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과 함께한 <임꺽정> 강연회 후기
이덕일씨도, 고미숙씨도, 그리고 김훈씨까지, 모두 너무 좋아하는 분들이 나오시는 임꺽정 강연회.
김훈 작가님은 작년에 남한산성 출간기념 강연회에서 뵈었기 때문에 이번엔 양보하기로 하고, 고미숙씨와 이덕일씨 사이에서 고민을 했더랬다.
아무래도 '청각적' 느낌을 우선시한다면 고미숙 작가를 골라야 마땅했지만....;;;;;
그래도 내가 오래오래 사랑해 온 이덕일 선생님도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먼저 시작하는 강연회부터 찜! 다행히 당첨되었고, 비오는 토요일, 홍대 상상마당으로 출발!
상상마당에선 강연회도, 또 공연도 여러 차례 다녀왔지만, 번번히 어찌나 헤매던지.... 매번 지도 뽑아놓고 찾아가지만 그때마다 헤매기 일쑤.
다행히 최근엔 합정에서 볼 일이 많았기 때문에, 홍대가 아닌 합정 쪽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찾아나섰다. 지난 7월 24일에 억수로 헤맸던 경험이 아직 살아있어서 이번엔 바짝 긴장하고 제대로 찾아갔다. 찾아놓고서도 스스로 얼마나 대견하던지..;;;;;(돌아올 때 홍대 방향으로 도전한답시고 설치다가 엄청 헤맨 게 실수지만...ㅠ.ㅠ)
이덕일씨는 무척 수수하게 등장했다.(당연한가?) 별다른 인사말이나 첨언 없이 거의 바로 강연을 시작했다. 조선 3대 천재 이야기부터 해서 벽초 홍명의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간략한 소개가 이어졌다. 당시 명문가 출신들 중에 사회주의자들이 많았다고 하셨는데 관심이 가는 대목이었다.
홍명희 선생님의 신간회 활동과 행적들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 뒤에 '성리학'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조선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고, 그러다 보니, 성리학이 발생하게 된 그 시절 이야기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이덕일씨의 책에서 자주 접했던 이야기를 저자의 입을 빌어 다시 한 번 듣는 기분.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해하자니, 결국엔 '땅'에 대한 역사가 되는 듯하다. 그 땅에서 농사짓고 사는 백성들의 평생 소원 땅의 주인이 되는 것. 그 땅에서 무사히 농사짓고 사는 것. 사실, 부동산 공화국인 현재의 대한민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정주민의 숙명이라고 하기엔 도가 지나치지만.
인종과 명종 시절. 그 때에 임꺽정이 등장한다. 벽초 홍명희는 정사와 야사를 두루 섭렵하고 책을 썼는데 그 방대한 정보와 지식의 양을 지켜보면 그를 향해 천재라 부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셨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사는 믿을만 한 것, 야사는 믿을만 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편찬 목적에 따른 발췌의 차이가 있는 것이지 그렇게 이분법으로 나눌 성향은 아니라 한다. 그러니까 야사들 중에서 모아서 정사를 편찬하기도 한다는 것. 그러니까 사실은, 야사 속에 숨어 있는 백성들의 반응과 마음을 읽어내는 게 중요한 것이다. 이를테면 '태종우'는 정사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게 사실이었다고 한다면 기록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그건 거기에 깃든 백성의 마음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공신들 입장에선 배신자였을 태종은, 백성들에겐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세조가 태종같은 마인드가 없었다는 게 우리의 비극이기도 하고...
질의 응답 시간에 사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료비판 능력이 부족하고 1차 사료를 읽어내는 훈련이 너무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1차 사료를 틀리게 해석해 버리면, 그걸 인용한 2차 사료가 몽땅 틀려버리게 된다는 것. 음, 심각한 문제다. 모두가 1차 사료를 읽어낼 능력을 갖추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연구자들은 오류 없이 읽어낼 수 있는 자격을 갖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일이다.
