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 하늘과 맞닿은 바람의 나라 - 대구 MBC HD 기획 10부작
이른아침 편집부 엮음 / 이른아침 / 2008년 5월
절판


신발 코가 위로 향한 모습이 고무신과 사뭇 비슷한 몽골의 전통 신발 ‘구달’
양모와 가죽으로 만든 구달은 특이하게도 오른쪽 왼쪽 구분이 없다.
-22쪽

‘세걸음 이상은 승마’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늘 말을 타고 다니는 몽골인들에게 승마는 더없이 즐거운 놀이.

-35쪽

강수량이 부족한 몽골은 눈이든 비든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은 언제나 환영. 유목민 가정이면 집집마다 있다는 물 당번은 겨울이면 지천으로 널린 눈을 부지런히 퍼다 나른다. 녹이기만 하면 온 가족이 마실 물과 차, 먹을 음식을 만들 수 있기 때문

-36쪽

800년 전, 칭기즈칸과 함께 말을 타고 초원을 호령하며 세계무대에 등장한 몽골은 이제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말로 갈아타고 힘차게 달린다.

-47쪽

70여 년 동안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여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의 틀 안에서 생활했던 몽골은 공산권의 몰락으로 한때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재빨리 시장경제를 받아들였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뤄내면서 해마다 6%를 웃도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건국 800년을 맞는 지난 2006년을 몽골인들은 ‘칭기즈칸의 귀환’이라 불렀다. 구체제에선 금기시했던 칭기즈칸의 완전한 복권을 계기로 세계를 호령하던 옛 몽골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 핵심은 경제성장이다.
-48쪽

몽골의 광업은 총 산업 생산의 65%를 차지하고, 국가 GDP의 17%를 담당한다. 광산을 끼고 있는 도시들이 새로운 성장 지역으로 꼽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50쪽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몽골 중산층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자녀교육.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오로지 교육만이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

-52쪽

1921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유목은 국가적인 탄압을 받았고 유목민들은 강제로 해체됐다. 전통적인 유목 생활이 중앙통제식 경제와 맞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집단화 정책이 느슨해지면서 유목은 조금씩 다시 활기를 띠게 됐다. 시장 경제 전환 이후에는 집단농장에 속해 있던 가축이 개인 소유로 바뀌면서 대규모 목축업이 더욱 회복되는 추세다.

-55쪽

가축 수가 많은 유목 가정만이 초원을 지키고, 가축 수가 적은 목축 농가들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유목 생활을 접고 도시로 떠난다.

-59쪽

젊은이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면서 노인들만 남아 있는 유목 마을이 점점 증가.
가축이 아주 많은 집은 자식들이 초원에 남지만 가축이 적어 할 일이 없는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도시로 나가는 것.
시장경제는 이농 현상을 부추기고, 유목 마을의 빈자리는 더욱 커져만 간다. 모두가 떠나가고, 지금 남아있는 청년들마저 나이가 들면 그때는 누가 초원을 지키게 될까? 몽골의 정신적 뿌리이자 이 나라를 지탱해 온 가장 중요한 산업인 목축업이 지금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64쪽

울란바토르 외곽의 달동네, ‘야르막’은 최근 3,4년 사이에 울란바토르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생겨난 빈민촌 중 하나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 대부분은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 사람들로, 공장 직공이나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직업을 구하지 못해 실업자로 전락한 이들도 많다.

-67쪽

한정된 일자리 때문에 실업률이 7%를 웃돌고, 빈부격차가 커지는 등 새로운 사회문제들이 몽골에서 발생하고 있다. 눈부신 경제성장 뒤에는 도시의 팽창과 시골의 인력 부족, 실업 문제, 빈부의 격차 등 어두운 그늘이 뒤따르기 마련.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시장경제를 선택한 몽골에게 또 하나의 숙제가 주어진 셈.

-68쪽

몽골 유목민의 하루는 노래로 시작된다. 이들은 소나 양의 젖을 짜면서도, 말을 타고 가축을 몰고 다니면서도 노래를 부른다.

-79쪽

만약 노래가 없다면 이른 새벽부터 시작하는 유목민의 노곤한 삶을 무엇으로 풀어야 할까? 가축이 깨어날 때부터 시작하는 유목민의 하루에 노래는 피로를 풀어주는 윤활유이자, 가축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번잡스런 문명을 멀리한 유목민의 삶은 푸르른 초원만큼이나 단순하고 순박하다.
-91쪽

몽골의 역사 속에서 씨름, 활쏘기, 말달리기 이 세 가지 경기는 즐거운 놀이이자 효과적인 전쟁 연습이었다.

