지만, 거기에 가식이 없고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는 적극적 의지가 더해져 결코 앤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마음 속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 버리는 데에도 사실은 용기가 필요한데, 앤은 마치 그런 유전자를 이미 갖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기만 하다. 아, 정말 네가 부럽구나!
밑줄긋기를 들여다 보면, 거의가 앤이 했던 대사들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봄부터 겨울까지, 온통 지치지 않는 생명력에 취해 있는 앤. 아침은 아침이어서 행복하고, 저녁은 저녁이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10월이 있어서 행복한 것처럼 그 어떤 계절도 맘껏 사랑하는 앤. 아마 사막 한가운데, 남극 한 가운데에 놓여 있더라도 앤이라면 그 안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의 충만한 손길을 기꺼이 찾아낼 것이다. 감사할 줄 아는 그 마음과 입술의 고백이 아이의 앞날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거름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긍정적 마인드가 우리에게도 그런 길을 만들어 줄거란 기운을 한껏 북돋아 준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주는 멋진 선물 가운데 하나이기도.
행복도 분노도 모두 격정적으로 표현해 내는 앤 셜리. 그래서 글을 읽다 보면 아이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연상되는 표정들이 있다. 그러나 너무나 유명했던 애니메이션으로 인해 내 빈약한 상상력 속의 앤은 늘 이 얼굴이다. 다이애나와 함께.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lovecja0616)
다행히, 작품 속에서 앤과 앤의 가족, 친구들 모두를 원작의 느낌을 잘 살려서 상상력의 제한이 그리 나쁘지 않다. 아쉽기는 하여도.
다시 읽게 된 100주년 기념판에는 책 속 그림이 없었다. 표지 외에는 전혀. 표지의 꿈꾸는 앤의 모습이 그 자체로 예쁘긴 했지만, 내가 느낀 그 앤보다 너무 성숙하게 보여서 조금 낯설다. 그에 비해 빨강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의 표지 그림은 어린 앤이 들어가 있다. 앤이 초록 집에서 보낸 5년 이상의 시간이 이렇게 커다란 앤을 만들어 놓은 것일 텐데, 기억 속의 추억 속의 앤은 여전히 어리기만 하니 이 역시 고정관념일 것이다.
100년 전 캐나다에서의 이야기.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너무도 다르고 또 멀리 떨어진 이야기일진대, 그곳에도 당연히!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이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앤이 만들어 가는 세계와 우주는 그 시절에도 아름다웠지만 여전히 '명고전'으로 꼽힐 만큼 유효하다. 그렇지만 많이 다른 대한민국만의 '현실'이라는 괴리감은 읽으면서 부러움과 괴로움을 동반시켰다. 앤과 그녀의 친구들은 어린 시절을 맘껏 즐긴다. 자연과 더불어. 마음껏 상상하고 모험을 즐기고 무엇보다도 '논다'. 그리고 청소년으로 자라가면서 공부에 매진한다.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선의의 경쟁을. 우리의 아이들이 집 학교 학원을 전전하며 공부를 원수보듯 하는 모습들과 논다는 게 뭔지도 모르고 즐길 줄도 모르는 어른으로 자라가는 모습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게 비극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빨강머리 앤을 배우라고 한다면 논술형으로 분석하게 되지 않을까.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시 앤에게로 돌아가자. 앤은 어릴 적부터 주변의 공기를 변하게 해주는 존재였다. 앤을 만난 사람들은 앤에게서 빛이 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의 앤은 주근깨 투성이에 빼빼 마른 몸, 게다가 타오르는 붉은 머리로 인해 자신의 외모에 지나칠 만큼 컴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앤에게서 남들과 구별되는 특별함을 발견하곤 했다. 그건 그 싱싱한 에너지가 아니었을까. 사물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애정을 보여주고, 상상력의 힘을 빌어 일상을 아름답게 받아들이고,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열심히 해내는 앤. 어찌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엄하게 앤을 키워야 한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닥달하는 마릴라조차도 작은 앤이 이미 자라 버린 것에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게 되고, 너무 수줍음이 많아서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는 매슈조차도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던가. 물론, 앤이 받은 것 역시 셀 수 없을 만큼 컸다. 초록 지붕을 가진 아늑하고 멋진 집만 갖게 된 것이 아니라 돌아갈 '가족'과 '가정'을 얻지 않았던가. 비록 엄마나 아빠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주머니 아저씨라 불리는 그들이 이미 앤에게 엄마 아빠가 되어주었다. (두 사람은 남매이기 때문에 그 호칭들은 이미 무리였다.) 함께여서 서로에게 기쁨과 힘이 되어준 이들의 관계가 너무도 아름답다. 만일 마릴라가 잘못 오게 된 앤을 고아원으로 다시 보내버렸더라면 그들은 모두 이 기쁨을, 독자 역시 이런 행복한 만남을 갖게 되지 못했을 테지. 그걸 생각하면 몽고메리 작가에게 몹시 감사하게 된다. 전 세계의 모든 애독자들이 그럴 테지만.
