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쓴 일기 - 1학년 한 반 아이들이 쓴 일기 모음 보리 어린이 7
윤태규 / 보리 / 199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카의 연령대에 맞춰서 주로 4-6세용 동화를 많이 읽었다. 페이지가 짧아서 금방 읽으면서도 멋진 그림과 감동적인 글을 함께 만날 수 있는 멋진 독서였는데, 최근에는 초등 저학년용 글을 좀 찾아 읽게 되었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이 어떤 느낌인지 체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골라본 이 책은, 사실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쓴 글이라서 내가 찾던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생각하고 움직이는 활동 전경이 눈에 펼쳐져서 좋은 만남이 되었기에 반갑기 그지 없다.

책은 좀 오래되었다. 96년도에 대구 금포 초등학교 1학년 2반 아이들이 매일매일 쓴 일기를 담임 선생님께서 엮은 책인 것이다.

초등 1학년으로 아직 많이 어린 아이들이라 맞춤법도 많이 틀리고, 사투리도 많이 나오고 문장도 엉망이었지만 말 그대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제대로 경험할 수가 있다. 게다가 아이들도 날마다 일기를 쓰다 보니, 일년의 마무리 계절에 가니 몰라보게 실력이 늘어있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의 일기를 읽고 나서 아주 짧은 메시지를 달아주시는데, 일기의 소재가 될 수 있는 무한한 이야깃거리들을 축하(?)해 주고, 투정부리는 아이들에겐 일기를 씀으로 화해와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음을 일러주신다.  아주 가끔은 선생님의 일기도 등장하는데 아이들의 맑은 눈높이를 함께 맞추고 계심이 독자에게도 전해져 부러움과 감탄을 같이 자아내게 하신다.

책의 맨 마지막엔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과 학부모님께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아이들에겐,

정직하게 씁니다.
일깃감을 잘 골라 씁니다.
자세히 씁니다.
밤에 쓰지 않습니다.
글자를 잘 몰라도 아는 대로 씩씩하게 씁니다.

라고 일러주셨다. 여기서 자세히 쓰라는 대목이 눈에 띄었는데, 날씨를 예로 들자면, '맑음, 흐림, 비, 갬, 눈' 이렇게 쓸게 아니라, 바람이 불기도 하고 해가 떴다가 다시 구름이 끼는 날이 있다는 것을 자세히 표현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일기장은 너무 획일적이었던 듯하다. 똑같은 그림 일기, 똑같은 날씨 표현.

선생님과 학부모님에게 주는 당부는 더 구체적이다.

일기 쓰기로 국어 공부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일을 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길게 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잠자기 바로 전에 일기를 쓰게 하지 않았습니다.
생활을 반성하는 것이 일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이나 느낌을 넣어 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열 칸짜리 보통 공책에 쓰도록 했습니다.
일기장 내용을 두고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기를 숙제로 쓰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림 일기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부모님이 대신 써 주는 일이 없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어른부터 일기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의 일기장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일기는 어디까지나 사실을 적는 글이기 때문에 생각이나 느낌을 억지러 놓는다고 생각이 넓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 크게 공감이 갔다. 마찬가지로 꼭 교훈적이 되도록 반성의 의미를 넣도록 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림도 자기 표현이고 글도 자기 표현이니, 어린 아이라고 무조건 그림 일기로 시작하지 않게 하는 것도 신선했다. 아이들은 글로 표현하기 힘들면 이 책에서도 그림으로 그리곤 했는데, 그건 자기 마음에 내킬 때의 일이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림 일기'를 강조하지 않는 것이 놀랍고 신기했다.

나 역시 중학교 때 썼던 일기장은 지금도 소장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시절 커다란 그림 일기장은 갖고 있지 않다. 그것들도 갖고 있더라면 더 큰 추억의 상자가 됐을 텐데 말이다. 얼마전 2집 앨범을 낸 가수 이지형은 어릴 적 썼던 일기장의 내용을 다시 읽어보고서 가사의 영감을 얻어 'I need  your love'란 타이틀 곡을 썼다는데, 그렇게 시간 흘러 나에게 또 다른 느낌과 감동을 주는 커다란 선물이 될 수도 있으니, 일기쓰기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숙제가 아니라,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쓰는 기록. 멋지다. 근사하다!

요새 조카가 날마다 일기를 쓰고 있는데 이 책은 언니도 보라고 해야겠다. 나보다 더 즐겁게 읽지 않을까?

금년에는 박희정 일러스트 다이어리를 아주 예쁘게 썼다. 다만 두꺼워서 무겁기 때문에 고생은 좀 되었다. 내년에는 가볍고 얇은, 그러나 알찬 다이어리를 써야지! 예쁘고 가벼운 다이어리 아시는 분 소개 좀....(이 뜬금 없는 마무리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08-10-20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린이도 이제 일기쓰기를 시켜볼까 하고 있는데 딱 필요한 책이 될 듯하네요.
그런데 그림일기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정말 인상적이네요. 왜 그럴까요?

마노아 2008-10-20 01:19   좋아요 0 | URL
그림일기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고정관념인 것 같아요.
그림 그리는 것도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병행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
이 책엔 그림이 많진 않지만, 아이들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림을 종종 그리더라구요. ㅎㅎ

bookJourney 2008-10-20 08:27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말씀하시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제 경험으로 보면요,
그림일기로 시작을 하면, 일기에 부담을 적게 느낄 수 있어서 좋은 대신, 그림 그리기를 그닥 즐기지 않는 아이에게는 두 배의 부담을 주더라고요. 저희 아들 녀석이 바로 그런 경우였어요. 어느 날은 "엄마, 그림 안 그리고 글만 쓰면 안돼요?"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다른 책에서 보면,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 아이들은 그림 칸이 없어도 그림을 쓱쓱 그려넣기도 하던걸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마음에 드는 다른 사람의 동시나 동요도 옮겨보고요~ ^^

마노아 2008-10-20 08:54   좋아요 0 | URL
우리 어른들도 아마 그림일기를 쓰라고 하면 더 어려워할 것 같아요.
중학교 1학년 때 쓴 일기장엔 할 말 없으면 시나 시조를 옮겨 적기도 했었는데 담임샘이 제가 쓴 건 줄 아셔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