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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 ㅣ 작은도서관 1
이금이 지음, 양상용 그림 / 푸른책들 / 2004년 1월
평점 :
이금이 선생님 글을 읽을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내가 현재 아이가 아니고 청소년도 아니니, 100% 그네들의 심정을 반영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내가 느끼기에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청소년들의 마음을 그대로 들여다보고 어루만질 줄 아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밤티마을'이란 이름의 시골 마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단어의 어감이 무척 좋다. 작품 속 배경처럼 넉넉하고 따스한 분위기의 마을일 게 분명하다.
밤티마을 큰돌이와 어린 누이 영미가 주인공이다. 큰돌이의 본명은 '대석'이지만, 모두들 큰돌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많이 놀려댔지만 선생님은 큰 돌의 쓰임새가 얼마나 많은지를 설명해 주며 이름에 주눅들 필요 없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내 이름에도 '석'자가 들어가는데, 어릴 때에(사실은 고등학교 때까지!) 놀림을 많이 받았다. 석자도 그렇지만 일단 남자 이름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내 이름의 석자는 돌 석이 아니기 때문에 너희들의 놀림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난 내 이름이 저녁 석인가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알고 보니 주석 석(錫)이었는데, 돌석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고서 얼마나 좌절했던지....;;;;;
하여간, 그 밤티마을 큰돌이는 어려운 형편의 평범한 아이다. 귀를 듣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술을 마시고 나면 아이들 야단치기 일쑤인 목수 아버지, 그리고 일곱 살 어린 여동생을 돌보면서 귀찮아 하기도 하고, 차비로 아이스크림을 사먹기도 하는 그런 아이다운 아이였다.
집 나간 엄마가 자신들을 데리러 와줄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큰돌이는, 그러나 엄마를 설득해서 한집에서 살 날을 또 꿈꾸고 있다. 그러한 큰돌이네 집에 변화가 생긴 것은 옆집 쑥골 할머니 때문이었다. 어려운 형편을 고려해서 아이 없는 부잣집에 아이를 보내자는 제안. 처음엔 큰돌이를 보내자고 했었는데, 알고 보니 보내지게 된 건 영미였다. 아들 대신 딸을 보낸 것이었을까, 더 어리니까 보낸 것이었을까. 둘 다 였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얼굴을 모르는 영미는 새로 만난 도시 집 말끔하고 예쁜 아주머니를 친엄마로 알고 바로 '엄마'로 새기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혼선이 빚어진다. 밤티마을에도 아빠가 계시고, 새로 살게 된 집에도 아빠가 계시다. '데려온 아이'인 영미가 천덕꾸러기가 될 여지가 이미 생겨버린 것.
큰돌이네 집에도 변화가 생긴다. 팥쥐 엄마가 생긴 것이다. 왜 팥쥐 엄마라고 부르는 지는 책 속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짐작으로도 가능하다. 그건 큰돌이가 콩쥐여서가 아니라, 큰돌이의 시각에 비친 새 엄마이기 때문.
작가는 새로운 가족 구성원 때문에 재구성된 가정의 변화를 세심하게 표현했다. 새엄마라고 해서 팥쥐 엄마형 계모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부잣집 사모님이라고 해서 정없고 싹수 없는 사람만 있지 않다는 것도 보여준다.
아버지의 대사가 워낙 적기 때문에 그 심성의 변화와 갈등은 잘 나타나지 않았지만, 팥쥐 엄마 덕분에 모처럼 쓸모있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여기게 된 할아버지의 짧은 등장은 꽤 인상 깊었다.
영미가 새 집에서 밤티마을을 그리워하며 장미를 따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그때 보여준 이웃집 아줌마의 그 몰상식한 행동은 인상을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 것도 그렇거니와 또 소문까지 내지 않았던가. 아이가 보인 평범치 않은 행동에 '이유'가 있다는 것을 물어봐주지 못한 그 좁은 마음이 뜨끔하다. 데려온 아이니까 본데 없이 자랐다고 생각한,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는 그 나름의 '낙인'이 무섭고 서늘하다. 모르는 사이, 우리는 그런 낙인을 찍으며 강요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작품 말미는 행복하고도 슬펐다. 누군가는 행복해지고 누군가는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었으니...
작품을 더 찾아보니, 2편 밤티 마을 영미네 집과 3편 밤티마을 봄이네 집이 더 있다. 봄이는 이 책에서 등장하지 않은 것을 보니 팥쥐 엄마가 낳은 아가가 아닐까 싶은데 내 예상이 맞는가보다.
94년도 작품이니 지금부터 10년도 더 된 이야기이건만 옛스럽지도 않고 감동이 빛바래지지도 않았다. 딱히 시간적 배경을 잡지 않아도 깊은 시골과 대조된 도시라는 배경만으로, 또 지극히 아이스러운 두 아이의 행동으로 독자는 작품을 이해하고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
푸른책들의 베스트 셀러일 이 책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내가 굳이 바라지 않더라도 작품의 힘으로 충분히 그러할 거라고 예상하지만. ^^
이러다가 나도 어느 님처럼 이금이 선생님 광팬이 될라... 유진과 유진과는 또 다른 감동과 따스함. 이금이 작가님 킹왕짱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