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키가미 5 - 덧칠당한 영혼
마세 모토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나라에는 '국가번영유지법'이라는 게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전원 주사를 맞는데, 1000명 당 1명 꼴로 18세에서 24세에 죽게 만드는 칩이 들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명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국가를 번영시키겠다는 취지의 놀라운 법이다.

읽을 때마다 감탄하고, 또 읽을 때마다 섬뜩함에 놀란다. 이 놀라운 상상력을 가진 작가의 다른 작품이 더 있나 검색해 보았지만 국내에는 없는 듯하다. 어쩌면 이게 첫 작품일 수도 있고.(그렇다고 하기엔 작품이 너무 성숙하다!)

한 편당 2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이번 이야기에서도 젊은 청년 둘이 사망 예고장(이키가미)을 하루 전에 받고 충격적인 일생을 마감한다.

페인트공 가계를 잇기 위해서 그림 그리는 즐거움과 꿈을 포기해야 했던 유키마사. 경제가 어려워지자 그의 집안에선 거리의 담장에 몰래 낙서를 하고 그 담장을 다시 지우는 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유키마사는 몰래 숨어서 그림을 그리는 것, 또 '낙서'라는 불편을 시민들에게 주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돈을 벌면서 장인 정신 운운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잔뜩 실망해 있다.  게다가 그 덕분에 공공도서관에 제대로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도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를 잡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이키가미가 도착한다.

그는 자신에게 남은 소중하고도 절박한 하루를, 그 동안의 죄책감을 더는, 그리고 이 황당하고 비겁한, 그리고 악랄한 국가번영법을 조롱하는 풍자화를 그리는 데에 바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에 충격을 받고 또 화제가 되었지만, 유행처럼 금세 사라진다.

한편, 이키가미 배달부인 후지모토는 국가번영법의 효과와 윤리성에 끊임없이 회의하게 되고, 그런 그에게 그의 직장 상사는 주의를 준다. 퇴폐사상자를 감시하는 국번경찰이 비밀리에 도처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밀경찰은 정말 가까운 곳에서 뜻하지 않게 찌르고 들어온다. 주인공이면서 주인공이 아닌 후지모토의 위기는 아마도 다음 편에 나올 듯하다.

두번째 이야기가 정말 충격이었는데, 아버지가 국번 경찰이고 형도 경찰대학에 들어간 고교생 이쿠히코는 아버지의 교육에 완전히 세뇌된 국번중독자였다. 국번영웅으로 거듭나길 소망하던 그는 자신에게 도착한 이키가미를 '기적'이라고 부르며 기뻐한다. 학급 친구들에게서 영웅대접을 받기를 원했던 그는 친구들이 사실은 자신을 동정하면서 동시에 비웃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폭주한다. 그런 생각을 가진 자는 모두 '퇴폐사상가'로서 당국에 고발해야 마땅하다는 것.

그의 폭주는 그를 국번영웅에서 퇴폐사상가로 거듭나게 한다.  학교 선생님마저도 국번을 신성시하며 세뇌교육을 시키는 교육 현장. 국번예찬을 했던 이쿠히코가 퇴폐사상자로 생을 마감한 역설의 살벌함. 마지막 학생의 썩소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반영하는 듯하다.

정부는 국민을 세뇌시키고 싶어하고 어리석게 만들고 싶어한다. 교과서를 뜯어고치려 하고, 방송을 수중에 넣어 언론을 통제, 장악하려 한다. '국가 번영'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 책에서의 섬뜩한 설정만큼 대놓고 지르지 않아서 그렇지, 근본 뿌리는 결국 같은 게 아닐까.  작가가 말했듯이 '믿음' 대신 '의심'이라는 의미심장한 교훈을 남겨주면서 말이다.

조종당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무심하게 살아가는 무수한 사람들.  이런 사회에선 제 자식만 이키가미를 피할 수 있게 편법과 부정을 저지르는 관료보다 제 자식을 팔아 국가의 번영을 부르짖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점점 더 미쳐가고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이미 미쳐있는데, 더 이상 미치지 않도록, 정신줄 놓지 않도록 경계할 일이다.

이 책, 영화로 만들면 제대로 스릴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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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9-1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만화의 소재의 무한성이란 정말....
이런 소재로 만화를 만들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요?
구해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마노아 2008-09-20 00:05   좋아요 0 | URL
갸들의 저력은 정말 무서울 지경이에요. 그 상상력을 어찌 당해낼까 아찔하기도 하구요.
이 책은 강추에요. 매번 사서 읽는데 주변에 많이 추천하곤 해요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