-100쪽

말을 훈련시킬 때 경기 도중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리도록 가르치기에 몽골의 말 경주를 지켜보면 종종 낙마한 기수를 팽개친 채 결승점으로 달려오는 말들을 볼 수 있다. 몽골인들은 이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며 달리는 말 경주를 기수의 용기와 인내심을 시험하는 좋은 기회로 여긴다.
(나담은 칭기즈칸 이전부터 전해진 전통적인 여름 축제다.)
-112쪽

나담 말 경주에서는 각 나이별로 몇 백 마리의 말들이 동시에 달리는데 기수가 너무 무거우면 말이 제 속도를 낼 수 없어 보통 세 살에서 열두 살 사이의 꼬마들이 출전한다. 조련사는 대부분 기수의 아버지인 경우가 많다.
-116쪽

울란바토르 근교에는 몽골인들의 여름 별장인 ‘조슬랑’이 밀집해 있다. 회계사인 간수흐는 양복과 자동차, 현대식 건물이 잘 어울리는 전형적인 도시 사람이지만 석달 남짓한 여름 동안엔 공기가 나쁜 도시를 떠나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조슬랑에서 생활하며 야과 말을 치는 몽골의 전형적인 유목민으로 살아간다.

-127쪽

가축들은 대개 봄에 새끼를 낳기 때문에 이 시기에 가장 젖이 많이 나온다. 이는 곧 유제품을 많이 만들 수 있다는 뜻과 같다. 여자들은 여름 내내 부지런히 젖을 짜서 겨우내 먹을 유제품을 만들어 비축한다.

-137쪽

몽골인에게 가축은 삶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동시에 중요한 식량원이다. 그래서 몽골 남성들은 가축을 방목하는 일 못지 않게 양이나 염소를 도축하는 일에 신중을 기한다. 가축을 도축할 때는 고통을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빨리 숨을 끊고, 피를 땅에 흘리지 않게 한다. 도축은 집안의 어른인 가장의 몫이며 몽골 남자라면 자라면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기술이다.

-141쪽

허르헉은 양이나 염소를 큼직하게 잘라 감자, 당근 등과 함께 푹 쪄서 먹는 몽골의 대표적인 요리로 과거 솥을 가지고 다니기 힘들던 유목민 시절에 가죽 부대에 넣고 끓여 먹던 방식에서 초래한 초원의 음식이다. 고기 요리는 보통 남자들이 맡는다. 먼저 아버지가 불을 피우고 작은 돌부터 달구기 시작한다. 그 사이 방금 잡은 염소를 먹기 좋게 잘라 양념과 함께 큰 솥에 넣고, 뜨겁게 달군 돌을 집어넣어 고기를 골고루 익힌다. 이 상태로 한두 시간 정도 푹 익히면 연하고 먹기 좋은 허르헉이 완성된다.

-142쪽

유목민은 거친 대자연과 그를 관장하는 영적 존재에 많은 것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샤머니즘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야 하는 몽골 유목민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샤머니즘은 곧 몽골인의 삶, 그들의 정신적 뿌리인 것이다.

-171쪽

몽골에서는 한국어 자체가 한류의 상징이다. 몽골어에는 ‘으’ 발음이 없어 한국어를 읽고 말하기가 까다로운데도 자녀가 어릴 때부터 한국어를 가르치려는 학부모가 많다. 그래서 한국어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 1년 이상 기다리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몽골 학교에서도 예전에는 주로 러시아어를 가르쳤는데 요즘에는 영어와 한국어가 인기다.

-177쪽

해마다 10월이면 한글날을 전후해 울란바토르 대학에서 ‘한글 큰잔치’가 열린다. 말하기, 글짓기, 붓글씨, 한글 예쁘게 쓰기, 노래 경연 이렇게 총 5개 분야의 대회. 대상을 수상한 학생에게는 열흘간의 한국 연수 기회가 주어진다. 노래 경연 시상식을 끝으로 3일 동안 울란바토르를 뜨겁게 달군 한글 큰잔치는 몽골과 한국 사이를 한걸음 더 다가서게 하며 막을 내린다.

-184쪽

울란바토르에서 420km 떨어진 돈드고비 아이막은 광활한 초지와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산재한 곳. 이곳에 속한 델 올 지역은 몽골 최초의 미술 작품인 암각화로 유명. 날씨가 건조해서 암각화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지역의 암각화는 약 3만 개로 추정. 소재의 종류 또한 다양. 델 올 지역에 암각화가 많은 것은 사냥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하계의 정설.

-197쪽

20세기 초반까지 불교는 몽골 최고의 종교였다. 하지만 1920년대 몽골이 사회주의 체제 국각가 되면서부터 종교는 곧 아편이라는 스탈린의 정책에 따라 국민이 불교를 믿는 것을 막고, 많은 사찰과 사원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결국 10만여 명의 몽골인들이 내몽골이나 다른 나라로 도피했고, 수많은 스님과 승려들이 학살당했다. 당연히 불교미술도 몰락했다.

-213쪽

땅을 소유하고 영원히 정착하는 것을 꿈꾸지 않는 유목민들이야말로 몽골을 가장 몽골답게 보여주는 존재다.

-223쪽

길을 잘 기억하고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물 냄새도 찾아낸다는 명석한 가축 낙타는 유난히 정이 많고 감정이 풍부해 몽골인들의 오랜 벗이자 가족 같은 존재. 오축 중에서 가장 가벼우면서 뛰어난 보온력을 자랑하는 낙타의 털은 봄기운이 시작되는 이맘때쯤 깎아야 g나다. 낙타는 체구가 크고 강인해 추위에 강하지만 더위에는 유난히 약하기 때문.

