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칭기스칸 - 유목민에게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 SERI 연구에세이 2
김종래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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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샵에서 찾은 뜻밖의 선물. ceo라는 제목에서, 또 출판한 곳 이름에서, 이 책의 분류에서 일단 거부감이 들었는데, 그래도 '칭기스칸'이란 이름이 들어갔기에 속는 셈치고 읽기로 했다. 그런데 기대 이상의 재미와 놀라운 정보들이 가득했다. 기대치 않았던 횡재를 한 느낌!

오래도록 칭기스칸의 이름은 왜곡되어진 채 불려졌었다.  샤브샤브라는 일본 음식이 칭기스칸이라고 불려지게 된 까닭을 저자는 얇게 난도질 된 그 고기에서 잔인한 칭기스칸을 떠올린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을 했는데,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식의 폄훼와 왜곡은 오래도록 있어왔다. 그리고 그 의도적인 비하와 저주에는 '공포'가 깔려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만들어낸 사나이. 그것도 그토록 적은 숫자의 병사를 가진 채.

그는 어떻게 그런 신화를 일궈낸 것인지, 저자는 그의 '신경영'에 집중한다. 그가 조목조목 짚어낸 칭기스칸의 경영 마인드와 철학을 되새겨보면 칭기스칸이 해낸 것은 과장된 신화나 전설이 아닌 역사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다.  저자만 그렇게 조명한 것은 아니다.

1995년,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낸 기획기사의 내용을 옮겨본다.

지난 1,000년(서기 1001년에서 2000년까지)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인물은 누구인가. 1,000년 전 세계 인구는 3억 명쯤이었다. 문명은 극소수 지역에만 존재했다. 당시 인간은 자신들이 어디에 사는 지도 몰랐다. 오늘의 세계를 보자. 조그맣다. 지난 1,000년 동안 지구가 축소된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것이 우리가 지난 1,000년의 인물을 찾는 배경이다. 이 세계를 작게 만든, 인간과 기술이 지표면을 가로질러 이동하도록 만든, 그래서 전 지구에 인간이 지배력을 펼칠 수 있도록 만든 누군가를 찾는 작업이다. 

이 개념에 꼭 들어맞는 인물이 있다. 크리스터퍼 컬럼버스는 유럽과 아메리카 두 대륙을 연결시켰다. 컬럼버스는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심각하고도 파괴적인 영향을 가져다줬다. 각종 질병과 낯선 동식물이 대서양을 건너왔고 야만적인 노예 무역이 시작됐다. 컬럼버스식 모험은 유럽이 세계를 식민지화할 수 있는 문을 열었다. 
 

컬럼버스는 단지 다른 사람들이 동쪽으로 떠날 때 서쪽으로 떠났을 뿐이다. 왜 그는 대양을 가로지르면 중(원나라)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지구 크기를 잘못 생각한 것 말고도 그는 이미 쿠빌라이칸의 궁전에 관해 엄청나게 묘사해 놓은 2세기 전 마르코 폴로 여행기를 읽었던 것이다. 만약 이슬람이 동서양 사이에 철의 장막을 치고 있었다면 마르코 폴로는 그런 여행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나침반이나 화약, 인쇄술 같은 중국 기술도 유럽에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1,000년 전 지구를 지배하는 두 문명이 이슬람과 중국 문명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 문명의 유럽은 고인 물과 같았다. 봉건 장원, 주교령, 귀족 영지 따위가 모여 있는 곳일 뿐이었다. 1,000년 전에는 아무도 유럽 기독교도들이 이 지구를 식민화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을 뒤흔든 게 완전히 새로운 제국의 출현이었다. 그것은 몽골제국, 즉 칭기스칸의 제국이었다.

지난 천년의 세월 동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손꼽혔던 칭기스칸. 무엇이 그를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로 만들었을까.  그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처했던 자연환경적 상황을 짚어봐야 한다.