책이 10권 짜리인데, 책마다 두께가 많이 다르다. 내용별로 묶여서 그런 듯. (물론 가격은 동일하다^^;;;)
십년도 더 전에 sbs에서 임꺽정을 방영했을 때 무척 재밌게 보았더랬다. 그리고 아마 고우영씨나 이두호씨 같은 만화가의 작품으로 임꺽정을 접했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로는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로서는 '임꺽정' 보다는 그저 '강연회' 자체에 더 관심을 갖고 참여한 케이스인데, 2시간 가까운 강연을 듣고 나니 임꺽정과 홍명희에 대한 관심이 부쩍 솟는다. 대하소설인지라 당장에 시작할 엄두는 아니 나지만, 꼭 보고 싶은 시리즈 목록에는 덜컹 추가되고도 남을 일!
그런데 왜 완결을 못 지으셨을까? 국내에 계실 때 연재가 중단되었는데 그게 건강탓인지, 다른 요인 때문인지 모르겠다. 소설 동의보감은 4권 계획이었는데 3권에서 끝났다. 작가가 완결을 보지 못하고 사망한 탓인데, 홍명희의 경우는 또 다르지 않은가?
그래도 원래 계획했던 부분에서 많이 비지는 않았나 보다. 그래도 더 나아갔다면 임진왜란 중의 이야기를, 그 후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그러고 보니 동의보감도 임진왜란 피난길에서 끝이 났구나!)
강연회 참가자들에게 '조선의 임꺽정, 다시 날다'를 선물로 주었다. 책 10권 시리즈를 사면 함께 묶여 나오는 부록인데 횡재한 셈!(책은 낱권 구입하는 게 마일리지 면에서 좀 더 이롭단 계산을 이미 마쳤다..;;;)
책을 살펴보니, 이 책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는지, 또 그 사이사이 역사적이고 극적인 순간이 많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다양한 사람들의 임꺽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이 갖고 있는 한결같은 애정과 관심이 뜨거울 지경이다. 뭐랄까, 애틋할 정도의 자부심 같은 것.
이 책엔 임꺽정 용어 사전도 같이 담겨 있다. 우리 말 공부에도 분명 도움이 되리라.
아프님이 중복 당첨되셔서 고미숙씨 강연회 갈 사람 모집(?)하시던데, 아쉽게도 선약이 있구나...ㅜ.ㅜ(나무 심으러 간다. 두둥!)
월요일이던가, 후기를 쓰려고 페이퍼를 작성하다가 너무 피곤해서 일단 비공개 카테고리에 담아놓고 있었는데, 공지에 '비공개'로 해두면 이벤트 참가가 안 된다고 써 있다. 아니 왜 이런 문구가 나오나 하고 보니, 내 글이 먼댓글에 걸려있는 게 보인다. 허걱! 비공개로 해둬도 일단 뜨긴 뜨는구나. 내용은 안 보일지라도. 찔끔하고 놀랐다. 아무튼 뭐 비공개는 해지할 생각이니까6^^;;;;
홍명희의 손자 홍석중씨와 계약을 했다고 나오는데, 이름이 아무래도 낯설지가 않은 것이다. 어디서 보았지? 하다가 박지원의 '나는 껄껄선생이라오'에 생각이 미쳤다. 보리 출판사에서 나온 두툼한 그 책! 바로 찾아보니 이름이 '홍기문', 홍명희의 아들이다. 어쩐지 좀 반가운 생각^^
이 책이 판금되어 불법으로 유통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렇게 완벽 새단장으로 다시 출간되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더불어 그러한 마당에 국방부 선정 불온 서적 리스트를 같이 보고 있는 우리를 생각하니 그건 또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책 임꺽정이 그랬던 것처럼 그 '불온' 딱지가 호기심과 열기를 더 증폭시켰지만.
홍명희 연구가는 의형제 편(4.5.6권)을 먼저 읽으라고 권했지만, 나중에 내가 읽게 되면 분명 고지식하게 1권부터 읽을 테지. 쿠우,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럼 뭐 어때. 일단 읽는 게 중요하지!
좋은 강연회 준비해 주고 참가할 수 있게 해준 모든 스텝분들께 감사를!
읽을 책이 너무 많이 쌓인다는 건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그래도 읽고 싶은 작가와 책이 많다는 건 독자에게 무한의 축복. 역시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