-224쪽

매년 가을이 되면 새로 태어난 망아지와 나이가 적은 말들을 한 번씩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 몸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 여름에 도장을 찍으면 상처가 곪을 수 있기 때문에 도장 찍기는 주로 가을에 많이 한다. 방목을 하다 보면 다른 집 가축들과 섞일 수가 있어 찾기 쉽도록 찍는 것이다.
이맘때부터는 소똥 줍기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수분이 다 빠져 나간 소똥은 냄새도 없거니와 화력이 그만이어서 시골 유목민들의 겨울 난방을 책임지기에 안성맞춤이다. 모은 소똥을 1년 내내 말리면 그 다음 겨울쯤엔 태우기 딱 좋은 연료가 만들어진다.
-234쪽

유목민들은 일반적으로 여름에는 물이 풍부한 강 주변에, 겨울에는 뒤에 산을 낀 장소에 정착한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스며들지 않도록 게르 주변을 흙으로 꼼꼼히 막고, 펠트로 게르를 두 겹 세 겹 덮는다. 몽골의 겨울은 단순한 추위 문제가 아닌, 생존이 걸린 계절이기 때문이다.

-235쪽

자유화, 개방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이 이어가는 그들의 유목 생활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신선한 메시지이자 몽골을 가장 몽골답게 만들어 주는 유목민의 삶이다.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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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헨 2008-09-18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줄 ... 한 줄...의미 있게 들립니다.

마노아 2008-09-19 00:01   좋아요 0 | URL
몽골을 지켜보고 있자면, 때묻지 않았던 자연이 점차 오염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무래도 자본주의의 속성은 그런 게 있으니까요.

노이에자이트 2008-09-18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골인들이 징기스칸 숭배하는 건 이해가 가는데 중국도 징기스칸을 굉장히 홍보하더라구요.중국은 이민족들이 세운 나라도 중국사라고 주장하니까 요,금,원,청도 자기나라 역사라고 합니다.그런데 여진인은 사실상 완전히 흩어졌으니 금,청에 대해선 그런다 쳐도 몽골은 엄연히 독립국가인데 중국이 몽골인인 징기스칸을 중국의 영웅으로 선전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마노아 2008-09-19 00:02   좋아요 0 | URL
광개토대왕도 지네 임금이라고 할 애들이죠. 몽골은 중국 굉장히 싫어하는데 기분 나쁠 것 같아요.
티벳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다들 열받을 일이에요.ㅜ.ㅜ

달빛푸른고개 2008-09-18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의 '몽골'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전 몽골의 역사가 갖는 의미가 참 크더군요. 한반도와의 관계도 그렇구요.

마노아 2008-09-19 00:03   좋아요 0 | URL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샌드위치 자리가, 우리가 중국과 일본, 그밖의 강대국 사이의 샌드위치 입장과 동질감이 느껴져서 더 눈여겨보게 되어요. 한국을 참 좋아하는 나라인데 요새는 이미지 완전 버려놔서 자꾸 싫어한다고 해서 걱정이에요.

노이에자이트 2008-09-19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소련군 기지가 몽골에 있었는데 지금은 러시아 군기지가 있는지 궁금하네요.한국의 늙은 남자들이 몽골의 손녀뻘되는 처녀를 현지처로 거느리고 있는 데다가 매춘관광등이 말썽을 일으키더라구요.그런데 몽골에 나치주의자들이 있어요.요주의!!!나치 깃발을 차에 달고 시내에서 위력시위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마노아 2008-09-19 15:43   좋아요 0 | URL
몽골 안에서 나치주의자라니, 굉장히 이질감이 느껴지네요. 갑자기 오싹해져요!
그나저나 어디서든 똥물 튀기고 다니는 인간들이 있다니까요.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바깥에서도 새는 거겠지만, 꼭 저런 사람이 '대표'인 냥 전체 망신을 시키잖아요. 우호적이었던 한국에 대한 감정이 자꾸 나빠지는 게 안타까워요.

노이에자이트 2008-09-1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치주의는 예전 사회주의권을 중심으로 유럽에서도 굉장한 선풍이죠.이념의 공백을 메워주니까요.우리나라 남자들이 워낙 껄떡질을 하고 다니니까 아마 몽고의 네오나치들이 이를 갈고 있을 겁니다.

마노아 2008-09-19 22:20   좋아요 0 | URL
이념의 공백을 메운다고 하니까 분위기가 좀 수긍이 가네요. 어휴, 잘못하다간 국제 뉴스에서 끔찍한 소식을 들을지도 모를 일이군요. ;;;;

노이에자이트 2008-09-20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맞아 마땅한 놈이 당하는 거야 인과응보지만 무고한 사람이 단지 한국남자라는 이유로 봉변을 당할까봐 큰 걱정입니다.

마노아 2008-09-20 19:2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도 걱정이에요. 꼭 죽어 마땅한 녀석들은 명도 길더만 엄한 사람이 재수 없어 죽기도 하는 세상..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