오래도록 역사는 '정착문명'의 입장에서 쓰여졌고 강조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기준'인 것처럼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그들의 바깥에 '유목 이동문명'권의 사람들이 있었다. 칭기스칸이 살았던 바로 그 몽골 말이다. 저자는 책의 앞쪽에서 정착민과 유목민의 차이점을 꽤 상세하게, 그리고 자연스런 흐름으로 설명을 해주는데 이제껏 생각해보지 못했던 다른 방향의 접근이었던지라 충격과 놀라움이 컸다. 유용한 자료로 보여 정리를 해봤다.



(클릭하면 제 사이즈로 보일 것이다.)

수직적 질서를 강조하는 정착농경문화, 반면 수평적 질서를 중시하는 유목이동문명. 둘은 너무 다르다. 그들의 생존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이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좀 더 키울 필요는 있겠다.

칭기스칸은 까막눈이었다. 글을 읽을 줄 몰랐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열린 귀로 대했고, 권위의식을 버린 채 공평히 나누고 먼저 검소한 생활을 하는 등 모범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다. 

그의 제국이 그토록 광대한 땅을 차지하고 다스릴 수 있었던 첫번째 요인은 '속도'였을 것이다. 유목민의 기동성은 우리도 익히 아는 바이다. 정착농민은 머물고 있는 곳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거기가 뿌리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의 새 삶을 상상치 못한다. 하지만 유목민은 이동하는 곳이 곧 고향이 되어버리고 집이 되어버린다. 그들의 말은 빨랐고, 그들의 식량은 1년치를 가볍게 휴대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군장은 지극히 가벼웠다. 중세 유럽의 기사들이 70kg의 갑옷 무게를 지탱해야 했다면, 몽골기마병은 7kg으로 완벽 군장을 마칠 수 있었다. 당연히 속도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쏜 화살이 더 멀리 날아갔던 기술적 차이도 물론 있었다.

단지 속도의 혁신만 있었다면 칭기스칸이 세운 제국이 '유지'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의 세계 경영이 가능했던 것은 정보를 손아귀에 넣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광대한 제국은 '역참제'로 운영되었다. 오늘날과 비교한다면 '인터넷 혁명'과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제국은 거미줄처럼 전역으로 뻗어 40~50km 당 역이 세워져 있고 5km 단위로 파발을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심부름꾼은 5km만 전력질주하면 되기 때문에 중앙의 명령이, 지방의 소식이 빠르게 연결되고 집중된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가 유통의 중심지가 된다. 군사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물자가, 문화가 흘렀던 것이다.

유목민의 마인드, 칭기스칸의 마인드 또 하나! 다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인종과 종교, 문화의 다름을 차별하지 않았다. 적의 딸을 며느리로 들이고, 적의 아들을 양자로 들이고, 적의 아이를 잉태한 아내도 받아들여 제 아이로 키워낸 칭기스칸.  너무 적은 인구, 정보의 부재가 곧 생존의 위협이 되었던 그들의 사회에선 그렇게 '받아들임'을 자연스럽게 각인시켰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칭기스칸과 그의 제국을 활짝 열어준 요인들은, 그것들을 지탱해주는 힘을 잃는 순간 제국의 멸망을 부채질한다.  말의 기동성도, 멀리 날아가는 화살도, 잘 짜여진 역참제도, 그것들을 능가하거나 무산시키는 무언가를 만났을 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뿐아니라 유목 정신을 잃은 제국의 지배자들의 변질도 그 부채질에 한몫을 한다.  어느 사회, 어느 역사에서나 그랬듯이.

저자는 이제 우리 사회가 유목민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할 때라고 말한다.  확실히 세상은 과포화 상태이고, 한자리에 머물러서 한가지 일만 해서는 '생존'이 힘든 것처럼 우리를 내몰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달려야 하고, 빨리 달리기 위해서 욕심내어 가지지 않고 몸을 가볍게 하는 유목민들. 수직적 사고가 아니라 수평적 사고를 강조하는 그들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이 참 많다.

고인 물이 썩고, 흐르는 물이 쌓이지 않는 것처럼, 정착문화를 가진 이들은 유목문화에서 배울 점이 있고, 유목 문화를 가진 이들은  정착문화를 가진 사람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  저자가 그런 것처럼 완벽하게 노마드 정신이 대세다! 그렇게 가야 한다!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익숙한 탓이기도 하지만, 정착문화에서 찾을 수 있는 부정과 비리, 비합리적인 관료성 등을 배제한다면, 우리는 우리네 삶에서 흔히 '안정'과 '안락' 그리고 '따뜻함'을 느끼지 않던가. 생존을 위해서 끝없이 달리고 늘 신경이 곤두선 채 방어본능을 세워야 하는 그 삶이 난 그닥 부럽지가 않다. 그건 유목민의 환경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위기의식이니까.