무엇보다도 결말 부분이 가장 감동적이다. 이정표가 척척 가리켜주는 길이 아닌, 길모퉁이 모퉁이를 돌아 새 길을 개척해 내기로 결심한 용감한 앤. 장학금이 따라오는 대학교가 아닌 마릴라 아주머니와 함께 하는 초록 지붕을 택한 앤의 선택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다. 매슈 아저씨가 돌아가셨고 마릴라 아주머니는 실명 위기를 겪고 있는데, 앤이 원대한 포부를 안고 미래를 위해서 제 길만 고수하고 갔더라면, 그 앤은 우리가 아는 앤이 아닐 것이다. 길은 좁아졌고 선택의 폭은 더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앤은 오히려 더 넓은 세계로, 우주로 뻗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에이번리는 좀 더 앤을 원하고 있다. 그 마을의 사람들과 함께.
길버트와 마지막으로 화해를 하고서 끝이 나서 참으로 다행이다. 이미 앤의 속편으로 두 사람이 같은 아이들의 부모가 된다는 것도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둘 사이에서 흐르는 긴장감의 공기가 독자를 자주 아찔하게 만들었다. 5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했지만, 앞으로의 긴 시간을 함께 할 그들이니까 그조차도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두 권의 책을 다 합하면 1000페이지가 넘는데, 읽는 동안 지치지도 않았고 참으로 행복했다. 내 마음이, 내 영혼이 보다 충만해지는, 채워지는 느낌. 앤의 행복 바이러스에 기꺼이 감염되어 있지 않은가.
지난 주까지 내가 가보고 싶은 나라는 일본이었다. 딱히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가보고 싶었다. 어떤 열망처럼.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캐나다가 너무도 가보고 싶다. 프린스에드워드 섬에, 앤이 창작되어진 그곳 박물관에. 나같이 이런 소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전시회가 열리나보다.
앤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
(정보를 알려주신 책세상님께 감사를!)
전시 기간이 넉넉하니 이번 겨울에 좀 더 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좀 멀긴 하지만, 프린스에드워드 섬보다는 훨씬 가깝지 않은가!
요새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앤을 홍보하느라 바쁘다. 백주년 기념판이 얼마나 이쁜지, 앤의 새 책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이런 말은 원작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눈총을 받을 수가 있어서 안 하려고 했지만, 내 진심이니까 해야겠다.
이 책도 너무 재밌었지만, 난 '빨강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를 읽을 때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감동받았다. 그렇지만 그 책이 그렇게 훌륭하게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원작 빨강 머리 앤 덕분인 거니까 온전히 버지 윌슨의 영광은 아니다.
그리고 반드시 지적해야 할 것 하나! 이 책 빨강 머리 앤은, 오타가 너무 많다. 정말 무수히! 교열을 전혀 보지 않은 것인지? 오타와 비문 때문에 앤에게 빠져들 여지를 자꾸 빼앗긴 게 화가 난다. 다음 쇄를 찍을 때는 반드시 모두 다 찾아내서 수정하기를. 너무 많아서 일일이 옮길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 '대단한' 오점에도 이 책의 가치를 깎을 수는 없으니 기꺼이 별점은 다섯 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