그러니까, 유목민의 자연과 무소유에 대한 어떤 정신만을 닮기만을 개인적으로 소망해 본다.

저자는 마무리에서 우리 한국인들에겐 칭기스칸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며 우리의 저력을 IMF 때 금모으기 운동이나 월드컵 때의 거리 응원 등을 한 예로 들고 있는데, 그 한과 신명으로 21세기를 살아가자며 책을 마무리 했다.  한참 재밌고 유익하게 잘 읽다가 막바지에서 좀 힘이 빠진 편이다.  우리 안에 있는 그 핏줄에 의지할 게 아니라 올바른 목표의식과 지혜로운 자기계발과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나로서는 관심사인 몽골과 칭기스칸에만 집중해서 읽었지만, 책은 그의 놀라운 CEO적 능력을 강조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비교할 수 있는 적절한 예시들을 계속 첨부했다. 경제, 경영 등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저자가 1998년에 쓴 '밀레니엄맨'이라는 책에서 '칭기스칸의 편지'라는 대목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아!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내가 살던 땅에서는 시든 나무마다 비린내만 났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탓하지 말라. 내가 세계를 정복하는 데 동원한 몽골 병사는 적들의 100분의 1, 200분의 1에 불과했다. 나는 배운 게 없어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그런 내 귀는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있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스칸이 됐다.  
   

나도 오래 전에 이 글을 접한 적이 있었는데 마지막의 문장이 참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 글을 다시 보면서 좀 씁쓸했다. 명문인데, 아름다운 진리인데, 그게 현실에서 '사실'로 느껴지지는 않는 까닭이다. 원래 사실이 진실이란 법은 없는 거니까.

현실은 쓰디 쓰지만, 그래도 말하고자 하는 진심은 전해진다.  칭기스칸, 그리고 유목민의 삶에서, 우리가 배울 만한 것들이 참 많다. 반성할 부분도 여럿 눈에 띈다. 150여 쪽에 달하는 짧은 책이다. 일독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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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9-09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기스칸은 관심이 가는데 정말 제목과 출판사는..... ㅎㅎ
공부할 건 많은데 제 손은 요즘 왜 자꾸 소설로 가서 꽂히는지 모르겠어요. ㅎㅎ

마노아 2008-09-09 02:01   좋아요 0 | URL
중고샵에서 건졌으니 구입이 가능했을 거예요. 제목과 출판사에서 후덜덜^^;;;;
저도 소설 읽고 싶어요. 앙, 공부할 게 너무 많아요(>_<)

순오기 2008-09-09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TV책으로 말하다'에서 징기스칸을 주제로 다룬 적이 있어서 '밀레니엄맨 징기스칸'을 구입했지요. 제대로 다 읽지는 않았고~~ㅜ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편지는 초록색연필로 밑줄이 좍좍 그어져 있어요.ㅎㅎ 신문이나 방송에서 소개하는 책을 읽으려고 열심히 사 날르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은 자제하고 있지만...
몽골을 공부하려면 징기스칸은 필수겠죠~~~ 몽골 땅을 밟아볼 그날을 위해서 나도 준비해야지요.^^

마노아 2008-09-09 02:19   좋아요 0 | URL
밀레니엄맨 칭기스칸을 쓴 사람이 요 책 쓰신 분이에요^^ 제가 인용한 부분이 그 책에 나오구요. 방송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책을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지금 생각 중이에요. 그런데 또 '유목민 이야기'가 저한테 더 필요한 것 같기도 해서 서점에 한 번 더 나가볼 생각이에요. 아무래도 직접 보고 비교를 해야겠어요. 공부하다 보니 몽골이 더 가깝게 느껴져서 좋아요. 실제로 몽골 땅을 밟게 되면 엄청 감격적일 것 같아요^^